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자, 도시 내음이 진했다.
이토야 문구점을 나온 순간이었다. 특유의 냄새에 사로잡혔다. 여자친구 손을 잡고, 긴자 1초메(銀座一丁目)를 거닐었다. 바삐 걷는 사람들, 여유로운 우리의 발걸음, 그 사이 저물어가는 노을을 온몸으로 지각했다.
어디서 저녁을 먹으면 좋을지 우리는 고민했다. 지겨울 정도로 본 편의점 로손(Lawson)을 지나쳐 꽤 그럴듯한 식당을 발견했다.
‘텐동텐야 긴자점(天丼てんや 銀座店)’
① 긴자
이토야 문구점까지
종일 걷고 또 걷고
주린 배 쓰다듬다
발견한 한 텐동집
맛으로 대접하는
존귀한 서비스에
“고치소사마데시타”
상당히 목이 말랐다. “이랏샤이마세!(いらっしゃいませ!)” 나이든 점원이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곧 시원한 물을 내오며 정중히 인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일본 점원들은 언제나 친절하다’는 뇌리에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덩달아 나까지 정중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친구는 미소를 머금고 메뉴를 골랐다. 종일 걸어야 했으므로 우리는 고달파졌다. 일단 물 한잔 들이켰다. 서서히 선명해지는 한국어 전자 메뉴판을 보면서 나 역시 미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친구는 튀김과 소바를, 나는 텐동과 소바를 주문했다. 오래 지나지 않았다. 음식을 내오며 정중하게 인사드리는 점원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여자친구와 나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지나가던 길에, 아무 생각 없이 들어온 가게. 그것도 평범한 메뉴를 저녁으로 먹고 있는데 감동 받을 일은 단 하나였다. 맛. 정말 맛있었다.
적절한 간장의 짭짤함. 달달한 튀김옷이 적당하게 단단했다. 시원한 육수에 와사비를 모두 털어 먹었다. 단 한 가닥도 남기지 않았다. 서운하지 않은 맛에 또 한 번 대접 받은 기분이 들었다. 적당히 맛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노련함이 묻어난 그런 맛에 감격했다. 긴자 한복판에서 눈물 흘릴 수는 없었다. 여자친구와 일본, 그것도 도쿄 긴자에서 즐기는 첫 저녁에 행복한 감정을 느꼈다.
“고치소…고치소사마데시타!(ごちそうさまでした)”
“아리가토고자이마스.(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순간 발음을 절었다. 그 또한 감사히 받아주는 점원의 정중한 인사에 여자친구와 나도 정중히 인사드리고 가게를 나왔다.
한 방울, 두 방울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국보다 일찍 컴컴해지는 하늘, 후덥지근했지만 따듯한 공기, 여자친구와 무작정 달리고 있는 이 모든 상황이 마냥 즐거웠다. 예상하지 못한 비, 일본 하늘이라 용납이 되는 이 우스운 광경.
우리는 근처 생활용품점에 들렀다. 자외선 차단제도 살 겸, 우산도 골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우리는 한국인이라 일본어를 전혀 읽을 줄 몰랐다는 점이다. 그저 웃음이 났다. chatGPT를 켰다. 번역을 부탁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했다. 편의점에서 산 야식을 먹었다. 창문으로 내다보는 도쿄의 야경은 압도적이었다. 고단한 하루. 여자친구를 끌어안고 잠을 잤다. 내일의 여행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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