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죽어가는 겨울, 죽음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모든 가을은 모든 존재의 죽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계절의 조입인 듯합니다. 죽음은 언제나 인간에게 이별을 안겨다 줍니다. 무엇이든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가리키죠. 모든 것은 태어나고 죽음을 맞이하듯, 죽음 앞에 장사 없으며 죽음 앞에 거센 힘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이는 태어나면 죽고, 죽으면 존재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남는 것은 기억이며 향기입니다.
죽음은 인간에게 고통을 안겨주지만 고통을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은 인간을 인간 답게 만듭니다. 죽음의 아픔은 또 다른 새로운 생명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죽음은 인간 본연의 존재를 묻게 합니다. 또한 죽음은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보게 만드는 창구 역할을 합니다.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면 죽음을 바라보며 죽음을 극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죽음을 넘어서는 것이 아닐까요. 제가 죽음을 잘 안다는 건 아닙니다. 몹시 연약하기에 죽음을 말할 자격이 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죽음을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젠가 죽음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서 호세아서에는 야훼 하느님이 심판을 거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느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한 에브라임이 야훼 하느님으로부터 멸망 당하는 예언인 것입니다.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내가 그들을 사망에서 구속하겠다.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이제는 내게 동정심 같은 것은 없다.”(호세13,14) 무서운 구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다시금 약속합니다. 다시 당신에게 돌아간다면, 다시 당신께 용서를 구한다면. “그 나무에서 가지들이 새로 뻗고, 올리브 나무처럼 아름다워지고,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향기롭게 될 것이다.”(호세14,6)
아끼는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면 저는 깨닫습니다. 당신의 체취가 온 방안에 남는다는 사실을요. 유가족이 떠올랐습니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던 이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그 슬픔이 얼마나 클지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단한 겨울을 지나, 따스한 햇빛이 쬐는 봄으로 달려가기 위해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돌아오라(호세14,1)고 말하는, 야훼 하느님의 호소가 가슴에 찢어질 듯 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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