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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현실논단

[현실논단] 기억이 아물어버렸다고?

자유의새노래 2018. 11. 11. 03:47

입력 : 2018. 11. 11 | 수정 : 2019. 04. 29 | A30

 

울음소리가 들리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사무실로 달려가 상황 판단을 해보니 확실히 남자 아이가 잘못했다. 이번에는 호되게 혼냈다. 점심도 먹지 않겠다니까 괜찮다고, 울지 말라며 5,000원을 쥐어주고 여자 아이를 편의점으로 보냈다.

 

예배 후 성경공부 시간. 남자 아이는 놀게 놔둔다. 싫어하기 때문은 아니다. 교회 오기 싫다는데, 강제로 시키진 않았다. 예배 준비를 마치면 찾아가 마인크래프트 하자며 스마트폰을 들이대곤 했다. 그 아이는, 살갑게 맞이했다. 서로의 서버를 확인했다.

 

뭐하러 교회 다니냐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이들도 나름 이유가 있다.

 

첫째, 친구 따라 온 경우다. 교회가 궁금하고 인생에서 한 번쯤은 신앙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해서 온다. 따라 들어온 것만큼 친구 따라 교회를 나오기도 한다. 워낙 유동적이라 교직자들도 한 사람 한 사람 기억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둘째, 열심히 사는 아이다. 대개 중고등학생 때 감정적 신앙생활에 젖다보니 현실과 신앙에서 괴리감을 깨닫고 두 분류로 나눠진다. 하나는 신앙을 재해석해 제도권 교회를 떠나거나, 재해석에 실패한 나머지 마음을 닫고 종교행위에 중독되거나.

 

셋째, 부모에게 끌려온 아이일 경우다. 부모에 따라 교회 생활에 소극적이거나 적극적이다. 부모가 신앙을 건들지 않는다면 소극적으로 활동할 테고, 강요에 못 이겨 와준 것 이상으로 바란다면 억지로라도 교회 일에 충실할 것이다. 교직자는 미안해서라도 강제로 일을 시키지 않는다.

 

넷째, 갈 곳 없는 아이들이다. 학교 마치고 예배 전, 일찍 교회에 와보면 안다. 공동체 특유의 화기애애함. 초등학생 미술 시간 때 조원들과 한 농담 따먹기 못지않게 즐겁다. 가정불화나 학교, 학업 스트레스를 받아 갈 곳 없어 교회에 머문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교회에 남은 아이들은 신앙의 재해석에 실패한 열심히 사는 아이, 부모에게 끌려 온 아이, 갈 곳 없는 아이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뭘 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인생 설계를 시작한 아이들이 예배 외 종교행위에 자신을 내 맡기는 경우는 드물다.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들은 PC방이나 노래방을 전전하다 교회로 발걸음을 향한다.

 

 

교회 방문하는 아이들,

모두가 이유는 존재해

강제로 다니던 청년에

“기억, 아물지 않을 것”

 

 

다니던 교회 수필을 작성하자 어떤 분은 분노를 표했다. 딱지가 진 듯, 박해로 얼룩진 학창시절이 어느새 추억으로 남았다는 사실을 발견하자 나는 이렇게 표현했다. ‘기억이 아물어버렸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가 아물 듯 기억이 아물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10년을 함께한 교회에서의 아픔도 반드시 아물리라 믿었다, 세 달 전까지만 해도. 무려 2년 만에 공식적으로 만난 카페에서 한 청년은, 자신의 아픔을 토로했다. 내가 교회를 나오고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그 자리마저 공백이 됐다고. 누군가는 채워야 할 자리이기에 강제로 교회 다니던 다른 청년이 자리에 앉고 말았다고 한다.

 

안 그래도 교회 다니기 싫은데, 부모 때문에 그 자리를 지켜야 할 운명이 지겨웠나 보다. 그 지겨움을 해소할 방법은, 이 자리에 앉게 한 인간을 괴롭히는 일 뿐이다. 며칠 전, 그를 괴롭혔던 인간을 새벽 예배 때 마주했다. 속으로 ‘불쌍한 년’ 욕지거리를 하며 자리에 앉아 신문을 읽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모두 부모가 교회를 다니는 청년들이다. 내게 고통을 토로한 청년도, 그 청년을 괴롭힌 청년도. 그 청년의 간사는 아버지가 목사다.

 

부모에 의해 강제로 교회 다니는 것도, 강제로 하느님이 인간을 선택한 것도. 심지어 자신이 담임 목사가 추천해 대학에 온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하나의 구조였다. 따라서 교회를 그만 다닌다고 한들, 달라질 게 없었다. 서울로 도망간 둘째는, 기어서라도 돌아와야 했다. 그게 그 아이의 운명인가, 씁쓸했다.

 

어머니는 내게 늘 미안해한다. 내가 아들을 위해 기도라도 해야 주의 종님이 될 거라고.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엄마가 우리 엄마가 아니었다면, 지금 나는. 살아 있을까.

 

어려서 교회에 투신한 이들은 청년에서야 정신을 차리고 교회를 나온다. 이들에게 세계였던 신앙이 무너지자, 충격을 받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기억이 아물 것이라고, 곧 아물고야 말 거라 예단했던 내 판단이 틀렸다. 그 곳을, 지옥 같은 구조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기억은 아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