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자유의새노래 칼럼

회사 일도 못하는데 됨됨이도 없는 인간

 

 

무능한 인간을 상사로 둔다는 건 비극적인 일이다. 월급 더 받는 건 고사하고 일 수습은 아랫사람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머리도 없고 이간질이나 한다면 더욱 그렇다. 하는 일이라곤 농땡이나 피우는 주제에 남들보다 덜 일하고도 힘든 내색 보일 때면 헛웃음만 나온다. 그런 무능한 상사가 지난 겨울 회사에 투하 됐다. 경력직이란다. 첫 만남부터 심상치 않았다. 대표에게 부장의 학력을 물으며 비웃던 그 저녁을 잊을 수 없었다. 얼마나 잘난 인간이기에 실무에서 한창 뛰던 우리 부장을 비웃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무능한 상사의 업무 능력은 처참할 지경이다. 하나를 요구하면 두 일감 되돌려주는 꼴이다. 인수인계 문제가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업무 능력 자체가 없었다. 당연히 소통이 될 리 만무했다. 말만 전공자일 뿐이지 이쪽 일과는 아무 관련 없는 인간이었다. 대표는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일손 모자라는 마당에 어렵게, 어렵게 모신 분이다” 그러니 잘 대하라는 말이었다. 한두 달하다 관둘 줄 알았다. 웬걸 버티기에 돌입했다. 낙하산 인사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아니란다. 정체가 궁금했다.

처음 회사에 오면 가장 먼저 피해야 할 사람을 찾는다. 인간관계야 언제든 멀어지기도 하고 붙기도 하는 법이다. 이간질은 다르다. 이간질하는 인간은 상종 자체를 말아야 한다. 성장 가능성도 없고 영양가도 없기 때문이다. 말하는 이, 속은 후련할지 모른다. 그런 얘길 이제 막 입사한 사람에게 말한다는 건 인간관계가 고르지 않다는 증거다. 제1배제 대상인 이유다. 문제는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경우다. 대표가 그런 인간이다. 무능한 상사를 감싸느라 우리 부서를 나쁜 사람들이 모인 부서 취급하기 바빴다. “부장이 말이야 새로 들어왔으면 업무도 가르쳐주고 친하게 지내야지….”

무능한 상사는 이간질도 마다하지 않았다. 내 부서 사람들을 악마로 만들었지만 시간은 착한 사람들 편이었다. 무능한 상사가 입사한지도 열 달이 지났다. 이제 사람들은 무능한 상사의 무능을 알아차린지 오래다. 인간관계도 엉망인지라 평판도 시원찮다. 요즘 좀 달라졌다. 어떡해서든 일감 구하느라 요란하게 뛰어 다닌다. 재계약 시즌이 다가와서야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한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가장 잘려야 할 톱3에 꼽혔다고 한다. 이젠 잘리거나 말거나 관심 없다.

때론 세상은 불공정하게 돌아가는 것만 같다. 어차피 무능한 상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살아온 만큼 관성대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관성을 보았다. 변하는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정직이란 관성. 변하지 않는 건 종교적 가르침 따위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힘도 변하지 않는 가치일 수 있다는 것. 돈의 가치 따위가 세상을 구하는 게 아니라 삶의 토대를 이루는 이름 없는 것들의 정직함이 변하지 않는 항상성을 만들 수 있겠구나 깨달았다.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 걸어 갈 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