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 01. 29 | 수정 : 2020. 02. 09 | B2-3
2010년대와 2019년의 마지막 해를 보내자 이내 추워졌다.
정처 없이 떠돌다 카페를 찾아 헤맸다. 그 전날 지도에서 탐색했건만 프랜차이즈 카페까지는 꽤 걸어가야 했다. 아무 데나 가겠다고 게으름 피워댄 탓에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2-30분 더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근처 다방의 따뜻한 커피라도 상상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건물 이곳저곳 눈팅하다 2층에 쓰인 반가운 문구와 마주쳤다.
“안에 계신가요?”
비좁은 계단엔 책들로 쌓였고 조명도 켜두지 않아 어둑했다. 2층 희미하게 번지던 조명에 의지해 걸어 올라가자 카페 유리문이 보였다. 사장님을 부르니 한동안 잠잠하던 좌측 가정집으로 보이는 통로에서 나오자 인사를 건넸다. 주황빛 감도는 카페에 자연스런 노란 옷을 보고서 사장이라 생각했다.
사장님이 손가락을 더듬자 주황빛 조명이 강해졌다. 아직 영업 종료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저녁 어간이라 커피는 마실 수 없어 3,500원 초코라떼를 주문했다. 하나만 주문하기 껄끄러워 디저트도 시키려 했지만 오히려 재료 소진인 상황에 배꼽이 배보다 커질 상황이라 단념했다.
추억 돋는다 돋아, LP와 함께한 풍경
외투를 벗자 조금씩 영안 밝아지듯 내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계산대 옆 규칙 잃은 책들은 헌책방 느낌을 주었고 벽면 가득 채운 LP(Long Playing Record)가 카페 이름을 상기시켰다. 구석 화초들은 조명을 견제하듯 주황빛을 보정했고 가운데 흔들의자는 천과 쿠션으로 옷 입고서 앙증맞게 위치해 있었다.
푹신한 의자보다 단 위의 딱딱한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팔짱 낀 채 추위를 녹였다. LP로 도배된 맞은편 벽면엔 컬러 풍 ‘별들의 故鄕’ 흑백 풍 ‘에펠탑’ ‘빅벤’이 크고 작게 붙었다. 풍금(風琴)으로 보이는 악기 위 프레디 머큐리와 아무리 봐도 익숙하지 않을 4인조 가수 옆으로 옛 교과서와 다이얼 전화기가 놓였다.
팔짱 낀 채 중앙에서 카페를 둘러보니 사장님이 물었다. “저건 몇 년도로 보이세요?” “1960년대 같은데요?” 아니었다. 집에서 검색해보니 ‘별들의 고향’은 1974년 작이다. 구체적 년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벽면 에펠탑과 빅벤, 해금 위 머큐리만 알면 됐다. 카페 콘셉트는 7080에 맞춘 듯했다. 마침 책장에 꽂인 LP 앞 턴테이블과 오디오 스피커가 보였다.
90년생이 LP와 가까울 리 없다. MP3 대신 700MB CD를 구워 라디오 CD플레이어로 듣던 시절이 고작 10년 전이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모바일로 접속한 PC화면을 보자 와이파이에게 고마워하던 때가 엊그제였다. 알던 팝송도 별로 없어 사장님의 선의를 추운 몸 녹이느라 주목하지 못했다. 카페 이름처럼 LP 수백 장이 깔려 있으나 정작 LP를 못 알아보는 90년생 아저씨를 위해 사장님이 선곡을 이어간 것이다.
어렸을 때 본가(本家) 흔들의자는 거실에 고즈넉이 대기했다. 의자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면 졸음이 왔는데 침대에서 자는 것보다 편해 침대로 이동할 즈음 졸음이 물러가곤 했다. 베란다로 이동한 본가 흔들의자는 이제 곧 영원한 안식을 맞이할 듯 낡아 버렸다. 7-80년대 책만 쌓인 줄 알았지만 가까이서 살펴보니 ‘코믹 메이플스토리 RPG’가 무척 정겨웠다. 그 62권 75권이 15권, 17권이면 더욱 반가웠을 텐데.
흔들의자와 만화책보다 레트로토피아로 이끌어준 건 냄새 덕분이다. 가게를 따뜻하게 데워준 가스난로에서 풍겨온 냄새. 초등학교 4학년까지 연통 달린 석유난로를 봄 겨울이면 봐야만 했다. 냄새가 지독해도 껴입은 파카에 교실로 도착하면 반 친구들이 삼삼오오 손부터 녹이던 풍경도. 어느 날부터 천장에 박아놓은 히터를 보며 “우리가 사는 시대가 좋아지고 있다”며 껄껄대다 아재가 되고 말았다. 이런. 쯧쯧.
냄새에서 끝나지 않았다. 완성된 초코라떼를 가지고 책상에 올려둔 채 노트북을 켜자 학부시절 도망 온 서점 한 구석이 떠올랐다. 인생은 쓴 거라며 아메리카노에서 달달한 인생을 꿈꾼다고 초코라떼로 바꾸던 그 해, 나는 전공을 포기했다. 에세이를 탐닉하고 과제엔 어떤 괴상한 단행본을 인용할까 간만보다 초코라떼를 마시곤 했는데 그게 벌써 2년 전 얘기가 되고 말았다.
LP와 함께
난로 냄새, 오래된 흔들의자
7080 풍경 가득 안은 카페
초코라떼의 단맛
사장님 선의도 잊은 채 통화,
자유론 새도 부럽지 않았다
설렌 마음, 내년의 행복을 선언하며
사장님은 더 콜링(The Calling)의 “Wherever you will go”를 틀었다. LP는 아니었고 오디오 음악인 모양이다. 저녁 가을바람이 불던 15년 전 흔들의자에 앉을 때면 지금의 생생정보통 따위의 프로에서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의 “Sk8er Boi”가 BGM처럼 깔려 맛 집에서 엄지를 척 들고 또 올 거라던 칭찬이 보일 것만 같았다. 어쩜 들어봄직한 음악만을 틀어주셨을까 싶었지만. 죄송하게도 노래는 나중에 음미해야 했다. 선배와의 통화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조금 있다가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했건만. ‘조금 있다가’가 5분이 될 줄은 몰랐다. 그새 카페를 둘러보고 사장님과 동해시 뉴딜 사업에 대한 대화를 마치고 이제 막 자리에 앉자 선배가 떠올랐다. 사장님 마음은 들뜬 상태다. 지난 하반기, 국비 250억으로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이곳 카페가 포함된 발한지구와 삼화지구를 개발하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발한지구는 ‘개항문화발전소’ ‘마도로스거리’ ‘복합문화공방’ ‘청소년창작거리’ ‘야시장과 호스텔’을 조성하고 개발할 예정이다. 카페 사장님도 지금의 콘셉트를 아이템 삼아 지속적으로 보존하고 바꿀 게 있으면 바꾸겠다고 밝혔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선배와 통화 가능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랜 시간 통화하며 10년간의 회포(?)를 말할까 싶었지만. 더는 과거에 대해 할 말이 없었다. 굳이 케케묵은 2010년대를 논할 필요도 없었고. 과거 대신 현재의 시간에서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형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반가운 목소리에 즐거운 인사를 건네자 선배도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답했다. 통화한 선배는 유일하게 내 신앙의 여정을 지켜본 사람이다. 감성주의(感性主義) 사태가 벌어질 무렵 오순절에서 벗어날 때부터 신 죽음의 시대를 거쳐 신 죽음의 시대 이후에 도달하기까지 지켜봤다. 구구절절 지나간 일 언급하며 ‘이땐 이랬었지’하고 껄껄 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언급했다. 메시지북 그만 만들겠다고 했는데, 어느새 ‘서지수 메시지북’ 폴더를 만드는 나를 한탄한다며 징징대기도 했다. 다만, 그 동안은 절망과 무기력, 공허함으로 살아갔다면 내년은 행복을 내가 만들어가겠다고 선언하듯 말했다. ‘그거 좋은 거라고’ ‘무엇을 선택하든 후배의 몫이고 응원한다’는 말이 늘 말씀하던 패턴일지언정 구닥다리 농담으로 들려오지 않았다. 정말로 행복은 내가 만들어가는 거니까.
30분 통화를 마치고, 각자 삶의 자리로 돌아갔다. 오늘 안에 본지 18호를 완성해야 하는데. 스스로의 약속을 어기고 말았다(이 글도 카페 방문 한 달이 지나서야 올린다). 30면씩 발행하던 17호 역시 완성하지 못한 채 2019년의 미완으로 남겼지만 상관없다. 시간이야 앞으로도 있을 테고 신문 편집하며 경험하는 기쁨이 중요하지, 만들어야 할 강박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조용하게 가동하던 가스난로
묵호항 어선에는 태극기가 만발했다. 장소만 광화문 네거리였다면 싸했을 것이다. 다행히 묵호항엔 광화문 네거리가 보이지 않았다. 싸게 팔고, 싱싱하다는 메시지만 귀를 때렸다. 해지기 전이라 쌀쌀하지 않았다. 사람들 틈에서 벗어나, 한적한 어선으로 향하니 태극기를 지나가는 갈매기가 보였다. 셔터를 눌렀다. 조금은 늦었지만 아슬아슬 타이밍 내 찍어둔 사진으로 간직할 수 있었다.
‘사진으로 보는 내일’ 원고 집필을 위해 아래아 한글을 펼쳤다. 올해 지표와 마주치자 만감이 교차했다. ‘기억을 넘어, 너의 힘으로 날아가는 두루미’
2019년은 기억을 넘어선 걸까. 과거로 상징하는 기억을 넘어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기억을 잃는 걸 자신을 잃는 걸로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던 나머지, 기억강박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기억도 나열할 수 있고, 실처럼 꿰어 내러티브로 만들 수 있다는 데에서 희망을 얻었다. 기억도 잊힐 수 있고, 새로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잊을 수 있는 기억을 찾을 때 비로소 용기가 보였다. 지금, 여기에 나의 손에 무엇이 들려있는지를 물었다. 어떠한 도구도 없었고 보이는 건 오로지 무언가 할 수 있는 손 그 자체였다.
항상 새를 바라보며 자유를 생각했다. 새가 되면 자유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하고. 10년이 지나, 새를 바라보니 알 것 같다. 그 새가 나였어도 내가 사용하지 못할 타인의 능력을 보며 자유를 꿈꿀 거라고. 그게 내가 생각했던 자유였나. 혼자서 껄껄 웃으며 ‘사진으로 보는 내일’ 집필을 완료했다. 뭐라고 써야 할지 한 참을 고민하다 갈매기를 바라본 욕망이 떠오르니 써야할 게 보였다.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얼었던 손가락을 펼치자 가스난로 냄새가 진해진다. 옷도 글쓰기에 대비한 듯 온기를 머금었다. 집에 돌아가야 할 머나먼 여정을 생각하니 여명이 그립지 않았다. 사장님도 조용히 집필 중인 광경을 존중하듯, 모든 것이 조용하고 가스난로만이 쉴 새 없이 가동됐다. 열차 시간이 되고 내년에 뵙겠다는 인사와 함께 다 마신 찻잔을 돌려드렸다. 싱그러운 미소로 봐주셨는지. 나가는 입구까지 배웅해주셨다. 진짜 다음 해에 찾아뵐 생각이다.
나가면서 다시 본 ‘LP와 함께’ 유리창엔 은은한 주황빛만이 감돌았다. 밖은 추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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