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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신앙/교회 安 이야기

[교회 安 이야기] 탈 교회를 생각 중인 만민중앙교회 성도들에게 드리는 편지

입력 : 2019. 01. 31 | 수정 : 2019. 02. 01 | A22


올해 3월 19일이 되면 교회를 나온 지 3년이 됩니다. 토요일이었습니다. 평소처럼 교회로 향해 방송실에 춥고 외롭게 일하던 고등학생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출근했습니다. 군복무 중인 저는 고등학생인 그 동생을 ‘친구’라고 부릅니다.


처음 교회를 방문하게 된 계기는 극동방송에서 흐르는 1분 찬양 덕분이었습니다. 목사 사택에서 진행하던 주일학교 새소식반이 결정적인 이유였고요. 교회를 나오기까지 13년이란 시간이 흘렀으니, 제 인생의 절반을 교회에 몸 담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두 달 만에 방문한 교회에 평소처럼 출근한 것도 교회가 일상이자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교회를 나오게 된 배경에는 담임목사와의 불화가 있었다고 늘 합니다. 이재록 목사가 구속되고 서신을 통해서 입장을 밝히는 상황에 적잖이 당황했을 겁니다. 저 역시도 담임목사 불화가 어느 순간 갑자기 터진 게 아니라 그 분에게 가르침을 받으면서 발생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았다면 이 편지를 쓸 이유도 없었을 겁니다.


담임목사님은 모 침례교회처럼 신앙을 강조하는 교회입니다. 믿음 생활이라는 이름으로 주일예배 지키는 일은 중요하고 십일조는 당연한 신앙 행위입니다. 행위를 강조한다면 오해할지 모릅니다. 교회를 나온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교회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행위를 강조한 교회라고 결론 짓고 싶습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기도하고, 신앙을 이어가기 위해 활동한다고 해도 그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이 편지를 무시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고민해보십시오

①나에게 하나님은 누구인가 ②나에게 이웃은 누구인가

신앙은 지키기 위해 행위함이 아니라 삶으로 지키는 것



누가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으로 비유했습니다. 저는 그 구절을 읽으며 우리의 삶이 자라나는 겨자씨와 발효되는 누룩으로 보였습니다. 따라서 신앙은 행위함으로써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써 지켜지는 것임을 깨달은 겁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만민중앙교회 교인들이라면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대가와 실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을 겁니다. 어느 아버지가 기도 시간이 미달이 됐다고 지옥으로 보내겠습니까. 어느 아들이 아버지의 은혜를 무시하고 방탕하게 살겠습니까.


성경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기준을 분명히 제시합니다. 헐벗을 때 입을 것을 주었는지, 병들어 있을 때 돌아보았는지.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주었는지. 주님은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태 25:40). 이는 요한일서에도 나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요한일서 5:3). 그 계명을 지킨다는 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겁니다(마태 22:35-40, 마가 12:28-34, 누가 10:25-28). 주님께서 박하와 회향,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지만 율법의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저버렸다고 하신 말씀은 단지 종교 행위를 가리킨 게 아닙니다.


교회를 나오기까지 몇 년에 걸친 질문이 있었습니다. ‘종교 행위가 없다면 내 신앙을 지켜낼 힘이 있을까’라고요. 담임목사에게 예배를 드리지 않겠다고 선언한 지금, 성경을 읽으며 신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게 신앙은 신과의 접촉이나 교제가 아닌 사람을 이해하며 신의 형상을 알아가는 삶입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만난 한 교인 분에게 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교회를 다니는 게 더 신앙을 지키기 어렵다”라고요. 교회를 다니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과연 여러분은 교회 생활을 하며 인간을,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누구이며 이웃은 누구입니까?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