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여정을 잠시 중단해야 했다. 무척 따가운 햇볕에 조금이라도 움직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신주쿠에서 아카사카미쓰케역(赤坂見附駅)까지 이동했다. 여자친구와 함께 다시 숙소로 돌아간 것이다.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나는 잠시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10분이었을까. 내가 코를 골고 있다는 걸 느낀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그 짧은 시간의 수면이 내게 개운함을 안겼다. 여자친구는 릴스를 보면서 쉬고 있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시간이 4시 반쯤이었다. 이대로 저녁까지 아무 것도 안하며 쉬기만 하기엔 무척 아쉬웠다. 여자친구가 아사쿠사에 가보자고 제안했다.
③ 아사쿠사
오코노미야키와
말차라테·붕어빵
든든한 저녁 밥상
뽑아본 한해 운세
“대길, 최고의 길운”
우리는 긴자라인(G) 다메이케산노역(溜池山王駅)에서 아사쿠사역(浅草駅)까지 단숨에 갔다. 도쿄 메트로에서 운영하는 일본 지하철은 한국과 달리 조금 작았다. 천장 곳곳에 매달린 인쇄물 광고를 보며 덕지덕지 붙은 기분과 동시에 아늑한 감정을 느꼈다.
오후 5시. 도시의 온기는 수그러들었다. 여자친구와 손을 잡고 아사쿠사 신사 방면으로 걸어갔다. 그새 콘크리트 사이에 붉은 노을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도로의 차량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길가의 사람들도 어깨를 스치지 않을 정도로 걷고 있었다.
아사쿠사 신사에는 무척 많은 관광객으로 붐볐다. 사실 뭘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만큼 사람들의 활발함에 넋을 놓고 말았다. 기도하는 사람들, 센소지에서 통을 흔들며 운세를 기다리는 손길들, 그늘에 뉘어서 쉬고 있는 관광객들. 우리는 아사쿠사를 벗어나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마주한 고즈넉한 뒷골목 풍경에 또 한번 넋을 잃었다.
여자친구는 오코노미야키를 먹고 싶어했다. 나는 여자친구를 따라 오코노미야키·몬자 시라이와 아사쿠사점(お好み焼き・もんじゃ しらいわ 浅草店)에 들어갔다. 시원시원한 사장과 점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가 한 호흡으로 일하고 있는 역동적 풍경이 진귀하게 느껴졌다. 사실 맛은 모르겠다. 내가 오코노미야키를 무척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그냥저냥했다.
내 입맛에 맞는 건, 간식으로 먹은 붕어빵과 말차라테였다. 우리는 우연히 오코노미야키 가게 근처에서 붕어빵을 먹으려 했다. 자리에 앉으려 했지만 ‘상품을 구매해야 앉을 수 있다’는 문구에 단념해야 했다. 여자친구가 말차라떼를 가게에 정중히 물었다. “앉아서 먹어도 되나요?” 호쾌한 수락에 말차라테도 구매해 곁들어 먹었다. 고마운 인심에 라테도 시원하게 넘어갔다. 고마워요, 사장님.
돌아가는 길, 상점가 대부분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중간중간 문을 연 가게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느껴졌다. 또 하나의 소중한 기억을 담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나의 발걸음을 더욱 가볍고, 날아다니게 만든 건 아사쿠사 신사에서 받은 한해 운세 덕분이다. 100엔을 넣고 통 안에서 나무 막대기를 뽑았다. 종이를 받아들고, 나는 chatGPT에게 해석을 요청했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제19번: 대길·최고의 길운’ “一信天飛 向天飛/川舟自帰/前途好事成/應得貴人推(한 번 믿으면 하늘로 날아오르듯 큰 뜻을 펼친다/강의 배가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가듯, 자연스럽게 안정을 되찾는다/앞으로의 길에는 좋은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마땅히 귀인의 도움을 받아 밀어주게 될 것이다.”
여자친구는 재작년 흉한 운세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최고의 길운?! 여자친구와 만나 한해, 여행하는 이 자체가 길운이 아니었을까. 앞으로의 우리가 더욱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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