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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자유의새노래 칼럼

스무 살 강산에도 이렇게 말했는 걸

입력 : 2021. 01. 17  22:53 | A30

 

 

그 날도 방황으로 얼룩진 저녁, 삶의 희망을 잃었다. 해야 할 일을 잃었기 때문이다. 절망이 밀려왔다. 이 방황도 언제 끝나려나 싶었다. 절망을 얻은 순간에도 시간 들여 교보문고를 찾아갔다. 도착하면 손부터 씻고 종교 코너로 걸어갔다. 여전히 볼만한 책 한 권 없다는 현실이 싫었다. 그 옆엔 음악 코너가 있었다. 건반 하나치지 못했고 음악 시간을 지루하게 생각했던 내가, 좋아하는 음악만 들어왔던 내가 소설 하나 써보겠다고 발성과 화음, 현대 대중음악 역사를 더듬거렸다. 그리고 가수 강산에와 마주했다. 인터뷰 글이었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처럼’ 노래로 알려진 강산에도 청년 시절 불안함을 느꼈다는 메시지를 읽어 내려갔다. ‘아 당신도….’ 그치만 당장에 꿈이라 생각했던 미래를 접어두자 슬픔에 젖어 페이스북에 글 하나 적어 내려갔다. “교보문고에서 4시간을 놀고 왔다.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 정리가 됐지만, 여전히 근원적 질문이 남아 있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졸업에 도착할 무렵에도 매듭 짓지 못한 근원적 질문.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답 한 줄 적지 못한 채 ‘악과 고통의 담론’ 수업을 마쳤다.


몇 년이 지나 유튜브에서 본 반가운 얼굴 강산에를 보았다. 이제 수능 마친 고등학생 아이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흐르는 강물을’로 시작하는 그의 노래를 즐겁게 시청했다. 초점을 잃었다가, 다시 강산에 아저씨를 보았다가 다시 허공을 바라보는 듯 하나 강산에 아저씨에게 초점을 맞춘 여학생의 눈빛이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 이유를 생각했다. 어른들은 뒷짐이나 지면서 인생은 이런 거라고 가르친다. 노오력 같은 단어보다 짜증나는 건, 입에도 담기 싫은 인생 훈화 말씀이다. 전례 없는 사태, 코로나 파동을 겪으며 조금씩 가면을 벗어젖히는 어른들 민낯을 보면서 그게 얼마나 황당한 말이었는지 피부로 와 닿았을 것이다.


그래서 강산에를 좋아했다. 문화평론가 임진모는 인터뷰에서 기록한다. “전 사실 사회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늘 꿈속에서 산 사람이었어요. 그러다가 서울이나 일본생활하면서 상당한 문화충격을 받았고 그러면서 길들여진 것이 나중 자아를 잠식하게 된다는 걸 깨우쳤어요. 94년 ‘나는 사춘기’ 앨범 제목도 당시 성수대교붕괴를 비롯해 어수선한 세상분위기를 보면서 기성세대와 제도가 날 가로막는다는 생각이 들어 ‘내 청춘 돌려달라’는 뜻으로 붙인 겁니다.” 세간에 알려진 저항적 가수라는 평으로 잇다가 그게 “외부 환경에 대한 자연스런 적응의 방식”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기숙사로 올라가는 길목 멀리서 조직신학 교수가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잘 지내고 있느냐”는 말은 사실 정신 건강 잘 챙기고 있느냐는 물음이다. 이제 막 기독교인과의 토론에서 이기고 올라가던 길이었다. “스스로 악마가 되는 듯 합니다.” “자네가 지금 몇 살이지?” “스물 셋입니다.” “아, 이거 스물 셋부터 세팅되어서야 되겠나. 더 방황해야 해, 10년은 더 방황해야 한다고!” 세상을 원망한다던 아이에게 괜찮다던 강산에의 고백을 처음 인터뷰 접했을 때처럼 적어두지 않았다.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도 그 교훈은 마음과 기억에서 잊히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