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팡 좀 하려 했더니 집안엔 박스만 한 가득… 믿었던 슥닷컴 너마저

유출된 개인정보 3367만3817계정 탈팡하려 뒤늦게 눈길 돌린 쓱닷컴 알비백은 없었고 남은 건 택배박스 7년의 영업손실 물류비가 큰 파이
2026년 04월 11일

작년 8월, 쓱닷컴(SSG닷컴)에서 장을 보았다. 신선식품 몇 가지와 생활용품. 아침에 현관을 열었더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종이 택배박스였기 때문이다. CJ대한통운 송장이 붙어 있었다. 바깥에 내놓은 알비백이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쓱닷컴을 선택한 이유는 친환경 알비백 때문이었다. 문 앞에 꺼내 놓으면 배송기사가 신선식품을 넣어두고 가는 다회용 보온 가방 말이다. 쓰레기가 없고 신선도가 유지됐다. 무엇보다 ‘배송다운 배송’이라는 감각이 있었다. 쿠팡의 박스와는 결이 달랐다. 그 차이를 믿고 선택했는데 막상 받아보니 쿠팡과 다를 게 없었다. 쿠팡은 로켓배송 기사라도 직접 왔지, 쓱닷컴은 CJ대한통운 택배 기사가 왔다.

그로부터 3달 뒤 쿠팡에서 3370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탈팡’ 여론이 들끓었고 쓱닷컴은 소비자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는 의아했다. ‘쓱닷컴마저 이미 달라진 걸 알고 있는 걸까.’

털린 3367만명의 정보 ‘쿠팡의 배신’

지난해 11월,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뒤흔드는 사건이 터졌다. 쿠팡 회원 3367만3817계정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이름, 전화번호, 배송지 주소, 일부 주문 정보까지 말이다.

사고의 경위는 더 충격적이었다. 정부 민관합동조사단 발표에 따르면, 유출자는 전직 직원이었다. 그는 퇴사 전 인증 서명키를 탈취했고, 퇴사 후에도 쿠팡이 해당 키를 폐기하지 않아 시스템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었다. 같은 해 6월 24일부터 11월 8일까지 약 5개월간 웹 크롤링 공격 도구를 이용해 대규모 정보를 빼냈지만, 쿠팡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고객 민원으로 침해 사실을 처음 인지한 것이 11월 18일이었다.

쿠팡은 초기 신고에서 약 4536개 계정 수준의 유출을 제시했지만, 정부 민관합동조사단은 성명·이메일이 포함된 3367만3817건의 정보가 유출됐다고 판단했다. 조사단은 성명·전화번호·주소·공동현관 비밀번호가 포함된 배송지 목록 페이지가 1억4805만6502회 조회된 점을 근거로, ‘조회 자체가 유출’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쿠팡은 자체 조사에서 실제 저장된 정보는 약 3000개 계정 수준이라고 주장했으나 정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소비자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집단소송 카페에는 수십만 명이 몰렸고, 커뮤니티에는 탈퇴 인증이 쏟아졌다.

탈팡 소비자를 노린 쓱닷컴의 손짓

쿠팡 유출 사태 직후, 이커머스 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움직인 건 쓱닷컴이었다. 올해 1월 신규 멤버십 ‘쓱세븐클럽’을 출시하면서 월 3900원에 OTT 서비스 티빙을 결합한 상품을 선보였다. 목표는 노골적으로 명확했다.

명분도 그럴듯했다. 장보기 결제액의 7% 고정 적립, 이마트·신세계백화점·스타벅스까지 연결되는 신세계 생태계, 신선식품 선도 불만 시 무조건 환불해주는 신선보장제도. 쿠팡에 지친 소비자들에게 쓱닷컴은 꽤 그럴싸한 대안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쓱닷컴에는 쿠팡에 없는 것이 있었다. 알비백으로 상징되던 차별화된 배송 경험이었다.

2019년 쓱닷컴의 새벽배송 시장 진출과 함께 등장한 알비백은 단순한 가방이 아니었다. 천 소재에 최대 9시간 보랭 효과를 갖춘 다회용 배송 용기로, 스타벅스·키엘·하겐다즈 등 유명 브랜드와 협업해 내놓은 한정판은 품절 사태가 벌어질 만큼 인기를 끌었다. 문 앞에 가방을 꺼내 놓으면 배송기사가 신선식품을 담아두고 가는 방식은 포장 쓰레기를 줄이면서도 신선도를 유지하는 쓱닷컴만의 경쟁력이었다. 쿠팡도 이듬해 비슷한 기능의 ‘프레시백’을 도입할 만큼, 알비백은 이커머스 배송 문화의 기준점이 됐다.

그 알비백이 사라졌다.

택배가 된 쓱닷컴 ‘알비백의 퇴장’

알비백의 퇴장은 쿠팡 유출 사태 이전부터 이미 시작된 일이었다. 2024년 6월, 신세계그룹과 CJ그룹은 유통은 신세계가, 물류는 CJ가 맡는 포괄적 사업제휴를 맺었다.

2024년 12월 서울 강동·강남·송파 일부 지역부터 종이박스 전환이 시작됐고, 2025년 7월 1일 수도권과 충청권 새벽배송 운영 체계가 CJ대한통운으로 전면 일원화되면서 알비백은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쓱닷컴은 이를 “물류 효율을 높이고 배송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한 협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경험한 현실은 달랐다. 커뮤니티에는 불만이 쏟아졌다. “신선식품 시켰는데 박스가 젖을 정도로 얼음이 다 녹아 있었다” “냉장과 냉동식품을 함께 포장해 드라이아이스 때문에 다 얼어서 왔다” “식품 4개 시켰는데 박스가 4개 왔다. 포장 뜯고 분리수거하는 게 더 힘들었다.”

배송 시간 선택 옵션도 줄었다. 기존 쓱배송은 배송 예정 시간을 촘촘하게 고를 수 있었고, 배송기사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개편 이후 새벽·오전·오후 세 구간으로 통합됐고, 실시간 위치 조회도 불가능해졌다. 오전 7시 새벽배송 도착 알람을 받고 현관에 나가보니 아무것도 없었다는 후기도 잇따랐다. 일부 지역에서는 생수 주문 자체가 막히기도 했다.

왜 이렇게 됐나… “7년 적자와 비용 절감의 연쇄”

이 모든 변화의 배경에는 쓱닷컴의 구조적 위기가 있다. 쓱닷컴은 2019년 출범 이후 7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 중이다. 2025년 한 해에만 117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누적 손실은 6414억원을 넘어섰다. 적자 규모는 전년 727억원에서 오히려 451억원이 더 늘었다.

재무 구조도 복잡하다. 쓱닷컴은 2018년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BRV캐피탈 등 재무적투자자로부터 1조원을 투자받으며 5년 내 기업공개(IPO)를 약속했다. IPO가 무산되며 소송전이 벌어졌고, 신세계는 지분 30%를 1조1500억원에 되사주는 방식으로 합의했다. 사실상 금융권 대출이었다. 3년 안에 갚거나 상장해야 한다. 상장을 위해선 흑자 전환이 필수다.

흑자를 내기 위해선 비용을 줄여야 했다. 쓱닷컴의 적자를 키워온 가장 큰 요인이 물류비였다.

전국 120여 개 피킹앤패킹(PP)센터를 통폐합하고, 마침내 물류 전체를 CJ대한통운에 맡기기로 했다. CJ와의 제휴 배경으로 핵심 키워드로 꼽힌 것도 물류비용 절감이었다. 알비백의 퇴장은 그 연쇄 구조의 필연적 결과였다.

아이러니한 지점이 여기다. CJ대한통운으로의 물류 위탁은 ‘쓱닷컴 살리기’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그 살리기가 쓱닷컴의 핵심 경쟁력인 신선식품 배송 품질, 친환경 배송 경험, 세밀한 소비자 접점을 갉아먹는 결과로 이어졌다. 업계가 ‘라스트 마일(last mile)’이라고 부르는 소비자의 마지막 경험이 무너졌다.

이커머스 소비자에게 남은 것

탈팡 소비자들의 처지는 묘하다. 개인정보를 유출한 플랫폼을 떠나 신뢰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갔더니, 그 대안이 자신의 강점을 이미 스스로 버린 뒤였다. 쓱닷컴이 탈팡 소비자를 정조준한다고 선언했지만, 그 소비자들이 쓱닷컴을 선택했을 이유는 쿠팡 유출 사태 이전에 이미 희미해지고 있었다.

쓱닷컴은 올해 쓱세븐클럽을 통해 반등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가 기억하는 건 멤버십 혜택보다 문 앞에 쌓인 박스 더미와 녹아내린 아이스팩이다. 알비백이 있던 자리에 택배박스가 놓인 그 아침이다. 7년 적자에 시달리는 플랫폼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포기한 것이, 하필이면 소비자가 그 플랫폼을 선택했던 바로 그 이유였다는 것. 그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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