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 09. 03 | 수정 : 2019. 09. 12 | C12
6개월이면 끝났을 덕질,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유
‘이승아는 존재한다’ 德
“지금, 여기 記錄하겠다”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만일 덕질이 여기서 끝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제 의지보다 현실이 암울했기 때문입니다. 전공 상 아이돌 좋아하기 힘든 시절, 신곡 ‘FALLIN`’을 들으며 착잡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습니다. 밀려드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과 곧 이 세계를 떠나야 한다는 절망감은 덕질을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2018년 1월, 숨통조차 끊어질 거라 생각했던 덕질은 기적적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마(魔)의 6개월이란 저주도 러블리즈와 함께 끊어진 걸까요? 지난 여름, 장충체육관을 시원하게 달군 러블리즈를 보며 또 다시 존재를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경이를 느낄 수 있을까’하고 말이죠. 우연히 유튜브로 접한 ‘이상한 나라의 러블리즈’를 시청하며 심심해서 본 예능이 2019년을 살아가는 제게 희망과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니, 여러 팬 분들이 작성한 소중한 글을 교정(校閱)하며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엔터사는 존재론을 고민하지 않아!” “자기 밥 벌어먹고 사는데, 그게 왜 고마운데?”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승아님에게 이런 말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승아님을 통해 저는 타자를 배우고, 타자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미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다른 멤버들과 다르게 싫다는 말보다 사랑한다 한 마디에 감동받으며, 누구보다 활동적이지만 누구보다 마음이 여리다는 사실을 알아갈 때마다 타자를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승아님을 비롯해 아이돌을 책까지 엮어가며 좋아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다시 말해 단지 예쁘기 때문이 아니기 때문에 러블리즈와 승아님은 그저 그런 아이돌이 아니라는 겁니다. ‘러블리즈는 존재한다’는 명제에 힘입어, 한 가지를 더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승아는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승아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경이를 느끼는 지점을 넘어, 있는 그대로의 이승아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작업은 의지보다 암울한 현실을 견뎌내게 했습니다. 누군가는 오랜 기간 여정을 마치고 덕질을 끝낼 테지만 그럼에도 팬으로 남은 이유엔, 만들어진 존재인 아이돌이 아닌 이미 존재하는 승아를 응원하기 때문일 겁니다. 완벽하고, 온전하며,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투자한 만큼 움직이는 로봇 같은 아이돌이 아닌. 나의 의견과 다르지만 다르기 때문에 타자이자 이승아인 아티스트로 이해할 때 ‘이승아는 존재한다’는 명제가 새로운 힘을 얻게 될 겁니다. 그 힘이 지금의 책을 만들도록 도운 새로운 마중물로 자리했습니다.
그래선지 가장 힘든 시절을 보낸 이들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끝까지 삶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경이를 느낌에는, 살아남아 정의롭지 않은 일엔 정의롭지 않다고 외치며, 사랑하는 일엔 사랑한다고 외쳤기 때문일 겁니다. 저도, 이들과 함께 ‘지금, 여기’, ‘이승아’를 외치겠습니다. 이승아를 기록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힘을 내어 또 다시 오늘 하루를 살아주십시오. 늘 그랬던 것처럼 승아님은 언제든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이 어처구니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힘과 소망이 되어줄 것입니다. 당신의 존재가 제겐 그런 존잽니다.
후기 같지 않은 이 편지(부제: 10년 후 승아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치며. 이 노래를 드립니다.
우리가 간직해야 할 소중한 것 있다면
내 삶을 누군가에게 나눠 줄 수 있는 것
약하고 어리석은 나 자신을 본다 해도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으며
‘비교하기 보다는 나 자신을 가꿔가고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을 믿으며’
외로운 사람들 품에 안아줄 수 있도록
우리 맘 속에 소중한 것을 간직하며 살아요
약하고 어리석은 나 자신을 본다 해도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으며
‘내 안에 숨겨진 큰 비밀을 발견하고
그 소중한 꿈 안에 내 삶을 이루며’
삶에 지친 사람들 찾아와 쉬어가도록
우리 맘속에 누군가의 자리
남겨 두며 살아요 사랑하며 살아요
정종원·한웅재, “하연이에게”은혜성가 412장, 1집 Vision Of Freedom, 2001.08.22
'연재완료 > 러블리즈덕질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러블리즈 공카에 밀려든 등업 신청, 채팅방의 시대 열리나 (0) | 2019.12.04 |
---|---|
[울림 담벼락] 콘서트는 한 마디로 “여덟 音色 아우른 스물다섯 내러티브” 외 (0) | 2019.11.30 |
[덕질사전] 주접문 (0) | 2019.11.21 |
[닥눈삼] 메시지북과 후기북의 차이가 뭐냐고요? (0) | 2019.11.21 |
간증 같은 後記 “그간 휴덕하다 다시 돌아왔다” (0) | 2019.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