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익숙함은 뭐지… 461, 753 떠오르게 만드는, 종이로 만든 류황원의 시내버스

작가 류황별의 꿈 페이퍼크래프트 손으로 하나하나 오리고 붙인 끝에 완성된 시내버스 모형 하나 완성에 두 달에서 세 달 관람객 마음에는 출퇴근의 일상과 기억이 새록새록
2026년 04월 11일

서울 광진구 ‘재주의 숲’에서 대중교통 종이모형 전시회가 열렸다. ‘종이로 만나는 버스와 철도: 특별전시&팝업스토어’. 무료라는 단어가 의아하게 느껴질 만큼 안에 들어서자마자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전시의 주인공은 유튜브 채널 ‘류황별의 종이공방’을 운영하는 종이모형 작가 류황원이다. 본명은 류황원으로 어릴 때 천문관측을 좋아해 이름에서 한 글자를 바꿔 별을 붙였다고 한다. 별생각 없이 지었던 이름이 이렇게 오래 쓰이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 이름이 그를 가장 잘 설명한다.

류황별 작가가 손으로 만든 146번과 53번, 143번 버스 모형.

지금까지 이런 종이접기는 없었다 ‘페이퍼크래프트’

류 작가가 하는 작업은 종이접기와는 다르다. 종이 한 장을 접어 형태를 만들던 종이접기와는 달리 페이퍼크래프트는 도면을 직접 설계하고 출력한 뒤 자르고 붙이는 조립의 과정이다. 도면 설계부터 출력, 제작, 촬영, 편집까지 전 과정을 혼자 진행한다.

작업 과정은 현장 답사에서 시작된다. 모형을 만들 대중교통을 선정하면 직접 찾아가 관찰하고 기록한다. 지하철 천장의 에어컨 위치, 기둥 모양, 손잡이 수까지. 사진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은 직접 그리고 적는다. 그렇게 모은 자료로 컴퓨터에서 도면을 설계하고, 출력하고, 자르고 붙인다. 모형 하나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0~300시간, 2~3개월이라고 한다.

이날 전시에서 볼 수 있었던 작품은 파란색 서울 버스 146과 부천에서 소사동을 잇는 민트색 53번 버스, KTX 이음과 무궁화 열차 등 다양했다. 서울 버스의 색깔은 단순한 디자인 선택이 아니다. 파란 버스는 시내 주요 간선 도로를 따라 먼 거리를 빠르게 달리는 간선버스, 초록 버스는 동네 안쪽 골목길과 가까운 거리를 촘촘히 연결하는 지선버스다. 색깔로 역할을 구분하는 서울 버스 체계가 종이 위에 그대로 살아 있었다.

작품 앞에 서면 손이 먼저 가고 싶어진다. 까슬까슬한 종이 질감에서 오는 감성이 묘하다. 매끈한 플라스틱 모형과는 다른, 종이만이 줄 수 있는 온기 같은 것이 있다. 내가 타던 461번, 753번 버스의 분위기가 떠올랐다. 번호만 달랐을 뿐 그 시절 버스의 냄새와 흔들림이 함께 기억났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종이 버스 안에 재현된 광고의 디테일이다. 한 번쯤은 보았을 광고들이 생생했다.

류 작가는 전시 내내 관람객과 함께했다. 작품 앞에서 멈추는 사람이 있으면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했다.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부분이 어려웠는지, 어떤 자료를 참고했는지. 작가의 설명을 들을수록 눈앞의 종이 버스가 달라 보였다.

저 광고 어디서 봤는데… 버스 모형의 완벽한 광고 구현이 현실감을 느끼게 했다. 류 작가는 열차까지도 완벽하게 종이로 재현했다.

70개 손잡이, 트러스 천장, 자판기까지 ‘꼼꼼한 디테일’

류 작가의 작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디테일에 있다. 그가 가장 어렵게 만든 작품으로 꼽은 것은 1호선 지하철과 신도림역 모형이다. 지하철 손잡이만 70개. 하나하나 종이로 만들었다고 한다. 신도림역 천장의 삼각형 트러스 구조와 플랫폼의 자판기와 안내판, 지하철 내부 광고까지 실제와 똑같이 구현했다. 제작 기간은 약 3개월, 300시간이었다.

재료는 종이가 기본이다. RC카 타이어 등 일부 기성품을 쓰기도 하지만, 가능한 한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로 만드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종이라는 소재를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어디서나 구할 수 있고, 책상과 의자, 재료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낮은 입문 장벽. 그 단순함이 그를 2007년 첫 버스 모형을 만든 이후 지금까지 이어오게 했다. 그가 처음 만든 것은 2007년, 어린 시절 충주에서 탔던 버스였다. 스케치북에 철도와 버스를 그리고 자르고 붙이던 아이가 지금은 전시회를 여는 작가가 되었다.

다음 도전 목표는 고속버스다. 지금까지는 요금도 저렴하고 친숙한 시내버스를 주로 만들어왔다. 고속버스는 타려면 시간과 비용이 들고, 결정적으로 좌석이 45석이나 된다. “45석을 다 만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이제는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류 작가의 다음 종이 버스가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앞선다.

기록으로서의 대중교통

류 작가는 스스로를 ‘시대를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에게 대중교통은 이동 수단만이 아니었다. “대중교통은 과거와 현재의 삶을 가장 강력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장치”라고 말한다. 버스 노선이 바뀌고, 차량이 교체되고, 역사가 리모델링되는 동안 그 시절의 모습은 사라진다. 류 작가의 종이모형은 그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는 행위였다.

류 작가는 YTN 사이언스 투데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꿈을 이렇게 밝혔다. “대중교통은 과거와 현재의 삶을 가장 강력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장치이고, 역사가 될 수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그에 비해 대중교통 속 사람들의 삶, 그리고 이런 역사성에 대한 보존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차량 제조사나 지자체, 국가가 대중교통의 역사성 보존과 미래 세대로의 전달에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는 바람이었다. 그는 덧붙였다. “이런 날이 올 때까지 더 치열하게 기록하고, 더 치열하게 세상을 만들겠다.”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도 그 맥락에서 읽힌다. 경기도 부천 시내버스 제작 영상은 2026년 4월 기준 약 283만 회 조회수를 기록했다. 누구나 출퇴근길에, 일상의 어느 순간에 탔을 버스. 그 버스가 종이로 재현되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각자의 기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류 작가의 첫 개인전이었다. 이틀이라는 짧은 기간, 다양한 연령층의 관람객이 재주의 숲을 찾았다. 팝업스토어에서는 버스, 열차와 관련한 굿즈를 판매하고 있었다.

류 작가의 본업은 출판과 UX·UI 디자이너다. 종이모형을 만들기 위해 그래픽 툴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 디자이너가 된 계기였다고 한다. 취미가 직업을 만들고, 직업이 다시 취미를 키웠다. 유튜브 수익은 모형 한 대 제작 비용보다 적다. 그래도 만드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재미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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