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발광 17세
켈리 프레몬 | 크레이그 감독 | 102분 | 15세이상관람가 | 2017
아빠를 심장마비로 떠나보낸 건 시작일 뿐이었다. 인생의 쓴맛은 연이어 터지는 법일까. 곰팡이처럼 싹트는 여드름, 수준 떨어지는 동급생들마저 나를 피하는 것 같은 분위기, 믿음직한 이미지 하나로 깝치는 오빠에게마저 빼앗겨버린 엄마, 설상가상 하나뿐인 절친을 오빠 침대 위에서 보게 될 줄이야!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다. 결과적으로 절친과 가족, 그 미운 오빠까지도 떠나버렸다. 여고생 네이든 이야기.
조금은 어른이 되었다고 깨달았을 때 이제 막 어른이 된 어린 내가 떠올랐다.
무언가 가슴 속 꿈틀거리는 불쾌감. 어른이 되거나 말거나 무료한 시간들. 그러면서도 ‘갑자기 어른이 되면 어쩌지’하는 불안감. 괜찮다가도 갑자기 한심해 보이는 나 자신. 누군가의 작은 말에도 대못으로 날아와 박히는 연약함. 죽지 못해 살지만 그렇다고 죽기엔 큰 용기가 필요한 허무한 삶. 그냥저냥 모르겠고. 자아가 마구 분열되다 못해 폭발할 것 같은 기분. 만일 10년 후의 내가 이제 막 소년의 티를 벗어난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이렇게 건네지 않았을까.
“걱정할 것 없어. 지금을 살아가.”
알게 모르게 십대 소녀와 소년은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날카로운 예민함과 민첩한 감각을 가졌다. 마냥 아이 취급할 수 없고, 그렇다고 어른으로 대접해주기 난해한 시기인 것이다. 개입하기엔 너무 끼어드는 것 같고, 바라만 보기엔 내다 버린 자식 같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어른들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보다 총체적으로 물어보면 감조차 못 잡는 소녀와 소년. 네이든은 누구보다 세상을 냉철하게 판단한 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으나 교사 브루너가 보기엔 그냥 좀, 흠.
그러나 네이든은 이제 막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새 살이 돋기 직전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끝나지 않으리라 체념했던 난고의 저 끝 밤이 마침내 저물고 있었던 것이다. 해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고통을 오롯이 느끼며 어른으로 자라고 있었다. 어떤 이는 20대에 다다른 자신을 돌아보며 이렇게 회상했다. “이제야 자아가 통합되는 걸 느껴요.” 갈기갈기 찢어졌다고 생각한 자아는 자신의 다양한 모습 중 하나였다. 이제야 나 아닌 듯 형상을 가진 모순과 화해하기 시작했다. 아프기만 했던 나날 중 아프지 않은 날도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비로소 현실에 대한 평형수가 맞춰지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갑자기 어른이 되면 어쩌지’
괜찮다가도 미워 보이는 나
견디고 성숙하는 네이딘
깨지고 부서지고 아픈 청춘
때론 모두 빼앗긴 듯하지만
견뎌낸 겨울 돋아나는 새살
사실 20대가 되고 30대가 되어도 더 어른이 되는 것 같진 않다. 그 때의 나 자신과 지금의 내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저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사람 대하는 기술이나 세상에 대한 지식, 일머리가 늘어난 것 빼곤 여전한 것 같다. 그러나 소녀와 소년을 보면 걱정 말라고, 아직도 너희 인생은 창창하다고 말해주고 싶은 건 왜 일까. 한뼘 정돈 성숙했기 때문일까. 나도 그 시기를 견뎠기 때문에 자신감이 생긴 걸까.
빼앗기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듯 나이를 먹으며 삶의 순리를 깨닫는다. 깨닫는 것만큼 나 자신에 대해서도 알아갈 때 상황은 나아지는 것 같지는 않아도 조금은, 한 뼘만큼 성숙한 나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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