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애문학 - Page 2

[지애문학] 찝찝하고 불쾌하다 못해 쓸쓸하고 아득한 빗방울

2024년 03월 04일
방학이 끝나든 뭐든 간에 시궁창 같은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며칠 전에 읽은 신문 칼럼이 떠올랐다. “돈 많은 사람들이 다 똑똑한 건 아닌 것처럼, 똑똑한 사람들이 다 돈만 좇는 건 아니다 (……)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살지만, 몇몇은 별을 바라보는 법. 그들의 분투를 응원한다.”

[지애문학] 그날 밤 연락하지 않은 건 자존심 따위를 지키려는 게 아니야

옛날 일들이 떠올랐다. 갑자기 떠오른 일들에 기분이 울적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휴우증은 여전히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떠오르는 걸까. 아닌 것 같다. 그때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분명히 뺨을 때리고 말았을 거다. 불쾌감, 적의, 분노, 배신, 파괴, 한순간의 말들로 사랑했던 그 사람과의 모든 기억이 얼룩지고 말았다.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은 ‘새로운 친구’ 목록에서 적의로 가득한 그 얼굴이 역겨웠다. 오늘은 그냥 두지 않았다. 마음먹은 대로 움직였다. 프로필까지 차단. 이젠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졌으면 좋겠다. “누구랑 톡하는데 심각해?” “아냐, 오빠.” 볼 새라 폰을 끄고 배에 누워 만지작거리며 발을 흔들었다. 뚫어지게 바라보는 눈빛이 닿았다가, 미끌거리다 다시 닿으며 마주치고 떠나기를 반복했다. 또 시작이다 그런 표정. 귀여워. 관심 끌고 싶은 마음마저 귀엽게 봐주는 느낌이 귀여워 미치겠다. 힘들다는 듯 머리 위에 손을 대고 쓰다듬는 이 순간이 마냥 좋았다.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은 그런 기분. 사람으로 받은 상처 사람으로 해결하란 말이 떠올랐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후유증조차 경험할 겨를도 없이 빠르게 기억에서 사라지면 좋을 텐데. 오빠와의 데이트 중에도 아문 상처는 이따금 되살아난다. “삐질 때마다 달래주는 거 안 힘들어?” “웬일이야? 그런 걸 물어보고.” 아니……. 여기까지. 더는 잇지 않았다. 오빠는 아직도 생각이 많아질 때마다 하는 특유의 생각을 모른다. 그냥 내뱉은 말인 줄 안다고. 장난감처럼 만지작만지작, 그러다 상상에 빠진다. 힘들었을 그 때, 너한테 연락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딱 한 번 있었다. 추했다. 뒤돌아보지 않기로 했는데 금세 돌아서 엉엉 울고 말았으니. 그 모습 하나까지 남김없이 발라먹듯 이용해 먹었다. 그리고 더는 외로워도 슬퍼도 힘들어도 뒤돌아서지 않기로 했고 한 번도 뒤돌아서지 않았다. 며칠 전 그 밤만큼은 불안감에 휩싸인 마음을 달래느라 정말 많이 힘들었다.

[지애문학] 퇴근 길

2021년 02월 24일
“저도 그 방면인데…. 타세요!” 괜시리 들킬까봐서 말 못하던 차 말할 때까지 기다린 꼴이었다. 바보 등신. 좀체 멀미가 낫지를 않으니 태워주는 아량도 무의미했다. 지금쯤 지하철 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단어 외우고 있어야 할 시간. 몸은 편해져도 속 버리느냐 몸은 힘들어도 속 편하느냐. 하지만 이 남자 옆에서는 말짱했다. 이름 모를 적당한 향수. 운전대에 올려둔 손목의 시계. 힐끔 쳐다볼 때마다 반하게 만드는 날카로운 턱선. 차체의 흔들림 하나 없는 고요한 분위기가 좋았다. 이 남자에게 풍기는 색다른 느낌이 만날 때마다 좋아하게 만들었다. “자유의새노래 제1라디오 7시 뉴습니다. 살인 및 사체유기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김지수 씨 공판에서 재판부가 사형을 선고하자…….” 이 남자는 정신없이 일에 치이다 퇴근할 무렵 귀에 꼽은 이어폰에서 울리는 고요한 노래 같다. 자기 할 일에 열심히 살아가면 생기는 느낌일까. 하루 종일 졸지 않고 피곤함 없는, 오히려 퇴근길에서야 머리가 맑아지는 그런 느낌. 마스크 없이도 숨 쉴 수 있는 믿을만한 그런 사람. “제 어떤 부분이 좋으세요?” “… 네? 숲 같아서 좋아요.” 아, 그러시구나. 하하. 그렇죠.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아이니까요. 라고 말하는 순간 ‘제’가 실은 ‘쟤’였다는 걸 뒤늦게 알아먹었다. 이 바보. “진유 씨네 논설위원하고 밥 먹었어요. 겉으론 치고받는 것 같아 보여도 따로 만나거든 곧 친해요. 오늘 사설도 기막히던데요?” 기막혀서 할 말이 없다. 동시에 말한 사설 제목. 같은 소속사 멤버를 잔혹하게 살해하고도 죽일만해서 죽였다고 말하다니. 그런 악마를 변호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지 물은 논설위원의 글. 차장이 갑자기 빼고 넣으라는 이 사설 때문에 퇴근도 늦어졌다. 한때 좋아했던 가수인데, 하루아침에 악마가 되고 살인자가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매일 지하철 타고 걸어서 출퇴근하면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기야 하죠. 그치만 지하철에서 읽는 소설 무지 좋아해요. 버스는 흔들림이 커서 읽지도 못하는 걸요.” 숲 같다던 말, 사실 당신에게 어울리는 칭찬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모두에게 미움 받는 악마조차도 마음껏 숨 쉴 수 있게 만드는 숲. 언제든 찾아와 머물고 지나가도 불평 한 마디 않는 편안한 숲. 가끔 찾아와도 서운한 티 드러내지 않는 안아줄 숲. 소설과 논문, 단독 기사로 죽어버린 연애세포가 살아난다. “근데 찢어버렸어요. 지수가….” 잠시간 우리의 대화는 끊어졌다. 가로로 한 번 세로로 한 번 찢어진 상고장 앞에서 애써 웃으려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신호에 멈추자 노을을 바라본다. 들이 마신다. “어른들은 늘 만들어준 길대로 살아가면 편할 거라고들 하죠. 그 길 벗어나려던 피해자가 원망스러웠을 겁니다. 매일 꿈에 찾아와 망치를 들고서 가슴을 내리칠 때면 ‘미안해’ 한 마디에 멈추고서 사라지는 원혼. 정신과 진료로 밀고 들어가자고 해도 듣질 않아요. 이런 고민도 사치라고.” 플레이리스트에서 완전하게 사라진 김지수…. 아니 악마의 이름은 내게도 당연했다. 창 밖 바라보던 노을이 어쩌면 머잖은 마지막 하늘이란 생각에 먹먹했지만 상관없었다. 나와 먼 거리에서 숨 쉬고 있을 뿐이니까. 그런 악마에게도 안아줄 숲이란 게 대단해 보였다. 더는 악마 만날 기회조차 사라진 당신이 마지막 발갛게 물드는 노을을 바라보자 신호가 바뀌었다. 조용히 움직이는 차 안 라디오에선 단신이 끝나 있었고 노래 하나가 먹먹한 분위기를 전환할 뿐이었다.

[지애문학] 지하철 역사(驛舍)

2021년 02월 10일
후회라는 단어에서 시작한 것 같다. 내뱉지 말았어야 했던 말, 하지 않아도 되었을 행동. 같은 장면이 같은 말과 같은 행동으로 반복되어 패치워크 모양으로 덧대어져 모였다. 한데 모아 눈앞에서 뒤통수까지 둥그런 모양으로 가로막아 내딛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야 하지 말아야 했을 생각으로 알아차렸다. 불현듯 나타난 패턴이 반복과 반복으로 모아졌듯 되돌아온 하지 말았어야 했다던 입말들이 하나로 모아 심장을 건드려 올라가는 박동 속에 걸음을 멈추었다. 후회라는 단어가 곧 자책으로 연결되는 순간. 두 번째 국면을 맞는다. 뒤로부터 새까매진 그림자가 머리와 얼굴, 가슴에 이르러 덮었고 광장에 즐비한 간판이 내 앞으로 다가온다. 가루처럼 흩어지던 아스팔트 반사되던 네온사인 박동처럼 들뜨던 소리들이 먹먹함을 입으며 질주하는 터널로 뛰어간다. 맞아, 길다고 생각하던 터널도 밝아지고 어두워진 여러 번의 순간들을 지나쳐야 벗어나지. 그렇게 생각하고 표정 관리를 떠올렸다. 자각이 드는 걸 보면 아직은 세 번째 국면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여지없이 다가오는 어두움과 빛으로의 이동이 혼선을 만들며, 세 번째 국면을 맞는다. 두 눈은 반짝이던 랜턴처럼 아파오기 시작하고 조금씩 호흡이 불안해져 불규칙적 내뱉음이 빠르게 마셔야만 산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패치워크는 사라진지 오래다. 그을린 타오름도 잊었지만 지금, 여기가 강박처럼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어제의 일도 내일의 일도 찾을 수 없었다. 부끄러움, 추한 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짧아져간다. 가다듬을 새 없이 후들거린 다리가 어디라도 앉아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보통은 세 번째 단계에 그쳤을 때에야 사라지건만 지금의 지나칠 터널은 중간인지 끝에 도달했는지 좀체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서 끝나갈 지점을 추측하지 못한다. 멈추지 않고서 지나칠 수 없기에 입말의 흐름도 리듬처럼 하나 둘, 호흡의 흐름으로 바꾸어 나간다. 내쉬고, 마시고 잊어버린 터널 랜턴 고장 난 것처럼 시야에서 사라진다. 들고 있던 물을 마셨다. 고장 난 랜턴의 터널은 껌껌했다. 저 앞 출구가 보인다. 작은 원 조금씩 다가와 터널의 끝임을 말해준다. 네 번째가 오기도 전에 끝난다는 사실에 화색이 돋는다. 마음속에 잊었던 한 가지를 선언했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그건…….’ 주문처럼 되뇌는 음성언어가 이미지로 텍스트화 되지 않도록 내 입말에 주의했다. 입을 벌어 그에서 야까지 멈추지 않고 터널에서 나올 때까지 주문으로 소환했다. 다가오지 않아도 괜찮을 그 이름 덧붙여 중요하지 않다고 선언했다. 터널을 넘어서지 않기 전에는 선언을 싫어했다. 무속신앙 부적처럼 보이던 유감스런 빨간 글씨 쓰듯 효능 없는 농담으로 보였기에. 분위기를 고양하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농담처럼 조크를 배우면서 터널에서 견뎌내는 방법으로 터득해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건 터널뿐만이 아니었다. 조금씩 웃음도 들었지만 싸맨 머리에 떨군 나의 고개가 멀리서 지켜본 것 같지 않아 움직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갈 길이 멀다는 생각도 지금은 중요치 않았다. 잠시만. 잠시만, 앉아서 눈 감아 완전히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했다. 처음 했던 그 단어가 잊혀진지 오래다. 다행이다. 떠올릴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생각에서 생각으로 단어가 단어들로 연결되는 느낌을 좋아한다. 서로가 끌어주고 부족함을 채워주는 그림으로 떠오르듯 그 단어에서 한 발자국 내딛었을 따름이다. 이따금 걷히는 안개에서 터널로 들어올 때면 놀라곤 한다. 피할 수 없어서 슬프지만 할 수 있는 건 생각뿐이다. 누군가 건드리는 순간을 느끼기 전까지 앉아 있었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지애문학] 일탈

2021년 01월 17일
“나 주 안에 늘 기쁘다/나 주 안에 늘 기쁘다/주 나와 늘 동행하시니/나 주 안에 늘 기쁘다” 예배당 바깥으로 나갔어도 귀에서 낭낭하게 들려왔다. 설교를 마치고 부르는 찬송가 멜로디가 내일 아침에도 허밍으로 울릴 걸 생각하면 역겹기 그지없다. 3층 방송실에서 바라본 교인들
Today소랑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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