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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현실논단

[현실논단] 루터의 씁쓸한 웃음

입력 : 2017. 11. 17 | 수정 : 2018. 05. 27 | A34


기어이 통과됐다. 서울동남노회는 명성교회의 새노래명성교회 김하나 목사 청빙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3월엔 기업에서나 볼 수 있는 ‘교회합병’ 결의를 하더니 지난 12일, 명성교회에서 위임식을 통해 자기 아들, 이하나 목사가 담임 목사로 청빙되었다. “이 위임식은 무효입니다!”라는 외침에 선배의 입이 틀어 막혔고, 이 소식을 기사로 접하자 눈물을 흘렸다.


세계적인 교회, 1만 2천 석의 대형교회로 알려진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 목사는 배임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청소년 사역자로 유명한 한 목사의 성추문은 어떠한가. “믿었던 목사님이!”하는 충격과 함께 “읍읍”대며 언급조차 하지 못할 분위기 속에서 무더운 여름을 서늘하게 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모두 올해 한국 교회에서 벌어진 거대한 사건들이다.


지금도 신학교와 교회 안팎에서 일상적 평범한 악이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 모두(교인)는 무감각한 듯하다. 어제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믿고 있는 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눈 가리고 아웅 할 뿐이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이제는 죽은 마르틴 루터를 전면에 내세워 허울 좋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캐치프레이즈 삼고 있다. 그러나 우리 눈앞에 놓인 현실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조사한 2017년 자료, “기독교인 신뢰하지 않은 비율 51.2%” 수치(羞恥)다. 단지 대형교회나 유명 목회자들만 타락했다고 생각해선 곤란하다.


한국교회에 내재한 체제 언어를 통해 우리는 이미 사회와 유리(遊離)되고 있다. 사회는 기독교인들을 개그 소재로 삼으며 신부와 승려 간 농담을 두고 “그 종교가 없으니 훈훈하다”는 진담을 건네고 있다. 교회 안에서만 지내고, 교회에서 사용하는 체제 언어를 남용하며 예수가 말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사유할 틈 없이 교회 봉사로 눈코 뜰 새 없다.



올해 벌어진 한국교회

세습, 배임, 성문제


일상적 평범한 악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애매모호한 기독교 담론

루터와 목사를 우상숭배



그 뿐 만인가. ‘세상’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보지만 정작 세상과 다르지 않는 기독교인의 인식을 살펴보면 한국 교회 도덕은 한 없이 추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이 주장하고 있는 세상과 기독교 사회는 무엇이 다른가. 기독교만의 담론은 감춰버리고, 애매모호한 언어만이 남아 있다. 보이지 않는 신이라고 보이지 않는 이론과 담론을 통해 가르치려하는 존재들은 목사만의 행동만이 아니다.


우리들의 꾸준한 애매모호한 체제 언어는 ‘우울의 영’, ‘음란의 영’이라는 단어를 파생해 내 샤머니즘 종교로 전락시켰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 외에 싸워야 할 토속 신을 만들어 내 영적도해인 땅 밟기 운동이나 하고 있다. 이쯤 되면 성령은 샤머니즘 귀신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방언, 예언은 장차 어느 대학을 가야 할지, 어느 교회로 옮겨야 할지 정해 줄 기준이 되어버렸다.


직접 성서를 읽고 공부조차 하지 않으며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냉혹한 현실에다 대고 교회생활하자고, 신앙생활만이 답이라며 1970년, 80년대 아비투스를 그리워하고 있다. 강력한 새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바라며, 목사들을 인기스타급으로 세운 존재는 다름 아닌 우리들이다! 성서로 돌아가자면서도 담임 목사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성서 해석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순을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이제 그 목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했으니 루터로 대체됐을 뿐, 정작 우리는 소수 학자들과 단체 외에 루터를 공부하려는 그 어떠한 움직임도 가지려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루터는 누구인가, 우리에게 예수는 어떤 존재인가.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포스터만 차갑게 휘날린다.


그렇게 만들어진 루터, 만들어진 예수를 우상숭배하며 우리는 ‘왜 예수를 믿고 있는지’에 대해 일말의 고민조차 하지 않고 있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신학자라고 루터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느냐고 지적하는 건 이제 진부해졌다. 이미 예수의 이름도 멋대로 사용하고 있는 마당에….


커피가 떨어졌다. 새로 타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