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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객관적상관물

존재불안

입력 : 2020. 08. 21 | 디지털판

 

 

도서관을 나오고 오랜만에 만난 집사님의 표정은 여전히 밝은 미소 그 자체였다. 사람을 꽃으로 비유해도 가장 어울릴 만한 미소 뒤에 숨은 진리를 알고 싶던 갈망이 여전히 언어로 드러나는 모습도 여전했다. 잘 지내냐는 물음 뒤에 숨은 진리를 알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에 먼 길을 열차타고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지내고 있다는 그래, 정말 정말 알고 싶어라는 답변은 3년 전과 동일했다.

 

존재 불안은 늘 파도처럼 알 수 없는 시간에 우리를 향해 돌진한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강력한 힘, 저항하기 어려운 도무지 받들기 곤란한 힘으로 밀고 들어온다. 존재 불안 그 자체를 잊기 위해 중독된 삶을 살아가지만. 근본적으로 허무한 인간의 본질을 깨닫고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그래서 존재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잠정적인 결론, 잠정적인 진리를 붙잡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진리란 우리의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예수를 잡을 수 없다. 만날 수도 없다. 시간이 지나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삶을 넘어서는 것뿐이다. 따라서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진리를 알 수 없고, 도달할 수도 없는 운명이다. 그러나 잠정적인 진리와 잠정적인 결론에는 도달할 수 있다. 우리는 그걸 성숙이라 부른다. 누군가는 성숙의 과정을 여정으로 표현한다.

 

여정은 머무르지 않은 것, 항상 불안을 뚫고 헤쳐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진리를 향한 여정도 그렇다. 죽을 때까지 도달할 수는 없으나, 여정처럼 잠시 잠깐 머문 잠정적 진리와 결론을 발견하고. 알고 보니 진리가 아니었고 결론이라 말하기 미미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벗어 던질 수 있는. 그런 존재 불안을 당당히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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