[건조한 기억모음②] [2] 내가 왜 QT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2021년 02월 28일

재미도 없는 감성팔이 큐티
비평할 가치도 없는 설교들
무가치한 시간 보낼 바에야
대중 강연 들었어야 했는데

학생회 예배를 마치면 어색해지는 순간이 있다. 의자도 아니고 방 안에 모여서 양반 다리로 성경 한 구절을 읽으며 해석하는 일이다. QT(Quiet Time)라고 부르는 그 시간만큼 귀찮고 쓸데없는 시간이 또 있을지 모르겠다.

불편한 시간은 기독교 청소년 커뮤니티에서도 이어졌다. 신학생이 아니었던 고등학교 1학년 때조차 자고로 큐티는 인물과 사건 순서대로 본문을 이해하고 인물과 사건의 기록물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 전후맥락 파악에 나서는 작업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나보다 나이 많은 형들의 우스꽝스러운 해석, 이를 테면 예배 생활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천관웅 목사의 찬양팀 면접에서 ‘제일 은혜 받은 때가 언제였느냐’는 말에 ‘어제의 주일예배였다’는 식의 감성팔이 해석은 들어주기 어려웠다. 돌아가며 오늘의 구절에 대한 은혜 받은 점을 나누기로 한 순서에서 유일하게 말이 길어지는 건 나뿐이었다.

솔로몬 행각에서 설교하고도 붙잡혀간 베드로와 요한에게서 목숨까지 불사하며 부활의 복음을 전파한 이들 모습(사도 3,11)을 조명했다. 그래봐야 상투적 신앙 간증일 뿐이고 고작 남들이 생각지 않은 시각일 뿐인데 내 뒤로 떠오른 아우라가 친근하게 다가오지 못하게 만드는 무언의 경계선이란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누나를 좋아한 이유
고등학교 입학하고 맞닥뜨린 불안과 우울의 두 괴물은 휴일과 평일을 가리지 않았다. 교회에서 진리처럼 가르치던 “하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던 구호와 달리 교회는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기 역부족이었다. 대인관계가 모자라다고 생각해 발 디딘 기독교 청소년 커뮤니티에서도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려웠다. 늘 고민했다. 교회 안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누나를 좋아한 모양이다. 누나도 진리를 알지는 못했지만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했고, 모르기 때문에 공부하려는 열의를 가졌다. 단지 모임에서 기타치고 드럼 내리치는 사람들과 부대끼던 분위기가 좋아서 모였던 형, 누나, 동생들과 다르게 진리를 찾고 싶은 열의를 읽을 수 있었다. 교회 아이들은 싱거웠다. 길어지는 말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자세도 없었고, 지겹고 재미없는 QT 시간이 끝나기를 바랬다. 누나와 계속해서 이어지는 끈끈한 영적 대화는 때로 말줄임표 늘어지는 침묵이 이어져도 즐거웠다.

◇교회 식구가 아니라 누나와 교제한 이유
애석하게도 참여교회는 이야기가 길어져야 마땅한 성도의 교제를 좋아하지 않았다. 자칫 친목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최근 입수한 10년 전 라디오 기독교 방송국 음성 파일에서 알게 된 정보다. 지역교회 찾아가서 담임목사 소개하고 자기네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소개하는 단편 코너. 나도 참여해 집사님과 함께 담임목사를 칭찬했다. 다른 교회 파일을 찾아서 들어보니,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유독 그 교회는 담임목사 대신 교인들만 나와서 교회를 안내하는 것이었다. 목사가 어떤 스타일이고 성향인지 익히 알고 있어 촉을 느꼈다. ‘이 인간 패싱(passing) 당했구만.’

현재 사역 중인 전도사 형님에게 연락해 물었다. 놀랄만한 답변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스승의 주일에 목사가 선물 하나 못 받았다고. 교인들은 설교 듣기 위해 교회 오는 게 아니라 친목하기 위해 그 관계가 재밌어서 온다는 사실을 알아맞히자 10년 전 내가 했던 칭찬이 떠올랐다. “목사님 아래에서 성도 분들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일 때는 모이고 흩어질 때는 잘 흩어지는, 연대가 강하고 예수님 안에서 성도와의 교제 부분이 강하고 좋아요.”(2012. 12. 20)

교회를 나오기 전, 분석한 담임목사 설교 자료를 보이면서 신앙과 맞지 않으니 떠나겠다고 말하려고 계획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평가할 만한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과는 무관한 자기 얘기, 교회 얘기일 뿐이다. 교회의 모든 교직자가 자기 얘기하느라 바쁘다. 교회를 떠난 지금은 ‘왜 저 설교 들으러 교회를 가지?’ 생각만 들 뿐이다. 저럴 시간에 대중 강연을 보든지 인문학 강좌를 듣는 편이 더 나을 텐데. 성의 없고 지루하며 무가치한 QT 할 시간에 커피 마시며 신문을 보는 편이 더 행복한데 말이다. 교회보다 도서관을 좋아한 이유다.

자유의 새노래

자유의새노래

정론직필의 자유·시대성의 창달·주체자의 기록

답글 남기기

Previous Story

[건조한 기억모음②] [1] “교회 누나를 지키지 못한 내가…”

Next Story

[에셀라 시론] 든든함이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어

Latest from 역사

[소녀의 이름으로①] 죽음의 네 화살과 신앙의 해방… 탈교의 끝에는 소녀가 있었다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려던 때였다. 기독교가 진리를 탐색하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왜곡하고 소진시키는 신념 구조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독교적 삶은 심리적 탈진을 야기했다. 누군가에겐 여전히 의미 있는 신앙이라 해도, 기독교만의 배타적 복음주의는 성서의 민낯을 깨달은 이에게 더는 도움이 되지 않는 체계로 기능했다. 교회를 탈퇴한지 10년이 흘러서야 미신으로 인식하기에 이른 것이다. 신앙을 내려놓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과 문화, 가치관 전체가 걸린 선택이기에 더욱 조심스럽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탈교 10년을 되돌아보면, 그 과정은 치밀하고 정교했다. 감정적 반발이나 충동이 아닌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과 사유, 고통과 관찰을 바탕으로 자기 삶의 주도권을 되찾은 증거인 것이다. 교회의 과잉 노동과 사회를 바라보는 이분법적 시각, 새능력교회의 신앙은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드는 이념이었다. 무너진 인간성은 탈교를 하면서 회복되고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회복은 그저 신앙의 해체가 아니라, 내면 깊숙이 잠들어 있던 감수성과 윤리적 질문의 귀환이었다. 그때 모습을 드러낸 것이 바로 ‘소녀소년담론’이다. 기독교가 부정했던 인간의 섬세함과 복잡성을 복원하려는 시도, 그리고 잃어버렸던 인간성의 언어를 되찾아오는 과정을 서사화한 것이 소녀소년담론이다. 소녀소년담론은 도덕적 대체물도, 반기독의 상징도 아니다. 억압된 인간성의 귀환이며 되살아남의 기적을 담론화한 것이다. 이제 소녀소년담론은 기독교를 대체해 삶의 한 축으로 섰다. 악과 선의 이분법의 시각을 버리고 다채로운 삶의 풍경을 바라보며 끊임없는 대화로 세상과 소통하는 틀로 발전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어떻게 해체되었을까. 소녀소년담론을 만든 신앙 주권주의를 살펴보자. 연결 기사 [소녀의 이름으로②] 예고 없이 다가온 ‘신의 죽음’… 그의 대침묵이 이끈 기독 담론의 끝

[소녀의 이름으로②] 예고 없이 다가온 ‘신의 죽음’… 그의 대침묵이 이끈 기독 담론의 끝

연결 기사 [소녀의 이름으로①] 죽음의 네 화살과 신앙의 해방… 탈교의 끝에는 소녀가 있었다 2017년은 오순절 신앙의 내적 종말이 가시화된 해였다. 참여교회에서의 탈출, 그리고 해방. 버뮤다순복음교회의 해체는 제도권 교회의 붕괴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는 신의 대침묵과

[건조한 기억모음⑥] [1] 11년 전, 금빛 하늘 아래… 아이들의 힘찬 응원가 “빠따빠따빠따팀”

크리스마스 시즌도 벅찼는데, 여름방학까지 바빠진 건 신학교에 들어간 뒤부터였다. 교회 수련회에 따라다녀야 했는데,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교회학교와 중고등부, 청년부까지 모두 세 번. 한 번에 2박 3일에서 3박 4일씩, 한 달 가까운 시간을 교회에 바쳐야 했다. 그래서 가기 싫었다. 혼자 유유자적하게, 내 시간대로 여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알바비 때문에 그러니? 목사님이 줄 테니까, 좀 가라.” 나는 결국, 하는 수 없이 교회 스케줄에 맞춰야 했다. 중고등부와 청년부까지는 수월했다. 어차피 프로그램은 이미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면 되었기 때문이다. 큰 업체에서 진행하는 행사라 교사 자격으로 아이들을 케어만 하면 됐다. 예배도 드리고, 물놀이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었다. 밤에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도 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몸치 박치였던 내가, 이 세계에선 인기 교사? 문제는 교회학교였다. 중고등부와 청년부가 전국 단위로 여는 빅 텐트라면, 교회학교는 강원도 영동 지방의 교회들이 모여서 여는 스몰 텐트 수준이었다. 그러니까 나의 일손이 필요한 규모의 여름성경학교인 것이다. “선생님, 나가서 율동 좀 추세요.” 몸치 박치인 내가? 예배 중 갑작스러운 부탁에 시끌벅적했던 대성전이 한순간 고요해졌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두어 번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시작부터 어긋나 버렸다. 말 그대로 무대 위로 나올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나는 마지못해 무대 위로 올라갔고 속으로는 울면서 어설프게 율동하고 말았다. 동시에 마음의 상처도 입었다. 나와 이 여름성경학교는 맞지 않는 옷 같았다. 혼자 상처를 다독이다가 문득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규모도 작고 나의 손길이 필요한 여름성경학교라…. 반대로 내가 나설 수 있는 무대이지 않을까. 무언가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안고 예배 중 율동과 게임 등 다양한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풀이 죽어 있던 교사가 갑자기 의욕 넘치는 모습을 보게 된 아이들도 나를 따르기 시작했다. 툴툴 거리는 아이에게는 “대충대충춤추면서 하나님을예배해도돼 뭐든지 강제로하는건 하나님도좋아하지않으셔” 싸우는 아이에게는 “아니아니무슨일이야? 누가널화나게했니데리고와” 이제는 내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율동도 추면서 찬양 인도자보다 더한 성령 충만한 몸동작을 선보이며 아이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문제가 터지면 터진 대로 찾아가 수습하고, 물어보면 물어보는 족족 방언 터진 것 마냥 성경적으로 대답하니 나도 아이들도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믿을 수 없었다. 교회에서도 매일 방송실에서만 살다 보니, 내가 이렇게 붙임성 있는 인간인 줄은 몰랐다. 특히나 아이들과 이렇게 가까워질 줄은 상상조차 못한 것이다. 죽어도 하기 싫은 일 몸치 박치인 내게 선뜻“선생님, 율동해주세요” 어색한 강요 분위기에끝끝내 마상까지 입고 그래, 좋아, 그거야 ‘오히려 내 무대 아냐?’180도 달라진 내 모습 율동도 인솔도

[건조한 기억모음⑥] [2] 한여름 소년은 보았다 목마른 너의 가능성을

신학교에만 입학하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나의 허상은 단 한 달만에 산산히 부서졌다. 방학이 오기 전까지 나는 무력하게 지내야 했다. 목사는 끊임없이 “할 수 있다”는 새 능력만을 설교 했지만 나는 할 수 없다 는 무기력을 느꼈다. 1980년대의 부흥을 제창하는 교회에서 2014년도의 신앙을 가진 나와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우울증은 더욱 깊어만 갔다. 할 수 있는 사회에서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은 나를 더욱 슬픔으로 몰아 갔다. 행위로 구원을 받는 교회의 능력주의가 빚어 만든 결과인 것이다. 필요할 땐 은혜를 찾으면서, 정작 중요한 순간엔 행위를 강조하는 교회의 이중적 신앙이 나를 절망의 수렁으로 빠뜨리고 말았다. 그런 어두운 수렁에서 나를 구해준 것은 하느님도, 목사도 아니었다. 먼 타지에서 나와 함께해 준 루디아 선교사였다. 루디아 선교사는 내가 다니던 학부 부설 기관에서 선교 활동을 위해 잠시 머물렀던 중년의 여성이다. 할 수 없다는 무기력에 사로 잡혔을 시절, 내게 가능성을 일 깨워준 사람이다. 11년 전 신문은 기록한다. “‘형제는 사람의 마음을 간파하고 그 사람에게 맞도록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론을 알고 있는 자다’라고 어두움 가운데에서 빛을 소개해주는 일이 있었다.” 교회에서는 무능력한 신학생, 할 줄 아는 게 없는 녀석, 심지어 눈치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루디아 선교사는 남들이 보지 못한 나의 가능성을 선명하게 보았다. 그는 나에게 부활의 복음을 가르쳤고, 머지 않아 나는 신 죽음의 시대를 경험해야 했다. 그럼에도 루디아 선교사가 일깨워준 가능성은 훗날, 내게 재림 신앙을 되살리는데 영향력을 발휘한다. 언제나 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는 아이들의 삶을 바꿔 줄 기회라고들 광고한다. 그러나 정작 그해 여름성경학교는 아이들의 삶과 나의 삶을 바꾸지 못했다. 발견한 것은 있었다. 목마른 소년의 간절한 가능성을. 연결 기사 [건조한 기억모음⑥] [1] 11년 전, 금빛 하늘 아래… 아이들의 힘찬 응원가 “빠따빠따빠따팀”[건조한 기억모음⑥] [3] 수련회 때마다 반복된 ‘마귀의 역사’… 외로움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Today소랑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Go to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