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 08. 10 | 수정 : 2018. 08. 10 | C7
팬미팅, 러블리데이2 <6>
기억의 흐름은, 매섭던 겨울.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발가벗겨진 채, 혹독한 추위를 홀로 지내야만 했다. 노동은 고독을 낳는다. 살기 위해 노동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은 발가벗겨진 고독이다.
결정되었다. 2018년 2월 2일. 3일 간 콘서트를 진행한다는 소식이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그 3일은 노동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인간은 항상 자신을 숨기며 살아야 하는 존재일까. 가면을 쓰고, 나라는 존재를 잊어버리며 사는 게 운명일까. 과연, 고독한 노동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니, 고상한 질문은 때려치우고. 앞가림이나 할 수 있을까.
노동이란 현실 앞에 끝내, 선택하고 말았다.
‘예매 취소.’
살기 위해 출근길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살에는 듯, 고독함은 바람이 되어 살갗을 따갑게 했다.
콘서트는 셋째 날을 끝으로 매듭졌다. 갤러리에 올라온 후기를 텍스트로 읽으며 아련한 타자의 기억으로 더듬거렸다. 지수가 말했다.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저희가 같은 소식에 기뻐하고 같은 감동을 공유하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러블리즈를) 먼 존재라고 생각을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2018. 2. 2).”
갇혔다. 물리적으로 가까워도, 다가갈 수 없는 상태였다. 노동이란 현실에 붙잡힌, 그야 말로 돈의 노예.
러블리즈는 간단하게 현실이란 화면에 갇혀버렸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기계 속 타자로 남았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추워선지, 귀에 익지 않은 한 노래 가사가 한파 속에서 작은 불꽃이 되었다.
‘그대 없는 겨울이 저 만큼 왔네요. 그래도 난 괜찮아요. 그대를 품는 내 마음은 언제나 봄처럼 따뜻해(러블리즈, 2014).’
겨울이 오기 전, 처음으로 콘서트 동영상을 시청했다. 지애 누나가 말했다. “자기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지나고 지나고, 날이 지나면…… 당연히 러블리즈의 팬을 그만할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잖아요.)…… 근데 그 시간을, 내가 왜 러블리즈한테… 왜 러블리즈 지애한테 투자했지? 이런 생각이 안 들게, 저는 이제 잘할 거예요(2017. 7. 29).”
지수가 한 말을 되새기며, 지애 누나 소감을 기억하며 출근했다. 아직까진, 단 한 번도 걸그룹 콘서트를 가보지 못했다. 어느덧, 일상이 되어 끊임없이 재생 된 ‘Candy Jelly Love(2014)’를 듣자 울컥했다.
◇널 기억해, 러블리즈
끝났다던 팬미팅에 러블리너스는 자리를 지켰다. 앵콜을 외치기도, 멤버들을 부르기도 했다. 한 마음이 되어 다함께 ‘아츄(2015)’를 부르며 러블리즈를 기억했다.
시청각 자료가 재생되자, 모두가 예상하듯 체육관을 울린 건 Candy Jelly Love. 그리고, 우리 마음이었다.
언제든 기댈 넓은 어개를 가진 예인이가 되겠다는 고백, 고맙다는 표현 말고 더 할 수 없어 아쉬웠다는 수정. 언제 “짠!”하고 나타날지 모른다던 지애 누나, 천천히 천천히 추억을 하나하나 만들어가자는 케이의 고백. 우리들이 있어 러블리즈가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는 소울이누나, 헤어질 생각에 마음이 저린다는 지수. 따뜻한 물로 씻다가 마지막으로 찬물로 헹구면 시원해지니까 이 꿀팁 꼭 써먹으라던 미주, 엉엉 울던 팬보고 울지 말라는 명은이.
반짝반짝 좌석과 스탠딩을 메운 러블리너스는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을 것만 같았다.
현실 앞에 선택하다
지난 2월, 첫 콘서트 예매 좌절
노동이란 현실에 “예매 취소”
가까우면서도 먼, 러블리즈
정의할 수 없는 존재
러블리즈에게 건네 받은 선물
러블리너스가 있어 힘이 되다
모두에게 서로 달리 기억되다
◇교회도 하지 못할 일을, 러블리즈는 해냈다
러블리너스하니까 생각나는 건데, 장충체육관에 도착한 28일. 체육관 도착하자마자 럽봉 든 거 보고 문화컬쳐 당하고 말았다. 막 지하철 바닥에 앉아 노숙자처럼 기다리는 모습은 지금도 충격인데, 이런 분들이 둘이서 멋쩍게 ~~님, ~~님. 트위터나 갤러리 별명 부르는 거보고 세 번째 컬쳐쇼크를 당했다.
첫 날 팬 미팅을 마치고,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데 어느 두 사람이 대화하더라. “오늘 약 먹었냐”라고. 가만히 들어보면 정신과 약이란 걸 단번에 알아차리고. 그렇게 마지막 컬쳐쇼크를 받은 채 터벅터벅 돌아갔다.
유난히 목청 좋은 팬덤이 전체주의 집단으로 보일지 모른다. 러블리즈는 만들어진 존재 아니냐면서. 팬 미팅을 마치고, 출입문으로 향하며 모두에게 비췬 러블리즈란 존재는 제각각이었다.
데뷔부터 고대하던 러블리즈기도 했고, 우연히 백화점을 방문해 한 눈에 비췬 케이였고, 죽음이란 새까만 심연 앞에서 운 좋게도 “잘하겠다” 눈물 흘린 지애 누날 보기도 했고. 오늘은 약을 먹지 않아도 러블리즈면 충분하듯, 서로가 다르게 러블리즈를 인식하고, 기억했다.
서로 존재를 인식하며, 서로를 위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러블리즈는 존재한다.’ 러블리즈는 내 언어로 정의될 수 있지만, 그 언어로만 정의될 수 없다. 러블리즈는 다양한 이미지를 가지며 한 단어나 문장, 한 언어로만 정의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러블리즈는 존재한다.” 정의를 유보함에는 한 존재로만, 멈춰진 시간 속 존재로 기억하지 않으려는 신중함 때문이다.
지수가 마음이 저린다며, 아쉬워했다. 돌아가야만 한다. 우리에겐 내일이란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수는 괘념치 않았다. 여기서 움직이지 않고 멈춰버리면, 더는 성장할 수 없으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갇혀 자라지 못한다면 비극이다. 비극을 막기 위해 지금, 여기의 아픔을 딛고 또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만 한다.
누군가는 러버이연합 운운하며, 비아냥댈지 모른다. 그러나 러블리즈는 교회도 하지 못할 일을 해냈다. 얼굴과 이름도 모르는 존재에게 희망을 주고, 또 지옥 같은 하루를 살아 낼 우리에게 건넨 용기.
러블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다. 그들의 의지와 무관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존재함으로서 “그대에게(2015)” 힘과, 소망, 그리고 위로를 선물했다.
“그래요, 힘을 내요! 그댄 오직 내게/하나뿐인 소중한 사람/언제나 힘들 때면 그대 내게 기대/우리 둘만의 꿈을 꿔요/소중한 이 내 맘 모두.”
그날따라 청명한 빛으로 노을 졌다. 잊지 않고, 마지막 좌석을 향해 두 차례 손을 흔들어준 미주와 수정이를 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아침 8시 출근길을 위해 무거운 짐을 지고 내일을 향해 묵묵히 걸어갔다.
“우리 어디까지 갈는지/어떻게 될 건지 나는 몰라도/겁먹진 않을래요(2014).”
ⓒ부활
럽봉 러블리즈 공식 응원봉. 분홍색으로 디자인 돼 남자가 들고 다니기에 다소 부담스럽다는 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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