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
밥 길 지음 | 민구홍 번역 | 워크룸프레스 | 176쪽 | 2만2000원
예쁘다고 다 잘한 디자인일 순 없다.
눈길 이끄는 디자인이 상품성도 강한 것처럼 예쁜 디자인은 필요하다. 허나 정지 표시의 표지판에 꽃 그림이 화려하게 들어갈 필요는 없다. 빨간색 배경에 테두리 흰 선, 딱딱한 고딕 글자로 구성한 ‘정지’와 ‘STOP’은 밋밋해 보여도 멈추라는 정보를 그대로 전달한다.
디자이너 밥 길(Bob Gill)은 알고 있었다. 디자인은 화려하고 예쁜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기만 한 게 아니라는 점. 정보 전달에 충실할수록 디자인의 역할은 막중하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다른 그래픽 디자이너들과 마찬가지로 예쁜 것과 유행에만 매달렸다. 의사소통에는 솔직히 관심이 없었다. 디자인을 할 때는 작업 목적이 뭔지 따지지도 않고 결과물이 어때 보여야 하는지부터 대뜸 아는 체했다.”(10)
단지 디자인을 디자이너 마음에 드는 미적 감각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이해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디자인은 항상 호소하고, 말하며, 대화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 혼자만 보는 디자인이 무슨 소용일까. “디자인은 의사소통에서 생기는 문제를 푸는 과정이 됐다. 정확하고, 동시에 흥미롭게 문제만 풀어 준다면, 결과물이야 어떻든 아무래도 좋았다. (……) 이렇게 생각을 바꾸니, 의뢰인을 대하는 몸가짐과 마음가짐 또한 달라졌다. 더는 그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무턱대고 강요하지 않았다. (……) 그런 그들 취향이 나와 같아야 할 까닭이 없었다. 우리는 다른 차원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디자인을 운운하는 대신 아이디어와 해결책을 말했다.”(10)
예술은 삶의 철학과 인간을 담지만 디자인은 문제를 감싸 안고 있다. 단칼로 베어서는 곤란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글자를 어떻게 배치할 건지, 어떤 색의 조합이 필요한지 같은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따라서 유튜브와 블로그에 쌓인 디자인 프로그램 툴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다. 디자인의 존재와 의미를 파헤쳐 디자이너가 보아야 할 근원을 가리킨다. 견월망지(見月忘指)라 했던가. 달 대신 손가락을 보아서는 곤란하듯 디자인이 가리키는 지점을 보게 만든다.
가르치는 자로서 밥 길을 보고 싶다면 용인대 김장훈 교수의 글을 참고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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