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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자유의새노래 칼럼

보고 싶은 얼굴, 채현국

문서 속 사진의 출처는 한겨레.

 

가끔 엄마가 보는 드라마 내용이 궁금해 물어볼 때가 있다. 내용 이해가 될 만큼의 전달력 가진 드라마일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근데 저 드라마는 다르다고 말했다. 감동을 주는 내용인데 어른이 발레를 배워서 아무튼 노인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 드라마란다. 타이밍에 맞추어 발레복을 입은 박인환 배우가 자세를 취했다. 송강 배우가 차가운 표정으로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데 온화한 햇살이 70먹은 노인을 안겨주는 데에서 이 드라마는 결이 다르구나 느꼈다.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 이야기다.


경비아저씨 이미지만 뇌리에 남았을 만큼 그가 어떤 배역을 맡았는지 모를 정도로 얼굴만 알았다. 숨을 고르며 자세를 취하고, 1분 동안만 버티면 가르치겠다던 미션에 기어이 해내고 말자 그 얼굴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앞서 내러티브를 비판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가지는 즐거움과 감동, 감정을 넘어선 이해 방식을 재차 강조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 드라마 곳곳에 배치한 복합적 캐릭터의 상황과 환경은 감동만을 주지 않았고, 누군가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젊은이와 늙은이가 사제 관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독특함. 별 볼일 없는 노인인 줄 알았지만 삶을 통해서 다져진 배달과 당구 실력. 차가운 대답을 내뱉어도 잃지 않는 배움의 용기. 멱살 잡은 호범의 분노에는 이유가 있다는 사실. 싸가지 없게 굴어도 화 한 번 내지 않으며 사실들을 나열하여 채록이 그만 괴롭히라고 호소하는 겸양. 주먹이 우선이고 돈이 먼저이고 능력중심이 주가 되어야 한다는 왜곡된 판단이 선명해졌다가도 이 드라마를 보면서 다시금 희미해진다. 선과 악이 분명하던 비밀의 숲과는 다른 접근방법으로 다층적인 세계를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시각으로 그려낸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세계는 채록에게 당연했다.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어른을 바라보는 젊은이의 따가운 시선이 인터넷 곳곳에 넘쳐난다. “그렇게 하고 싶었으면 진작에 하던가”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일, 사랑하는 일을 하면 뭇매를 맞을 수도 있었던 상황임을 생각해보지는 못한다. 이 또한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그런 어른에게 질문을 건네고 싶은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당연히 노인이라고 더 통찰력 있거나 판단력이 선명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을 수는 없다. 시대의 어른으로 알려진 채현국도 “내 말 믿지마!”라고 말한 것처럼.(2017.02.01)


한 사람의 어른 채현국이 별세했다. 건달로 불리기를 바라던 어른이다. 독지가(篤志家)로 쓰지 말라고 부탁했다. 칭찬도 하지 말란다. 쓴맛은 어떤 맛이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인생이 쓴맛이 아닙니다. 쓴맛도 인생의 사는 맛이라는 겁니다.”(2015.04.27) 세상에는 정답이란 없고 한 가지 문제에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이란다. 이렇게 말하는 어른을 본적이 없었다. 대단하지도 않은 사실을 바라만 보았을 뿐이라는 그 표정. 정신승리도 아니었고, 체념도 해탈도 아니었다. 그래서 자꾸만 보고 싶다. 사람을 좋아하는 어른이었다. 어린 학생에게도 존대하고 하대하지 않은 할배. 당연히 기분 좋게 하려고 이 지면 할애하지 않았다. 그저 할배의 미소가 보기 좋으니 당신이 보고 싶다는 말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