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 포로기 후기의 이스라엘 화두는 ‘왜 나라를 빼앗겼느냐’였습니다. 전쟁의 패배는 곧 야훼 하느님의 죽음이며 신의 죽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전쟁의 패배란 전능하고 위대한 유일신의 죽음이며 그 시대를 상징하는 아픔인 겁니다. 우리는 잘 안 되는 일들을 겪을 때마다 저주를 생각한다든지 무언가 잘못된 행동을 한 건 아닌지 되짚곤 합니다. 복과 저주를 우리의 행동과 연결해서 생각하는 습관은 매우 익숙한데요. 이스라엘도 전쟁에서 패하자 그들의 행동을 복과 저주로 연결한 습관은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가까운 사람과 불편한 일이 벌어지면 우리는 본질을 생각하기보다 당장 눈에 띄는 행동과 제스처에 신경을 쓰는데요. 지극히 당연하면서 또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이기도 합니다. 몇 가지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첫째는 왜 문제가 벌어졌는지를 생각하는 것. 문제가 발생한 원인을 들여다보고 어떻게 해결할 지 생각하는 게 가장 필요할 겁니다. 둘째는 문제와 아무 상관없는 감정을 정리하는 작업입니다. 문제를 해결할 때 감정과 원인을 구분하지 못해 더 큰 문제로 발전하는 경우를 봅니다. 본질을 생각한다는 건 외면하지 않고 문제를 그대로 들여다보는 용기에서 시작합니다.
사실 말은 쉽죠. 사람은 언제든지 이론에 강하고 실제 상황에 약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외면하려는 건 인간이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태도이기에 더욱더 우리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자세와 연습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일.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맞추기 위해 무엇을 바꾸어 나갈지를 생각하는 일. 이조차도 좋아하는 사람이 원하는 일인지를 되짚어보는 일. 더 나아가 아예 관계를 정리하는 게 더 합리적일 수 있다는 점까지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겁니다.
본질을 회피하지 않으며 직시한다는 말의 의미 속에는 방법이나 이론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이 있기에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발걸음 떼기를 해봐야 할 겁니다. 신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 왔습니다. 마치 연습이라도 하듯, 인간에게 맞추어 30년의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이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알고 이해하기 위해 맞춰주어야 할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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