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견뎌야 했어… 아빠의 작은 희망:『나의 슈퍼히어로 뽑기맨』

2024년 12월 09일

나의 슈퍼히어로 뽑기맨
우광훈 지음 | 문학동네 | 196쪽 | 1만2500원

아빠가 회사를 관뒀다고 해. 집에선 허리를 다쳤다는 얘기가 나돌았고. 그래도 딸 진서의 일상은 달라진 게 없었어. 엄마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아빠는 틈틈이 매트에서 스트레칭하며 요양했어. 그리고 만화책 [원피스]를 정주행하기 시작했지. 아빠의 하루는 아마 무척 지루했을 거야. 30분도 앉아 있기 어려운 처지였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진서와 산책하던 아빠의 이목을 끈 건 다름 아닌 뽑기 기계였어.

“이봐, 젊은이. 저 아크릴은 지금 밀어서 뽑을 순 없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내가 특효약을 하나 알고 있는데, 궁금하지 않나?”(33쪽 10문단)

할아버지의 유혹. 순간 아빠는 멈칫했어.

뽑기는 아빠의 인생을 바꾸었어. 뽑기맨으로 변신한 진서네 아빠 이야기야. 대구 시내의 뽑기 기계를 정복하려는 목숨을 건 대서사극 말이야.

죽거나 죽이거나
위로 뜨거나 묻히거나
둘 중 선택하라면은 죽일 거야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이건 단지 아버지의 사명
정상적인 아버지라면
밥그릇을 지키는 건 수컷의 자격
BILL STAX, <187>, 2014

◇너, 내 동료가 돼라!

아빠에겐 새로운 동료가 생겼어. 동신교회 옆 킹마트에 사는 영감님 말이야. 그때 영감님이 보여준 기술은 ‘숄더어택’이었어. 어깨로 기계를 강하게 치는 행위(36,5)래. 뽑기 주인장도 묵인한 사항이라나 뭐라나. 그날 아빠는 ‘골드 로저 피겨’를 뽑았어. 다음날 학교에서 진서는 화젯거리가 됐고.

아빠가 달라지기 시작했어. 유튜브만 보던 아빠가 글이라는 걸 쓰기 시작한 거야. 블로그에는 아빠가 이제껏 뽑은 기계들을 리뷰한 글이 하나 둘 올라오기 시작했어. 아빠의 일과도 사뭇 진지해졌지. 진서와 아빠, 그리고 영감님은 옥분이분식에 모여 그날 뽑은 상품을 언박싱했고 품평회를 열었어.

그러다 아빠는 BJ에 발을 딛기에 이르러. 점점 뻗어나가는 아빠의 정복욕은 누구도 말릴 수 없었어. 엄마라도 말이야. 시청자의 소리 없는 환호와 방송을 지켜보던 관중은 시간이 갈수록 빽빽해졌어. 하긴, 도라에몽 피겨에 고성능 망원경, 라바 인형, 몬스터 트럭, 캡틴아메리카 무드등…. 뽑은 걸 하나 둘 나눠줬으니 인기 작렬일 수밖에.

◇사내의 묵직한 물음

그러다 진서와 아빠는 우연히 ‘유리귀신’에 대한 소문을 듣게 돼. 뽑기깨나 해봤다던 한 떡볶이집 오빠의 입에서 말이야.

“그냥 풍문으로 회자되는 분이에요. 지금은 거의 활동을 안 하신다고 들었는데 (……) 특히 아크릴 공략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했죠. 대구 뽑기 기계 사장님들에겐 공공의 적이자, 우리들에겐 거의 영웅이셨죠.”(96,9-97,1)

뽑기에 열전을 벌이던 아빠에게 한 사내가 나타나.

“그 어떤 뽑기 달인이라 하더라도 뽑기 기계 업자들의 악의적인 조작은 이길 수 없다고. 자, 어때요? 이래도 뽑기를 계속하시겠습니까?”(126,5)

아빠는 사내가 뽑은 드론을 보더니 “날려봐도 되느냐”고 물었어. 그리고 아빠는 나직이 말하지.

“살다 보면 가끔씩 무모해지고 싶을 때가 있죠. 지금이 딱 그런 기분이에요. 전 뽑을 겁니다. 제가 직접 뽑은 드론을 날려 보고 싶어요.”(128,12)

사내가 한 가지를 제안해. 아빠가 가진 일곱 개 피겨와 사내가 가진 일곱 개 피겨를 걸고 한판 대결을 벌이자고. 혹시 그 사내가 유리…. 귀신?

과연 아빠는 이 대결에서 이길 수 있을까?

어느날 다친 허리 관둔 회사
산책하다 빠져버린 새 취미
‘뽑기왕 정복’ 아빠의 도전기

가장 마음에 든 건
황달수 할아버지와의 우정
끝없는 아내의 사랑에 울컥

이 작품의 묘미는
누구든지 닥칠 수 있는 시련
그래서 더 마음이 가는 소설
“자네만의 원피스를 찾게…”

◇그래도 뽑기맨인 이유

이 이야기는 작가 우광훈의 자전적 소설이야. 구체적인 지역의 이름과 상호, 동네 묘사가 진국이지. 영화 같은 주인공 이야기에 흠뻑 빠지고 말걸?

시간과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영감 황달수(144,7)와 아빠의 인연에선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 거야.

특히, 아 이거 스포일러 해도 될지 모르겠네. 하여튼 달수 영감님이 아빠를 향해 외치는 말이 있어. 그 장면이 무척 뭉클하더라. 이건 꼭 직접 읽어봐야 해.

그리고 이 모든 걸 알면서도 지켜만 보던 엄마의 이상한 행보도 읽어 주길 바래. 저 가득 쌓인 베란다 창고의 뽑기 상품에도 말이야. 왜 엄마는 다 알면서 아빠의 조그마한 일탈을 지켜만 본 걸까.

사실 청소년 문학소설이라 하기엔 조금 어려운 주제일지도 모르겠어. 왜냐하면 40대가 직장을 잃었다는 주제를 10대가 이해하기엔 아직 피부에 와닿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지. 다시 직장을 구해야 하지만 어쩌겠어. 허리를 다쳤다는데. 어쩌면 아빠는 절망에 빠졌을지도 모르겠어. 이직이 쉽겠니. 진서도 먹여 살려야 하는데.

그렇다 해서 별로라는 건 아니야. 점수를 줄 수 있다면 10점 만점에 10점을 주고 싶은 정도야. 그건 아마, 내가 아빠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처지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70대 할아버지와의 진한 우정, 그럼에도 사랑해 주는 아내의 애정, 그리고 아빠의 도전. 나는 눈물을 참으며 읽어야 했어.

◇내 안, 문장의 힘

이 소설이 작가 우광훈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아까 말했지? 맞아. 내가 놀랐던 것도 바로 이 지점이야. 단지 글을 잘 썼기 때문만은 아니야. 드라마 같은 이야기 저 끝에는 교훈이 남았는지 더욱 기억에 남더라고.

이 글을 읽는 너와 나도 언젠가 진서네 아빠의 상황이 찾아올 거야. 누구도 찾지 않고 자기가 필요 없다고 느껴지는 때….

신기한 건 뭔지 알아? 내가 좋아하는 정혜신 선생님과 유현준 건축가는 이렇게 말해. “그 순간을 견디라”고 말이야.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찾아온다고 말이지. 너의 잘못이라고 자책하지 말고, 너의 사랑을 찾아 하루를 견디라고.

그렇게 완성된 책이야.

“문득, 뭔가를 써야 할 것 같은, 아니 쓸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어. 난 요가 매트에서 일어나 컴퓨터가 놓여 있는 책상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어. 후우~ 하고 심호흡을 내뱉은 다음 용기 내어 의자에 앉았어. 순간, 익숙한 통증이 지그시 밀려왔어. 그렇게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문장을 만들어 나갔어. 통증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의자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어. 하지만 난……. 난, 행복했어.”(194,5-195,1)

자, 기억에 가장 남는 문장. 달수 할아버지의 주옥같은 명대사로 이 글을 마칠 게. 읽어줘서 고마워.

“이제 방황은 여기서 끝내고 자네만의 원피스를 찾게…….”(1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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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소랑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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