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논단] 아아, 순진한. 이 순진함이여

2021년 02월 05일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마주해 보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거대한 벽처럼 서 있었다.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고, 가닿기 바래도 닿을 수 없는 현실 벽이 불가능과 무기력 사이에 냉소로 버티고 서 있었다. 비판과 대안이 방법으로 등장한 시대에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할 수 있다’는 말이 농락의 단어로 전락했다. 당장에야 내세워 개인 문제로 환원하는 모든 것들이 그렇다. 그저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도리가 없다. 그 지점에서 슬픔이 밀려왔다.

모든 것을 놔 버리고 싶었던 냉소와 슬픔은 잠시간 탈 이집트 하려던 순간으로 데려갔다. 서운함과 분노의 중간에 서 있던 야훼의 호통이 생생하던 그 장면. 누구라도 같은 환경에 처해 있다면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거라던 옛날의 교훈이 떠오르지 않았다. 슬픈 감정으로 도착해 저 신 야훼를 오해하며 발생한 서운함을 시작으로 산책했다. 과거라는 장소에서 벗어나 돌아갈 수 없는 현재의 강을 건너, 미래로 향하고 있을 그들 앞에 놓인 불안의 벽을 보았다. 누구도 가르치지 않았고 습득하지 않았을 탈출자들에게 분노하던 야훼의 서운함에서 엇갈린 분위기가 보였다. ‘내가 그들을 쳐서 완전히 없애 버리겠다(탈출 21,10)’던 이상한 불일치가 냉소를 거둘 근거로 보인 것이다. 다혈질로 알려진 모세의 깨어진 두 돌판 앞에서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슬픔을 보았고 두 번째로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마주했다.

침묵의 공간서 들리는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
냉담한 현실 세계의 앞
모든 대안을 폐기한다

이 슬픔은 오랜 옛날부터 마음 어딘가에 숨은 존재였다. 외면하고 싶어도 만나야 하는, 만날 수밖에 없는, 친구도 아니고 악당도 아닌…. 그 존재는 항상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지켜볼 때 나타난다. 악마가 나타나 저주를 속삭일 때, 천사처럼 다가와 악마의 생각을 밀어주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갑작스럽고 당황스럽게 만들어 곤란한 지경으로 몰아붙인다. 그 존재와 마주할 때마다 감정의 변동을 느끼고 인식의 전환을 맞이한다. 그 존재가 탈 이집트 하려던 순간으로 데려간 것이다. 코로나 이전까지도 일상에서 마주하던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건들 앞에서 유일한 대답은 정신승리 뿐이었다. 존재하지 않으니 그 존재를 받아들이지 말라는 주장 말이다. 가난이란 건 없으니 가난하다고 느끼지 말 것. 음란이란 없으니 성욕을 느끼지 말 것. 죽음은 없으니 즐거운 상상만 할 것. 초연함 속에서 만들어진 신을 갈구할 것. 그러니 만나와 메추라기 꾸역꾸역 먹으며 겨우 살아가던 백성들 사이에서 움츠리던 소녀에게 다다르자 똑같은 말을 내뱉으려 했다. 당혹감에 직면한 순간 소녀의 눈망울엔 슬픔이 고여 있었다.

공허를 참기 힘든 시대에 노동의 부품으로 전락한 사람에게 공부하라 계몽하라 발길질을 해댈 수는 없었다. 나약하기 때문에 당할 만하다는 말도 견디기 어렵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강한 자의 주먹을 잡아야 할 당연함도 언더도그마와 함께 타버려 사라진다. 가녀린 소녀마저 뜨거운 사막을 견뎌내 보라고 내던져진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이 잡아지지 않아서 한탄에 빠진 노인의 멱살을 잡으며 제발 변해가는 사회를 읽으라고 윽박지르니.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건들을 만드는 이상한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이지를 않는다. 거대한 짐을 개인에게 분산해서 가볍게 나눠지려는 순진함이 잘못 돌아가는 구조를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법을 고치고, 없는 법을 만들고, 규정들이 존재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해답을 미루고 끊임없이 자기 계발에 몰두하니. 타인의 눈망울을 볼 시간도, 소리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들려오지도 않는다.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려던 걸까. 나는 내 앞의 소녀조차 도와주지 못하는 아둔한 인간일 뿐인데. 무슨 힘이 되어준다고 까불었던가. 냉소가 사라지고 슬픔이 밀려왔다. 부끄러움이 불어온다. 관념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물었다. 모든 대안이 대안 아니라는 사실을 선언하는 일? 누구의 편으로 인용해온 이념을 폐기하는 일? 아니었다. 꿈처럼 사라진 소녀의 눈물에서 흐르는 소리를 듣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절망의 늪에서 울던 백성들을 기억하여 성벽 바깥에 서 있던 야훼처럼 냉소의 노이즈로 묻혀버려 평범한 슬픔이 되어버린, 눈물이 흐르는 소리를.

자유의 새노래

자유의새노래

정론직필의 자유·시대성의 창달·주체자의 기록

답글 남기기

Previous Story

[교회 安 이야기] 장로가 잡은 멱살, 생명줄이라네

Next Story

[지애문학] 지하철 역사(驛舍)

Latest from 현실논단

[현실논단] 사라진 내 친구를 찾습니다

브라우저가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오랜 인연의 친구에게서 연락이 끊겼다. 그렇게 된지도 5년이 됐다. 허리를 다쳤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조짐을 느꼈다. 친구는 전기 기사 시험을

[현실논단] “변화를 기다리던 때는 이제 지나갔기에”

브라우저가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심심하면 문학광장 글틴에서 청소년 작가들이 쓴 수필을 읽곤 한다. 청소년 작가의 글에서도 완성도 좋은 글을 발견할 때면 즐거움이 배가된다. 글틴에는 재미난 글들이 많다. 오탈자 많거나 줄바꿈 하나 없이 아웃사이더 같은 글에서부터 ‘와 이건 진짜다’ 싶은 정도로 폼 들인 글에 이르기까지. 자의식을 강하게 느낀 나머지 소설 같은 수필을 써도 사랑스럽다. 웹사이트가 괜찮은 디자인으로 구성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야들야들 밥 한 톨 같은 음절의 모음이 귀엽기도 하고 꽤 젊은 작가의 포스가 느껴지기도 했다. 한때 매주 목요일 저녁이면 문정동 스타벅스에서 청소년 작가들의 글을 정독했다. 한 단어, 한 문장도 놓치지 않았다. 때로는 밑줄 긋기도 했고 내 생각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잘 쓰고, 못 쓰고를 평가하지는 않았다. 날 것 그대로의 수필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독자의 시선에서 가장 꼽을만한 특징이라면 청소년 작가의 작품들은 찰나의 순간이 많다는 점이다. 소녀, 소년의 시간이 찰나의 순간이기 때문일까. 그 짧은 순간을 포착해 글로 풀어내는 능력이 뛰어난 작품을 발견할 때면 감탄해 마지않았다. 찰나의 순간마저 절망의 그늘로 해석하는 작가에게는 연민의 마음이 들었다. 심지어 나도 그 십자가 조금이라도 들어주고 싶은 심정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십자가는 각자가 져야 하므로 철저히 작가의 짐이어야 했다. 후회와 한탄, 바뀌지 않는 입시제도와 사회 구조 속에서 질식하는 청소년 작가들…. 애석하게도 이들은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글은 마지막으로 표현하는 그들만의 다잉 메시지 같았다. ‘다신 글 올리지 않겠지’ 싶으면서도 또 올라온 동명 작가의 글을 보면서 안도할 때도 있었다. 나는 청소년 시기에 이런 절망적인 글조차 써본 일이 없다. 일상에서 경험한 글도 쓸법한데도 말이다. 신앙에 경도된 나머지 보수적 이념과 교리에 고취된 프로파간다 논설이나 쓴 게 전부였다. 그 시절의 글을 읽으면 무뚝뚝하고 딱딱하기만 한 소년을 만나는 이유다.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없는 글. 차갑다 못해 얼음장 같은 오탈자 하나 없는 문맥에선 ‘진리’를 다루고 있으나 씨뻘건 신념으로 읽히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과거사를 들여다볼 때마다 무뚝뚝한 소년을 만나거든 ‘꼭 글을 어렵게 써야만 했느냐’고 묻곤 한다. 남들과 똑같은 환경, 똑같은 교복, 똑같은 과목을 공부하며 살았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병적으로 “남들과는 다르다”를 보여주고 싶은 까닭 말이다. 신앙은 독창적이고 나만의 고유한 언어였으니까. 그 시절 교회에서는 묵상의 시간을 가지곤 했다. 나는 나의 고유한 언어로 성경을 해설했다. 토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의 독창적 해설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시비를 걸지 않기를 바랬다. 고유한 언어는 나만의 세계에서 갇혀 지내는 탄탄한 성벽이 되었다. 나를 나 되게 만드는 언어가 역설적으로 나를 가두는 틀이 되고 만 것이다. 그 틀이 나를 구원하리라고 믿었다. 청소년 시기의 나는 이런 용기를 내지 못했다. 변화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세상이 요동치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 했다. 단락으로 꾹꾹 눌러 담아 쓴 문장들은 곧 부서졌고 나는 저 멀리 폭풍우에 밀려 거센 파도에 휩쓸리고 말았다. 문학광장의 청소년 작가들은 언제나 자신의 글을 모두에게 공개한다. 언제나 피드백을 받는다. 성실하게 답장까지 달아주는 작가도 있다. 청소년 작가들이 쓴 글도 머잖아 부서질 문장일지 모른다. 나의 고유한 언어는 나를 가두었지만 오늘의 청소년 작가는 그 틀을 부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튼튼하지 않은 문장을 꼼꼼히 읽는다. 나는 문학광장 글틴에서 고유한 언어를 구사하는 소녀, 소년들을 만난다. 용기를 가지고 변하려 몸부림친 흔적을 느낀다. 그래도 청소년 작가의 글이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성인이 되었을 작가 해나리의 글로 답을 대신한다. “나는

[현실논단] 9월에 떠난 두 목회자를 뒤로하고

브라우저가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옥한흠 목사의 설교를 다시 접한 건 성인이 되고 나서다. 그날 옥한흠은 설교 단상에서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어렵게 유흥가 종사자들을 전도해 왔건만 교회에 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들추었다. 비참한 편지를 남기고 떠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누가15,11-32 본문을 인용해 아버지 재산을 미리 받아 탕진한 둘째 아들을 싸늘히 바라보는 첫째 아들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호통이 이어졌다. “우리의 모습은 탕자가 돌아왔다고 춤을 추는 아버지의 이미지가 아니에요. 사랑의교회, 천만에요. 우리는 바리새인의 이미지를 갖고 있어요. 우리는요. 큰 형의 이미지를 갖고 있어요.”(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기쁨, 1999.10.03) 옥 목사가 숨 거두었을 때만 해도 고등학생이었다. ‘제자훈련에 미쳤다’는 대외적 평가는 상징적으로만 비쳤다. 설교를 들어봐도 가슴에 와 닿는 게 없었고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같은 본문으로 설교한 조용기 목사의 설교가 흥미로웠다. 조 목사는 오히려 교인들을 첫째 아들보다 둘째 아들로 비유한다. 인류는 둘째 아들이므로 하나님을 떠나 있으니 다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사람이요 그도 길 잃어버린 사람이요 그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요 버림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길을 잃고 죽은 사람으로서 사는 것이 세상 사람인 것입니다.”(잃어버렸다가 찾았으며 죽었다가 살아남, 2008.06.22) 소돔과 고모라 도시는 성욕에 망하지 않았다 가난한 자 손 놔 버린 교만과 역겨움이 원인 롯의 아내처럼 교회를 보다가 발걸음 멈춘다 언제나 조용기 목사의 해석이 익숙했다. 신앙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일대일 관계로만 보았기 때문이다. 일대일 신앙은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결코 사람은 진공 상태에서 홀로 설 수 없는 현실이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산다면 철학과 신학, 교리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하든 그 일은 윤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윤리와 비(非) 윤리, 옳음과 옳지 않음을 구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기 위함이 아닌가. 나와 너, 세계라는 현실의 3요소를 깨달은 존재가 바로 어른이며 인간이면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다. 아이로 남기를 바랬던 내가, 언제나 조 목사 설교를 즐겁게 들으며 나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을 따름이다. 그 세계에는 이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내 말에 동의할 또 다른 나만이 존재했다. 11년 동안 이어진 이기적 체제는 현실에 이르러서야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11년 체제의 종말이 갑작스레 다가온 것이다. 현실을 마주하는 작업은 고통 그 자체였다. 회피라는 방법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피하는 이들도 보았다. 나조차 회피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문제의 문제로 가로막힌 한국의 상황을 누구보다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이 처한 상황을 피할 수 없고, 외면할 수도 없다. 누군가의 아픔은 곧 나의 고통으로 연결되기에 사회라는 광의의 존재가 각자의 분담된 공동의 짐으로 신음한다. 구약성경 선지서를 보면 현실의 3요소가 등장한다. 고통을 당하는 나. 신음하는 이스라엘, 그리고 하느님이 심판을 내리려는 세계가 드러난다. 원망스럽게도 신은 평범하게 살던 선지자에게 자신의 말씀을 전달한다. 이방을 섬기는 야훼의 질투를 심판과 진노라는 결과로 내보일 것을 경고하는 것이다. 나라면 무어라 답했을까. 요나처럼 스페인으로 도망갔을까, 예레미야처럼 울었을까. 다섯 편 설교를 들으며 고등학생 시절

[현실논단] 최문정, 널 마감하고서

학부 4학년 때 일이다. 뒤늦게 확인한 페이스북 메시지엔 “학보사 문제로 뵐 수 있을까요?” 묻는 선배의 한 마디만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선배라 지인 선배에게 이미 전달 받고 확인한 부탁이었다. 정중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학보사는 생활관장과 정치적 싸움을 이어가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신문은 정치적인 매체이자 일상과 동떨어진 종이일 뿐이었다. 정치적인 싸움은 165호에서 출발한다. 침신대학보는 지면신문 뿐 아니라 홈페이지 ‘학보사’ 카테고리 속 PDF를 통해서도 학교 안 소식을 전달한다. 유독 165호가 올라오지 않았다. 보통 한 학기에 한 두 호 정도는 발행해 왔거늘. 편집국장에게 물었다. 홈페이지에 올릴 수 없다는 이유로 한글 파일을 건네 받았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영부영 완성된 느낌적 느낌이 싸했다. 학교에서 재정 지원은 없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지만 묻지 않았다. 복학하자 학보사를 둘러싼 소문을 접했다. 사람들은 ‘오탈자 하나 잡아 내지 못하는’ ‘예의없고 싸가지 없는’ ‘반성경적이면서 진보적인’ 집단으로 함축했다. 학보사에 들어가려던 내 결정도 접어야 했다. 사람들이 흘려 낸 정보들 때문이 아니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진학이 앞섰기 때문이다. 지인들은 “네가 학보사 들어가지 않아서 다행이야” “정치적으로 이용 당했을지도 몰라” 그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꼬박꼬박 읽었다. 어떻게 만들었을지 궁금했지만서도 어떤 내용으로 만들었을지가 궁금했다. 종합 일간지는 정치적 의도와 목적으로 만든다. 학보도 그런 정치성이 보일지 궁금했다. 진보적인 신문은 아니었다. 당연히 박근혜는 탄핵되어야 했다. 기독교 인이라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예수의 가르침 대로 가난한 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들도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과 무관하게 당연했다. 창조설에도 여러 이론이 있기 마련이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성서 구절로 창조설이 진리라던 문장을 보면 확실히 진보적인 신문은 아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를 위시해 음모론을 말하던 박성업에 관해서는 비판했다. 대법원 앞 거대하게 탑 쌓아가던 사랑의교회를 지적했다. 공동체 정신을 잃어가던 와중에 아나벱티스트에 주목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상화가 요원한 이 학교 총장 직무대행을 꼭두각시로 보이도록 곰돌이 인형을 만평으로 풍자했다. 총학생회장은 정기총회에서 공개적으로 교수의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교수들 중 한 사람이 친인척을 학교 이사로 꽂은 상황이라 말을 꺼냈고 방학 기간 틈 타 징계 당할 뻔 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학교 문제에 말을 아꼈다. 대자보라도 내야 할 상황에도 침묵했다. 법원이 직무집행정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자 비품을 아껴 쓰라는 말만 돌았다. 공론장 잃은 사람들은 우왕좌왕했다. 교수들 알력 다툼만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무엇이 문제인지 누가 잘못했는지 물어볼 질문은 많았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정치적 일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런 학보의 인쇄 자금을 끊은 건 학교 당국이었다. 아래아 한글판 165호도 배곯던 상황에서 만들어졌다. 학보사에서 일할 학우 구하는 일이 상당히 어렵다고 들었다. 나를 영입하려던 부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기사를 쓴다는 건 취재하는 일이고 취재 지시를 받은 다음 일이다. 누군가는 지면 신문을 기획해야 한다. 누군가는 백지 위에 기사를 배치해야 한다. 누군가는 오탈자를 확인해야 한다. 그래픽은 또 누가 만드나. 한 두 사람만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공동체 의식은 나라는 존재가 사회라는, 학교라는 토대 위에서 살아간다는 인식 속에서 피어난다. 하지만 누구도 학교 문제에 나서지 못했다. 용기가 없었을지 모른다. 문제가 어떻게 얽혔는지 풀어낼 자신도 없었을 것이다. 또래 정치 싸움 너머 어른들 다툼에 끼어드는, 분명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어른들이 공론장을 박살 내는 동안 젊은 것들은 무시 당했다. 그런데도 대학원에 들어가려 하다니. 내 아둔한 지각에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본지 문화섹션 나우에서 선보인 단편소설 ‘너에게 맞설 수 있는 치트키’에서 주인공 최문정은 아무도 없는 밤 기숙사에서 남자애와 키스한다. 문정은 잠 못 이루는 감정을 느꼈다. 키스를 그리는 장면에서 상상했다. 만일 선배의 부탁을 받아 들고 학보사에 들어갔다면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루라도 더 빨리 장신대 신학대학원 진학이란 허황된 꿈을 버리지 않았을까. 사람들과 부대끼며 현실의 벽을 조금 더 일찍 마주치지 않았을까. 지면신문 배치마저 인쇄소에 맡기던 “에휴, 자유의새노래 만도 못한 학보구나” 탄식 대신. 기획실장, 아니 편집국장과 싸우며 침신대학보라 쓰고 공론장으로 읽는 희망의 탑을 하나씩 쌓아가지 않았을까. 최문정을 이용해서라도 과거로 돌아가 세상을 바꾸고픈 열망이 샘솟는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 20대 대선을 맞았다. 정치인을 아이돌로 추앙하던 20세기와
Today소랑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Go to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