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죽은 자만 기리는 왜곡된 기억 방식의 한국사회:『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2024년 05월 13일
반파된 천안함 앞에서 한 장교가 14년 전 천안함 피격 사건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김승섭 지음 | 난다 | 268쪽 | 1만5000원

위키피디아에서 천안함 피격 사건은 다음처럼 설명된다.

‘천안함 피격 사건은 2010년 3월 26일에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PCC 772 천안이 조선 인민군 해군 잠수함의 어뢰에 의해서 격침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 해군 장병 40명이 사망했으며 6명이 실종되었다.’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를 읽으며 첫 단원에서부터 내가 알던 퍼즐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사실 관계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다. 특정 정보만 기억하던 탓이다.

‘천안함 침몰 후 58명의 장병이 사건 현장에서 구조되었다.’

저자 김승섭도 ‘천안함 생존장병 실태조사’ 전까지는 위키피디아 본문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나 역시 서울시청 거대한 꿈새김판에 마흔 여섯 명만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쉰여덟, 58명은 생존되었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생존장병의 PTSD 분포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천안함 생존장병의 아픔
천안함은 북한에서 제조한 감응어뢰의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해 선체가 절단되어 침몰했다.(천안함 피격 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 26쪽5문단)

허나 천안함 생존장병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다. 천안함 생존장병 실태조사는 피격 8년이나 지난 시점에 이뤄졌다. 사건 이후 한 번이라도 PTSD 진단을 받거나 치료 받은 적이 있는 이의 비율은 91.3%에 달했다. 베트남 참전 미군의 30%에 비하면 압도적인 수치다. 2017년 한 해 PTSD를 진단받거나 치료받은 천안함 생존장병 비율은 50%였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에 참여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PTSD 진단을 받거나 치료받은 사람의 숫자는 전체의 13%였다.

천안함 생존장병을 힘겹게 만드는 것은 ‘패잔병’이란 단어로 돌아온 비수였다.

“패잔병 호칭에는 전쟁에서 지고 온 군인이라는 무능함에 대한 비난뿐 아니라, 목숨이 오가는 전장에서 함께하기 어려운 재수 없는 존재라는 뜻이 묻어 있었습니다.”(90,1)

패잔병 낙인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군대였다. 사건이 발생하고 3개월이 지난 2010년 6월 30일 한민구 합참의장 인사청문회에서 “경계작전 실패는 확실하지만 전체 작전을 담당하는 합참의 작전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생존장병은 정훈장교 교육 시간에 “연평해전 1차전은 이겼고 연평 2차전과 천안함은 졌다. 너희들이 그런 정신 상태면 똑같은 일이 다시 발생한다”며 패전이라 표현했다고 증언했다.

생존장병들은 정말로 패잔병이었을까. ❶천안함은 1980년대 만들어졌으며 음파탐지기 소나는 북한의 유도어뢰 주파수를 인지할 수 없었다. ❷국방부와 합참은 사건 발생 며칠 전 징후를 인지했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❸최원일 함장은 북한 어뢰로 인한 폭침을 의심해 통신장으로 대응 공격을 요청한다고 해군본부에 전달했으나 해군작전사령부는 어뢰 공격 보고를 상부 기관에 전달하지 않았다. 따라서 군 지휘부의 작전과 정보 실패, 무능한 대응을 힘없는 생존장병들에게 잘못을 돌려 책임을 전가했다.

◇양극화로 변질되어 피해자를 옥죄는 정치 논리
2018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저자는 대한문 앞 분향소에서 한국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를 두 눈으로 목격했다고 한다. 태극기국민운동본부가 마련한 천안함 46용사 분향소 앞 집회에 참가한 이들이 쌍용차 해고노동자에게 비난과 욕설을 던졌다. 저자는 물었다. ‘왜 우리는 천안함 사건과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로 세상을 떠난 이들을 같이 애도하고 또 살아남은 자들을 함께 위로할 수 없는 것일까.’

세월호와 천안함을 바라보는 양극화된 시선도 다르지 않다. 세월호와 천안함은 별개의 비극적 사건이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 서해바다에서 발생한 국민의 상처다. 제2연평해전을 대하는 시선도 마찬가지다.(49,1) 저자는 재난 생존자를 대하는 한국의 역량을 언론에서 발견했다.

 “각 신문사는 친북-반북, 친정부-반정부, 보수-진보의 대립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었으며 이데올로기가 다른 타 언론보도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었다”(천안함 침몰 사건의 보도 경향과 이데올로기적 의미)

국민의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무자비한 취재를 자행한 행위도 세월호나 천안함이나 다르지 않았다. “어느 방송사에서 나를 엄청 부르길래, 나와 달라고 하길래 알았다고 하고 나갔다. 방청석에 앉아만 있고 발언은 안하는 걸로 하고. 근데 현장에 가보니까 내가 마이크 들고 질문을 받는 등 말을 하게 세팅이 되어 있었다.”(145,1)

두 사건을 대하는 시민들의 폭압적인 행동도 빼닮았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괴롭힌 루머는 배상금을 1인당 10억원을 받았다는 거짓 정보였다. 천안함 생존장병들을 향해선 천안함 사건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서약서를 쓰고 국가로부터 보상 받았다는 주장이다. 두 주장 모두 거짓이다.

국가유공자와 상이연금 신청 과정은 오로지 생존장병의 몫이어야 했다. 생존장병들은 신청 대상자인 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소방공무원 PTSD 사례를 든다. “사고성 재해를 당한 집단 중에서도 공무상 요양 신청을 해서 승인을 받은 집단이 가장 우울증상이 낮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226,2) 일하다 다쳤을 때 조직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소방공무원의 우울증상 발생이 달라질 수 있었다.

본지는 지난달 27일 서해수호관을 방문했다.(2024.03.27) 반파된 천안함 앞에 서자 한 장교가 당시의 피격 사건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허나 생존장병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천안함을 대하는 기억 방식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은 승전과 패전의 시각으로만 볼 뿐이었다. PTSD는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 재난도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PTSD로 고통 받는 소방공무원과 세월호 생존학생, 쌍용차 해고노동자, 성소수자, 천안함 생존장병을 만나 사회 역학자로서의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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