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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자유의새노래 칼럼

개신교회는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자유의새노래 2020. 7. 22. 17:08

입력 : 2020. 07. 22 | A34

 

한국 개신교 대중 동원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알만 한 교회 대형 집회에 수많은 교인들이 몰려들자 한 교인 분이 이렇게 말했다. “저 분들 다 지역 교회에서 모인 분들입니다.” 끝내 차별금지법 반대 청원은 10만 명을 넘어섰고(2020. 7. 7), 지난 8일 청원을 시작한 정부의 교회 소모임 행사 금지에 금지 청원만 오늘로써 42만 명을 넘어섰다. 수많은 목소리의 청원에도 불구하고 교회 내에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무엇이 대안인지 고민도 고심도 없는 상황이다.


성서는 동성애를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하지 못한다. 시대적 배경이 동성애조차 연구되지 않은 시절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동성애 연구는 시작된 지 100년 남짓, 바울 사도가 살았던 2,000년 전이야 당연했다. 성서엔 존재하지 않는 실증과학 이론이 부지기수다. 당연하다. 성경은 신앙을 다루는 공동체 문헌이지 개인의 성(性)적 끌림, 성 정체성을 다루는 책이거나 특정한 분야의 실증 연구 끝에 발표한 문헌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으로 특정 실증과학을 다루는 행동 그 자체가 어리석은 행동이다. 동성애를 논할 때마다 등장하는 소돔과 고모라는 이방인을 환대하지 않은 성(城) 사람들에 대한 심판을 다루는 이야기다. 롯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두 딸을 건넨 발화를 통해 성서가 성 주민이 양성애자임을 밝히려고 기록한 것인가?


지금의 시대처럼 성 담론이 보편적이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던 시대도 아니었고 여성을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은 성서의 시대에 동성애는 말할 것도 없는 공동체 분열을 가하는 범죄 행위였다. 따라서 사형에 처하는 중(重) 형벌로 다스렸다(레위 18,22, 20,13).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성 정체성은 범죄 행위가 아니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서로의 끌림이 공동체에 어떠한 불편함이나 위해를 가하지 않으며 단지 느끼기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개인의 성 정체성을 부정하고 죄악시하는 풍조는 이해하기 어렵다. 현대 과학은 성적 지향이 선택 사항이 아니라고 말한다. 선천적 요인에 의한 성적 지향 쪽으로 과학적 연구 결과들이 기울면서 우리네 사회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다. 그럼에도 과학을 다루지 않은 성서를 가지고 이것이 하나님의 진리라고 확언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일각에서 드러나는 성추문을 보면서 한국 개신교회가 성 문란을 우려하고 걱정하는 자세를 이해한다. 성 중독에서 보다 나은 종교적 위안을 강조하며 기독교가 가진 그리스도의 가치를 가르치는 일도 중요하다. 교회라면 충분히 성 엄숙주의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되도 않는 과학적 실증 연구 자료를 부정하며 성서를 최고의 권위로 두며 드러나는 한국 개신교회의 성 담론은 유튜브 성 채널만도 못하다. 불리하면 영적 전쟁을 가져온다. 그리고 이념으로 성경을 재해석한다. 그게 진리라고 말한다. 결국 죄이기 때문이란 주장 속에서 ‘하지 말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성령의 힘으로 이겨야 한다’ 따위의 무속 신앙과 다르지 않은 주장들을 늘여놓는다. 성적 욕망 기저(基底)를 읽지를 못한다. 예수님이 고작 성 충동을 이기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나?


심각한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교회 내 성폭력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교회 내 성폭력에 40만 명씩 목사의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이라도 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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