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드는 엔딩
서화교 지음 | 낮은산 | 192쪽 | 1만2000원
여고생 재윤이가 감당하기엔 무거운 짐이었다. 얼떨결에 마주한 아버지 영정 앞에 넋을 잃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갑작스러웠고 충격적이었다.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 “왜 죽었을까.” 이유를 알고 싶었다. 누구 하나 알려주는 사람 없었다. 스스로 세상과 등진 아버지를 생각하며 녹음기를 꺼내 들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되짚는 열여섯 소녀 이야기다.
만일 소설에서 죽음을 다룬다면 두 가지 방향 중 하나일 것이다. ➀죽은 이가 남긴 기록이나 기억을 곱씹는 일 ➁죽은 이와 함께한 이들 기억을 되짚는 일. 둘 중 하나를 고르기도 하지만 모두를 다루기도 한다. 죽음은 신중해야 할 소재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을 남발하면 작품이 말하려던 메시지가 가벼워진다. 함부로 죽음을 이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따라서 신중해야 한다. 어설프게 죽음을 말한다면 사용하지 않는 게 맞는다.
이 소설은 두 가지 모두 빈약했다. 재윤이 아버지 죽음을 추적하지 않았다. 아버지 주변 인물로 죽음을 규명하지도 않았다. 아버지와 함께한 기억을 추적하며 아버지를 찾아 헤매질 않는다. 아빠의 흔적을 추적했다면 어땠을까.(155,1 참고) 혼자만의 추리로는 이야기를 전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순전히 아버지를 바라보며 든 생각과 감정을 서술한다. 따라서 재윤이의 시간은 늘 멈춰있다. 같은 생각, 감정 속에서 제자리걸음이다. 슬픔 속에서 시간이 멈춘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자연스레 엄마를 이해하게 된 것은 부자연스러웠다. 작가의 바램 같았다. 이해는 시간이 흐를 때 가능해진다. 현재에서 과거를 용서한다든지의 과정이 그렇다.
아빠의 죽음과 학교 폭력이 따로 논다. 죽음을 말하려면 죽음만을 말하든가, 학폭을 말하려면 학폭만을 말하든가. 두 소재 모두 돌이킬 수 없기에 가볍지 않았다. 마임(mim)은 달랐다. 재윤이가 난독증으로 고생하는 동안 친구가 대신 글을 읽어준다. 친구는 학교 폭력 가해자이면서도 마임을 좋아했다. 마임의 소재는 좋았다. 폭력을 일삼았으니 마임으로 자신의 행동을 고찰한다. 마임을 배우며 자신의 행동을 반성한다. 마임을 토대로 이야기를 이어갔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밀려온다.
그럼에도 떡밥 회수에 실패했다. 상우와 세경(130,4)은 존재 이유를 모르겠다. 고등학생 치고 회상이 4-50대 중년 같은 건 왜일까.(93,1) 화자를 고등학생이 아닌 어른으로 바꾸어도 위화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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