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의 썸머
마크 웹 감독 | 95분 | 15세이상관람가 | 2009
아무도 없는 한여름 끝자락
새로운 계절 초입이었더라
그 애와 헤어지고부터 세상 모든 게 그 애로 보였다. 술 잘 쳐 먹으면서 못 마시는 척 내숭 떠는 리리코가 그랬고 음흉한 미소로 정치질이나 일삼는 직장 동료가 그리 보였으며 연애 사연에서 남친을 질질 끌고 가는 당찬 여자애가 그랬다. 애증의 감정이 깊어진 끝자락 실장님의 얼굴에서마저 그 애를 보았다.
이 영화도 그랬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애가 생각났다. ‘bitch’라는 단어까지도 모조리 닮은 모니터 앞에서 평행세계를 본 것 같았다. 톰이 썸머를 바라보는 콩깍지까지도.
“아름다운 미소, 긴 머리카락, 귀여운 무릎, 목에 있는 하트 모양 점, 섹시하게 입술을 핥는 모습까지, 귀여운 웃음소리, 침대에 잠든 모습까지도, 그녀를 생각하면서 듣는 노래도, 그녀가 주는 모든 느낌, 모든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한 마디로…. 세상 사는 맛이 나요.”(13:37)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썸머에게 톰은 화가 난 걸까.
“그녀를 증오해. 울퉁불퉁한 치아. 촌스러운 머리. 튀어나온 무릎. 징그러운 바퀴벌레 같은 점. 더럽게 입술을 핥아대고. 천박한 웃음도 싫어. 이 노래도 싫어!”(57:36)
그럼에도 썸머와 닮은 여자라면 누구라도 끌린다. 허나 더는 발견할 수 없는 썸머에 좌절하는 톰. 서로 좋아하던 순간에 멈춰버린 시간, 톰은 홀로 서 있는다. 그래서 화가 난다. 혼자만 운명의 시간에 서 있다는 사실에.
주인공 톰의 찌질한 모습에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고 성장해가는 어텀과의 첫 만남 앞에선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이제 썸머를 증오하지 않는다. 그가 나쁜 년이든 아니든 간에 더는 내 운명과는 무관한 사람이니까. 그저 스쳐지나간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니까.
이 모든 아픔을 겪고 마주한 새로운 계절, 500일의 끝에는 새로운 1일이 다가오는 사실에 주목했다.
“추운 겨울 끝을 지나/다시 봄날이 올 때까지/꽃 피울 때까지/그곳에 좀 더 머물러줘”(방탄소년단, 봄날, 2017)
마침내 견디고 견디어내 만난 운명의 사람. 꺼지지 않을 새로운 계절에 안녕.
“추운 겨울 끝을 지나
다시 봄날이 올 때까지
꽃 피울 때까지
그곳에 좀 더 머물러줘
머물러줘”
방탄소년단, “봄날”, YOU NEVER WALK ALONE, 201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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