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 07. 13 | 수정 : 2019. 07. 13 | A28
그 날도 내일이 휴가란 즐거움에 근무가 근무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위병소 근무를 마치고 곧장 달려간 곳은 상황실이었다. 오후 초소 근무 감시 공백을 채우기 위해 세워진 감시카메라 IVS 앞에 앉았다. 다음 근무자가 오기 전 잠시간 앉았던 20분 동안, 벌어진 상황을 일찍 알았더라면. 근무를 더 늦게 교대했을지 모른다.
위병소와 달리 IVS에 앉으면 노곤해진 몸을 바짝 땡겨 의자와 하나 되곤 했다. 한 시도 졸지 않기 위해 옆에 세워둔 노란 커피 맥스(Max)와 함께라면 더욱 힘이 났다. 지능형영상감지시스템 IVS는 이름과 달리 일반 컴퓨터 프로그램과 다르지 않았고 키보드로 카메라를 실시간 조정 가능하단 점 빼곤 영락없는 화질 구린 감시카메라였다.
그러다 상황병으로부터 질문 하나를 건네받았다. “영진항 부근에 뒤집혀진 선박 있냐?” 빨간 등대까지 관측 가능한 IVS로 샅샅이 뒤졌지만 전복된 배는 찾을 수 없어 이렇게 말했다. “전복된 배는 없다.” 등명 부표 쪽 선박 3척을 확인했지만 전복된 배는 보이지 않았다. 상황병은 IVS로 달려왔다. 자기가 직접 관측도 하려 했지만 상황실로 온 연락 때문에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했다.
지속적으로 관측하다 다음 근무자가 다가왔다. 상황 종료도 되지 않은 시점에 내 옆 후임은 이미 방탄모를 끼고 자리를 뜰 채비를 마쳤다. 나는 사각지대에 숨었는지 확인키 위해 두 IVS를 동시에 확인하며 뒤집힌 선박을 찾아내려 애를 썼다. 이제 막 상황실로 돌아온 상황병 부사수가 또 다시 물었다. “OOO 병장님, 배가 뒤집힌 선박이 있다는데 이게 무엇인 것입니까?” “OOO 병장으로부터 영진항 부근에 전복된 선박이 있단 얘길 들었지만 찾지 못했어.” 감시 구역 아닌 섹터까지 카메라를 돌렸다. 저 멀리 크레인 바지선과 예인선 두 척을 식별했다. 하지만 뒤집힌 선박은 아니었다.
내 다음 근무자가 도착했다. “지금 전복된 선박이 있어. 자세한 위치는 모르고 영진항 부근이야” 방금 확인한 크레인 바지선을 인수인계하고 점심식사 하러 갔다.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작전과장이 호출했다. 불려온 나는 연락을 받자 “OO IVS 감시 범위는 1km인데 왜 식별하지 못했냐”는 질책을 받았다. “OO IVS 감시 범위는 야간엔 5:5(해상:육지) 비율이며…….” 당황한 나머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1km까지가 맞고 상세히 자세하게 보고 있었다”는 동어 반복만 이어졌다. 그리고 인수인계한 크레인 바지선이 OO초소 기준 11km라고 상세히 보고했다.
레이더 기지에 연락한 작전과장은 소초 기준으로 길이가 얼마나 되냐고 물었다. “800m” “왜 거짓말 하느냐. 솔직히 근무 제대로 안 섰지? 한 번 소초 찾아가야겠네” 옆에 선 상황병은 “(뒤집혀진 배가) 2~3km라고 말해라” 거짓 진술을 유도했다. 하지만 보지 않은 걸 봤다고 말할 순 없었다. 논란을 종식한 건 의외로 부소초장 증언 덕분이었다. “그 곳은 OO IVS로 보기엔 사각지대였다”는 증언이 아니었다면 뒤집힌 선박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내게 돌아왔을지 모른다.
소초 전방, 혹은 초소 전방 몇 미터 몇 밀(mil)에서 부유물 식별. 하다못해 초소 전방 몇 미터, 방파제 내항인지 외항인지 던져주건만 영진항 부근에서 뒤집힌 선박을 찾으라 닦달한 그 때, 사각지대를 감안해 찾아대도 보여야 할 찾아야 할 뒤집힌 선박이 왜 보이지 않았냐는 물음 앞에 사각지대는 무의미했다. 나는 “사각지대였습니다” 말 한 마디 하지 못했다. 만일 운 나쁘게 아무 것도 모르는 후임이 내 자리를 대신했다면. 만일 부소초장이 나를 변호하지 않았더라면. 3년이 지나도 2016년 10월 18일은 아뜩하다.
원효대교에서 장 일병은 목선을 언급하지 않았다. 선택을 구구절절 설명하기엔 너무도 젊고 어린 나이였으니까. 말로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사각지대임을 나의 가슴이 느끼고 있었던 것처럼, 입술은 움직이지만 무슨 말로 나를 변호하고 지켜야 할지 모르던 그 날 저녁은 누구도 다가오기 어려운 시커먼 심연이었을지 모른다. 수많은 무책임한 말과 의자를 던진 그를 향해 자신을 변호하지 못한 지난날의 후회가 스쳐갔을지 모른다.
3년이 지나고 대대장이 병사들 읽어보라 던져준 편지를 복기(復棋)하며 파란색과 검정색 명조체 사이에서 두 단어를 떠올렸다. 품성론과 키니코스(κυνισμό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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