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를 다루지만 필요 없는
정보로 가득한 괴상한 신문
그 신문을 누군가는 만든다
그 신문을 누군가가 지킨다
그 신문이 사회를 지켜낸다
이야기는 매화고등학교 학보사 이른아침매화 사회부 기자 최문정의 회상으로 시작한다. 신문은 문정에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창구다. 소셜 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 메신저가 아니라 신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제된 단어와 깔끔한 문체, 함축하여 전달하는 정보력을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과거라는 방식의 학보사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문정의 삶 저변에는 신문이 자리한다.
문정의 확고부동한 성향이 사실 관계를 집요하게 파헤쳐야 할 기자 체질에는 맞았다.(4단43줄) 때로는 신문의 존립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고개도 숙일 줄 알았던 편집국장 문소혜와 달랐다. 조판 과정에서 친해진 선배는 진정 기자라는 타이틀을 몸소 가르쳐주었다.(3,36) 소혜는 선배처럼 심지 굳은 최문정 캐릭터를 말랑말랑한 이미지로 풀어내려 했다. 문정은 그 사이를 ‘동반자 같은 우리 사이’로 느낀다.(6,3) 신문은 문정과 소혜를 하나로 연결해주었고 서로가 서로의 업무에 충실할수록 매듭지어져갔다. 어디까지나 신문이라는 공동체가 존재할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학교 본부는 의도적으로 문정을 배제했다. 학교 이익과 배치되는 기사들을 신문에 싣지 못하도록 가로 막은 것이다.(5,32) 학교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소혜도 알고 있었다. 학보가 학교에게 흠집 내는 기사를 가만 놔둘 리 없으리라 판단했다. 소혜는 학보 주간 교사 마음대로 데려온 새 기자를 지켜만 보아야 했다. 문정도 반발하지 못했다. 신문은 더 이상 교내에 어떠한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매체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학내 신문 열독률은 영향력이 전무한 수준이다.(3,7) 도리어 자칭 독자로 등장한 사람들은 신문을 자신의 커리어에 이용할 뿐이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이제는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문정은 난관을 돌파할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학보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숨죽이고 쓰라는 글만 쓰며 졸업을 맞이할지. 불안하고 외롭지만 어른들에게 맞서야 할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문정에게 가장 쉬운 길은 원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면 될 뿐이다. 맞서는 순간 맞서야 할 방법과 전략까지 문정 스스로가 세워야 했다. 여기서 어른들의 문법을 발견한다. 권력을 쥔 누구라도 적으로 등장한 이라면 숨통을 완전히 쥐어야 한다는 것.(5,48; 9,22) 앞에서는 문정을 몰아붙이면서도 뒤에서는 나긋하게 말하는 주간도 그 중 하나다. 기자 최문정을 완전히 죽여 버리면 새 인력을 보강해야 하니 적절히 타협하는 차원에서 내 편으로 만드는 전형적인 어른들의 문법을 발견한 것이다.
먹고 사는 일이 누군가의 피눈물보다 중요하다는 게 문정에게 무슨 소용일까. 어쩌면 소혜도 그 문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문정이 소혜의 편에 서 있으니 편집국장으로서 방패도 되어주고 뒷바라지도 해주지만 그 그늘에서 벗어난다면 돌변할지도 모를 일이다.
두려운 마음은 이 시점에서 곰팡이처럼 퍼져간다. 학보사를 벗어나면 문정은 누구 하나 지켜줄 수 없는 낙오자의 세계로 발 딛는 꼴이다. 홀로 남은 상황으로 압박하는 어른들의 계략을 문정이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신문과 연결된 사람들은 학보사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 밤, 기숙사 한편에서 남자애와 키스하던 순간. 문정은 잠 못 이루는 감정을 느꼈다. 말했어야 했던. 가슴앓이로 눈물로써 지새우던 지난날의 셀 수 없는 밤이 지나고 용기를 내어 입술을 마주쳤다. 존재하지 않는 줄로 알았던 또 하나의 독자, 그 남자애와 다시금 연결될 때 설레는 감정이 추동력이 되어 문정을 알지 못하는 세계로 데리고 간다.
신문은 학생 독자에게 완벽하게 버림받은 매체다. 더는 신문으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 에스크가 일상의 질문으로 정보를 주고받고, 인스타그램 중심의 인플루언서 여론은 밈이 되어 젊은이들을 감싸 안는다. 굳이 정보로 정리되지 않아도 될,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정보들이 사회를 움직인다. 신문이란 구시대 문법이 파고들 여력이 없다.
문정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문의 문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 문제로 부각되는 신자유주의 흐름을 누구라도 포착하지만, 누구라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7,65) 은연중에 소외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지만, 어느 누구하나 이를 지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정제된 단어와 깔끔한 문체는 영상 언어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현상들을 간결하게 내보일 수 있기에 신문의 문법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따라서 문정은 결심한다. 소혜가 쓴 사설을 뒤엎고, 자신이 써내려간 글로 몰래 바꿔다 끼워 넣는다. 신문의 문법은 오늘의 정보가 내일에서야 독자에게 가 닿는 방식으로 구성한다.(7,34) 내일이면 소혜가 마주할 문정의 글에는 무엇이 적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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