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논단] 최문정, 널 마감하고서

늘 신문은 나와 먼 정치적 이야기일 뿐 막상 사라진 신문, 모두 입을 다물었다
2022년 03월 09일

학부 4학년 때 일이다. 뒤늦게 확인한 페이스북 메시지엔 “학보사 문제로 뵐 수 있을까요?” 묻는 선배의 한 마디만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선배라 지인 선배에게 이미 전달 받고 확인한 부탁이었다. 정중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학보사는 생활관장과 정치적 싸움을 이어가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신문은 정치적인 매체이자 일상과 동떨어진 종이일 뿐이었다.

정치적인 싸움은 165호에서 출발한다. 침신대학보는 지면신문 뿐 아니라 홈페이지 ‘학보사’ 카테고리 속 PDF를 통해서도 학교 안 소식을 전달한다. 유독 165호가 올라오지 않았다. 보통 한 학기에 한 두 호 정도는 발행해 왔거늘. 편집국장에게 물었다. 홈페이지에 올릴 수 없다는 이유로 한글 파일을 건네 받았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영부영 완성된 느낌적 느낌이 싸했다. 학교에서 재정 지원은 없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지만 묻지 않았다. 복학하자 학보사를 둘러싼 소문을 접했다. 사람들은 ‘오탈자 하나 잡아 내지 못하는’ ‘예의없고 싸가지 없는’ ‘반성경적이면서 진보적인’ 집단으로 함축했다. 학보사에 들어가려던 내 결정도 접어야 했다. 사람들이 흘려 낸 정보들 때문이 아니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진학이 앞섰기 때문이다. 지인들은 “네가 학보사 들어가지 않아서 다행이야” “정치적으로 이용 당했을지도 몰라” 그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꼬박꼬박 읽었다. 어떻게 만들었을지 궁금했지만서도 어떤 내용으로 만들었을지가 궁금했다. 종합 일간지는 정치적 의도와 목적으로 만든다. 학보도 그런 정치성이 보일지 궁금했다. 진보적인 신문은 아니었다. 당연히 박근혜는 탄핵되어야 했다. 기독교 인이라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예수의 가르침 대로 가난한 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들도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과 무관하게 당연했다. 창조설에도 여러 이론이 있기 마련이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성서 구절로 창조설이 진리라던 문장을 보면 확실히 진보적인 신문은 아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를 위시해 음모론을 말하던 박성업에 관해서는 비판했다. 대법원 앞 거대하게 탑 쌓아가던 사랑의교회를 지적했다. 공동체 정신을 잃어가던 와중에 아나벱티스트에 주목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상화가 요원한 이 학교 총장 직무대행을 꼭두각시로 보이도록 곰돌이 인형을 만평으로 풍자했다.

총학생회장은 정기총회에서 공개적으로 교수의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교수들 중 한 사람이 친인척을 학교 이사로 꽂은 상황이라 말을 꺼냈고 방학 기간 틈 타 징계 당할 뻔 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학교 문제에 말을 아꼈다. 대자보라도 내야 할 상황에도 침묵했다. 법원이 직무집행정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자 비품을 아껴 쓰라는 말만 돌았다. 공론장 잃은 사람들은 우왕좌왕했다. 교수들 알력 다툼만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무엇이 문제인지 누가 잘못했는지 물어볼 질문은 많았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정치적 일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런 학보의 인쇄 자금을 끊은 건 학교 당국이었다. 아래아 한글판 165호도 배곯던 상황에서 만들어졌다. 학보사에서 일할 학우 구하는 일이 상당히 어렵다고 들었다. 나를 영입하려던 부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기사를 쓴다는 건 취재하는 일이고 취재 지시를 받은 다음 일이다. 누군가는 지면 신문을 기획해야 한다. 누군가는 백지 위에 기사를 배치해야 한다. 누군가는 오탈자를 확인해야 한다. 그래픽은 또 누가 만드나. 한 두 사람만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공동체 의식은 나라는 존재가 사회라는, 학교라는 토대 위에서 살아간다는 인식 속에서 피어난다. 하지만 누구도 학교 문제에 나서지 못했다. 용기가 없었을지 모른다. 문제가 어떻게 얽혔는지 풀어낼 자신도 없었을 것이다. 또래 정치 싸움 너머 어른들 다툼에 끼어드는, 분명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어른들이 공론장을 박살 내는 동안 젊은 것들은 무시 당했다. 그런데도 대학원에 들어가려 하다니. 내 아둔한 지각에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본지 문화섹션 나우에서 선보인 단편소설 ‘너에게 맞설 수 있는 치트키’에서 주인공 최문정은 아무도 없는 밤 기숙사에서 남자애와 키스한다. 문정은 잠 못 이루는 감정을 느꼈다. 키스를 그리는 장면에서 상상했다. 만일 선배의 부탁을 받아 들고 학보사에 들어갔다면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루라도 더 빨리 장신대 신학대학원 진학이란 허황된 꿈을 버리지 않았을까. 사람들과 부대끼며 현실의 벽을 조금 더 일찍 마주치지 않았을까. 지면신문 배치마저 인쇄소에 맡기던 “에휴, 자유의새노래 만도 못한 학보구나” 탄식 대신. 기획실장, 아니 편집국장과 싸우며 침신대학보라 쓰고 공론장으로 읽는 희망의 탑을 하나씩 쌓아가지 않았을까.

최문정을 이용해서라도 과거로 돌아가 세상을 바꾸고픈 열망이 샘솟는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 20대 대선을 맞았다. 정치인을 아이돌로 추앙하던 20세기와 작별하고, 당당히 현재를 살아가는 21세기가 우리 눈 앞에 선명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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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직필의 자유·시대성의 창달·주체자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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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논단] “변화를 기다리던 때는 이제 지나갔기에”

브라우저가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심심하면 문학광장 글틴에서 청소년 작가들이 쓴 수필을 읽곤 한다. 청소년 작가의 글에서도 완성도 좋은 글을 발견할 때면 즐거움이 배가된다. 글틴에는 재미난 글들이 많다. 오탈자 많거나 줄바꿈 하나 없이 아웃사이더 같은 글에서부터 ‘와 이건 진짜다’ 싶은 정도로 폼 들인 글에 이르기까지. 자의식을 강하게 느낀 나머지 소설 같은 수필을 써도 사랑스럽다. 웹사이트가 괜찮은 디자인으로 구성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야들야들 밥 한 톨 같은 음절의 모음이 귀엽기도 하고 꽤 젊은 작가의 포스가 느껴지기도 했다. 한때 매주 목요일 저녁이면 문정동 스타벅스에서 청소년 작가들의 글을 정독했다. 한 단어, 한 문장도 놓치지 않았다. 때로는 밑줄 긋기도 했고 내 생각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잘 쓰고, 못 쓰고를 평가하지는 않았다. 날 것 그대로의 수필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독자의 시선에서 가장 꼽을만한 특징이라면 청소년 작가의 작품들은 찰나의 순간이 많다는 점이다. 소녀, 소년의 시간이 찰나의 순간이기 때문일까. 그 짧은 순간을 포착해 글로 풀어내는 능력이 뛰어난 작품을 발견할 때면 감탄해 마지않았다. 찰나의 순간마저 절망의 그늘로 해석하는 작가에게는 연민의 마음이 들었다. 심지어 나도 그 십자가 조금이라도 들어주고 싶은 심정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십자가는 각자가 져야 하므로 철저히 작가의 짐이어야 했다. 후회와 한탄, 바뀌지 않는 입시제도와 사회 구조 속에서 질식하는 청소년 작가들…. 애석하게도 이들은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글은 마지막으로 표현하는 그들만의 다잉 메시지 같았다. ‘다신 글 올리지 않겠지’ 싶으면서도 또 올라온 동명 작가의 글을 보면서 안도할 때도 있었다. 나는 청소년 시기에 이런 절망적인 글조차 써본 일이 없다. 일상에서 경험한 글도 쓸법한데도 말이다. 신앙에 경도된 나머지 보수적 이념과 교리에 고취된 프로파간다 논설이나 쓴 게 전부였다. 그 시절의 글을 읽으면 무뚝뚝하고 딱딱하기만 한 소년을 만나는 이유다.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없는 글. 차갑다 못해 얼음장 같은 오탈자 하나 없는 문맥에선 ‘진리’를 다루고 있으나 씨뻘건 신념으로 읽히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과거사를 들여다볼 때마다 무뚝뚝한 소년을 만나거든 ‘꼭 글을 어렵게 써야만 했느냐’고 묻곤 한다. 남들과 똑같은 환경, 똑같은 교복, 똑같은 과목을 공부하며 살았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병적으로 “남들과는 다르다”를 보여주고 싶은 까닭 말이다. 신앙은 독창적이고 나만의 고유한 언어였으니까. 그 시절 교회에서는 묵상의 시간을 가지곤 했다. 나는 나의 고유한 언어로 성경을 해설했다. 토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의 독창적 해설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시비를 걸지 않기를 바랬다. 고유한 언어는 나만의 세계에서 갇혀 지내는 탄탄한 성벽이 되었다. 나를 나 되게 만드는 언어가 역설적으로 나를 가두는 틀이 되고 만 것이다. 그 틀이 나를 구원하리라고 믿었다. 청소년 시기의 나는 이런 용기를 내지 못했다. 변화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세상이 요동치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 했다. 단락으로 꾹꾹 눌러 담아 쓴 문장들은 곧 부서졌고 나는 저 멀리 폭풍우에 밀려 거센 파도에 휩쓸리고 말았다. 문학광장의 청소년 작가들은 언제나 자신의 글을 모두에게 공개한다. 언제나 피드백을 받는다. 성실하게 답장까지 달아주는 작가도 있다. 청소년 작가들이 쓴 글도 머잖아 부서질 문장일지 모른다. 나의 고유한 언어는 나를 가두었지만 오늘의 청소년 작가는 그 틀을 부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튼튼하지 않은 문장을 꼼꼼히 읽는다. 나는 문학광장 글틴에서 고유한 언어를 구사하는 소녀, 소년들을 만난다. 용기를 가지고 변하려 몸부림친 흔적을 느낀다. 그래도 청소년 작가의 글이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성인이 되었을 작가 해나리의 글로 답을 대신한다. “나는

[현실논단] 9월에 떠난 두 목회자를 뒤로하고

브라우저가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옥한흠 목사의 설교를 다시 접한 건 성인이 되고 나서다. 그날 옥한흠은 설교 단상에서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어렵게 유흥가 종사자들을 전도해 왔건만 교회에 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들추었다. 비참한 편지를 남기고 떠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누가15,11-32 본문을 인용해 아버지 재산을 미리 받아 탕진한 둘째 아들을 싸늘히 바라보는 첫째 아들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호통이 이어졌다. “우리의 모습은 탕자가 돌아왔다고 춤을 추는 아버지의 이미지가 아니에요. 사랑의교회, 천만에요. 우리는 바리새인의 이미지를 갖고 있어요. 우리는요. 큰 형의 이미지를 갖고 있어요.”(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기쁨, 1999.10.03) 옥 목사가 숨 거두었을 때만 해도 고등학생이었다. ‘제자훈련에 미쳤다’는 대외적 평가는 상징적으로만 비쳤다. 설교를 들어봐도 가슴에 와 닿는 게 없었고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같은 본문으로 설교한 조용기 목사의 설교가 흥미로웠다. 조 목사는 오히려 교인들을 첫째 아들보다 둘째 아들로 비유한다. 인류는 둘째 아들이므로 하나님을 떠나 있으니 다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사람이요 그도 길 잃어버린 사람이요 그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요 버림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길을 잃고 죽은 사람으로서 사는 것이 세상 사람인 것입니다.”(잃어버렸다가 찾았으며 죽었다가 살아남, 2008.06.22) 소돔과 고모라 도시는 성욕에 망하지 않았다 가난한 자 손 놔 버린 교만과 역겨움이 원인 롯의 아내처럼 교회를 보다가 발걸음 멈춘다 언제나 조용기 목사의 해석이 익숙했다. 신앙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일대일 관계로만 보았기 때문이다. 일대일 신앙은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결코 사람은 진공 상태에서 홀로 설 수 없는 현실이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산다면 철학과 신학, 교리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하든 그 일은 윤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윤리와 비(非) 윤리, 옳음과 옳지 않음을 구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기 위함이 아닌가. 나와 너, 세계라는 현실의 3요소를 깨달은 존재가 바로 어른이며 인간이면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다. 아이로 남기를 바랬던 내가, 언제나 조 목사 설교를 즐겁게 들으며 나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을 따름이다. 그 세계에는 이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내 말에 동의할 또 다른 나만이 존재했다. 11년 동안 이어진 이기적 체제는 현실에 이르러서야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11년 체제의 종말이 갑작스레 다가온 것이다. 현실을 마주하는 작업은 고통 그 자체였다. 회피라는 방법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피하는 이들도 보았다. 나조차 회피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문제의 문제로 가로막힌 한국의 상황을 누구보다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이 처한 상황을 피할 수 없고, 외면할 수도 없다. 누군가의 아픔은 곧 나의 고통으로 연결되기에 사회라는 광의의 존재가 각자의 분담된 공동의 짐으로 신음한다. 구약성경 선지서를 보면 현실의 3요소가 등장한다. 고통을 당하는 나. 신음하는 이스라엘, 그리고 하느님이 심판을 내리려는 세계가 드러난다. 원망스럽게도 신은 평범하게 살던 선지자에게 자신의 말씀을 전달한다. 이방을 섬기는 야훼의 질투를 심판과 진노라는 결과로 내보일 것을 경고하는 것이다. 나라면 무어라 답했을까. 요나처럼 스페인으로 도망갔을까, 예레미야처럼 울었을까. 다섯 편 설교를 들으며 고등학생 시절

[현실논단] 태평로1가 61-28번지 조선일보에서

어느 날 토요일이었다. 조선일보 1면을 정독하다 하단의 기사를 보고 놀랐다. 1면 상단에나 어울릴 크기의 커다란 세 줄 제목에 띄었기 때문이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겨냥한 기사 이후 4년 만에 정정보도문을 대문만한 크기로 게재했다. 박근혜와 조선일보 싸움은 송희영 주필을 몰아내고, 최순실이 터져서야 막을 내렸다. 둘 중 하나가 이긴 것이 아니다. JTBC 보도로 부랴부랴 토해낸 TV조선 기사에 국민들 시선이 잠시간 이동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렇다 할 특종을 보지 못했다. 저널리즘의 승리라고 말할지 모른다. 나비효과로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까지 이렇다 할 특종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국의 호(號)가 단독이 되었을 무렵 사람들은 조선일보에 주목하지 않았다. 쏟아지는 단독 기사에 조국 사태 네 글자만 뇌리에 남았다.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이 나라에 프레임을 섬세히 짜던 조선일보 손길보다 위선적인 조국의 엘리베이터 속 웃음을 기억한다. 대중 매체라곤 텔레비전과 신문, 라디오가 전부였던 시대가 지나갔다. 사회 담론이 복합적으로 얽히고설켜 다양하게 소비된다. 하나의 담론이 편중된 여론을 만드는 시대에 도달했다. 섬세한 손길이라 말했다. 신문의 예술적인 섬세한 손길이 이제는 헛발도 짚는 걸 보면서 ‘조선일보도 늙었구나’ 생각했다. 늙은 건 조선일보 그 신문뿐이 아니다. 원고지로 쓰는 맛을 느껴가던 고문(顧問) 자리에서 내려온 김대중 전(前) 주필에게서도 느꼈다. 조선닷컴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글에만 댓글 창을 막아버린 언론인. 할 말은 반드시 하기에 기자가 천직(天職)이라 자랑하던 조선일보 어른. 그가 쓴 칼럼을 읽으며 ‘당신도 늙었구나’ 생각했다. 안기부를 가리키며 남산에서 설렁탕 먹던 시절 험한 세상 살았다고 여겨오던 당신이 이젠 그게 아니라는 걸 안다고 인정해도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섬세한 손길로 지면신문 판짜듯 프레임 짜던 당신의 판단이 오늘의 조선일보를 만들었기에 자승자박(自繩自縛)이란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인간을 전통적인 기독교의 의인(義人)과 죄인(罪人)을 딱 잘라 구분하기 어려운 것처럼 김대중 전 주필 말마따나 사실이 반드시 진실일 수는 없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건 사실이 아니다. 매일 조선일보 A2면에 실리는 ‘바로잡습니다’가 그렇다. 사실이 아닌 건 바로잡아야 한다. 지금까지 조선일보가 눈 가리고 아웅이던 기사가 얼마나 될까. 디테일하게 예술적으로 교묘히 사실을 가려버린 수없는 바로잡지 않은 오보들을 조선일보가 더 잘 알 것이다. 단지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전시(展示)로써 끝나버려 죽어버린 오보 앞에 바로잡는다고 될 일인가. 선배 주필들 사진조차 쳐다볼 수 없어 글로써 사과한 지금의 주필만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조선일보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졌느냐고 묻는다면. 김대중 본인은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 수많은 기자들 땀방울 서린 기사들이 늙은이 손가락에 의해 잘려나간 슬픔으로 세워진 신문이라면 무어라 대답할까. 책임지는 자리에서 사과 한 마디 없이 편집 기자 손길로 만들어진 [바로잡습니다] 한 꼭지면 충분하다 진심으로 믿는 건가. 노무현 시대에 이은 대통령 때리기 놀이가 오늘의 사랑제일교회를 만들었고 대한민국 담론장의 질(質)을 저하시킨 원인 앞에 김대중은 일말의 책임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나. 지난 해 신문 열독률은 10.2%다. 지면신문 영향력은 앞으로도 사라져 갈 것이다. 허나 신문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디지털 방식으로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화려했던 80년대, 지면신문에다 촘촘하게 수놓던 프레임 장인 조선일보를 보기는 힘들 것이다. 조선일보 구독을 해지한지 1년이 가까워진다. 신문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도 앞섰다. 걱정도 바보 같다. 신문이 없어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안다.
Today소랑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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