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김치찌개
인생의 고단함 끝에
그저 그런 식탁에서
우리의 손으로 만든
우리만의 ‘저녁 만찬’
보글보글 끓는 찌개
김이 모락모락 밥솥
권진원의 노랫소리
콜라 잔 들고서 “짠”
우리는 간간히 바깥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기도 했다. 경신여고 정류장에 있는 한솥도시락에서 도시락을 먹기도 했고, 운암동에 있는 병원을 다녀온 후 국수나무에서 저녁을 먹었다. 여자친구와 외식을 하는 일도 좋았다. 하지만 자주 외식을 하는 건 감동적이지 않았다. 그저 그런 식사 같았다.
그저 그런 식사를 탈바꿈한 건, 우리의 손으로 빚어 만든 저녁이었다. 우리의 저녁은 특별했다. 스팸 한 팩 가득 넣는 김치찌개를 밥상에 올려두어야 비로소 완성되었다.
퇴근 후 회사에서 집으로 향하는 시내버스를 타면 여자친구와 오늘 저녁은 무얼 해 먹을지를 주고받았다. 집 앞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면 장을 보기 위해 마트를 들린다. 식재료는 주로 집 앞 마트에 의지한다. 두부, 양파, 카레 가루, 떡갈비, 그리고 마지막에는 입이 심심하지 않게 제로콜라를 사가지고 돌아간다.
가장 빠르게 만들 수 있었던 메뉴는 김치찌개였다. 집에 돌아와 김치와 두부, 스팸을 미리 준비했다.
김치는 과감히 쭈욱 찢어서 도마 위에 올려놓은 후 한 입 크기로 썰었다. 두부는 아홉 개의 직사각형으로 나누었고 스팸은 캔 안에서 적절한 크기로 잘라 두어 재료를 준비하면 끝. 식용유를 붓고 김치를 볶은 후 물을 부어주어 끓이기 시작하면 반은 끝났다. 중간 중간엔 여자친구가 큐빅 모양으로 만들어 둔 다진 마늘을 넣어주면 된다.
찌개가 적절히 끓으면 뚜껑으로 덮어두어 푹 익힌다. 마침내 완성된 밥솥을 열고 주걱으로 휘젓다가 밥그릇에 담고 밥상에다 옮긴다. 여자친구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챙기는 와중에 나는 스타벅스에서 가져온 티슈를 마름모 모양으로 배치하면 저녁 준비는 끝난다. 텔레비전에서는 바깥양반의 여행 이야기가, 때로는 가수 권진원의 멜로디가 집안 가득 울려 퍼지곤 한다.
언제나 첫 숟갈 이전에 우리는 광명 이케아에서 구매한 잔에다가 부은 콜라를 들어 “짠”한다. 그럴 때마다 하루의 고단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우리의 행복한 밥상 이야기다.
“뜨거워도 직접 삶습니다” 여자친구의 도전, 대성공
② 잔치국수
코인육수 하나에
표고버섯과 양파
채 썬 호박 넣으면
담백한 국물 ‘뚝딱’
비주얼과 맛 동시에
사로잡은 여친 손길
육수는 ‘코인육수’를 기반으로 참치액과 소금, 그리고 다진 마늘을 넣어 완성했다. 육수가 한참 끓는 동안 호박과 표고버섯, 양파를 썰어 넣었고 고소한 국물이 일품이었다. 큰 그릇에 담아둔 면에다가 국물을 끼얹으면 비로소 점심 잔치국수 완성.
여자친구의 첫 도전 작(作)이라고 한다. 생각 이상으로 구수한 국물이 맛있다 못해 우리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기까지 했다. 비주얼뿐만 아니라 맛까지 잡은 여자친구의 뜨거운 손길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다.
오랜 노력과 손길 끝에는 구수한 ‘달래 된장찌개’가
⑧ 달래 된장찌개
후딱 잔손질 끝내고
몰래 끓여 같이 퇴근
집에 도착한 정선씨
“누가 만들었어요?”
그냥 된장찌개가 아니다. 달래 된장찌개다. 달래 된장찌개도 그냥 된장찌개가 아니었다. 일일이 달래를 손질해야 했기에 손맛이 서려 있었다.
어느 날 여자친구는 디엠으로 “오늘 저녁 달래를 넣은 된장찌개 어떠세요?”라고 물었다. “네, 좋아요 ㅎㅎ” 하지만 여자친구가 집에 도착하자 이미 된장찌개가 끓여져 있었다. “엥? 뭐예요?” 여자친구가 물었다. “어! 뭐지, 아침에 끓이고 나간 된장찌개 아닌가요?” “집에 나도 모르는 우렁각시가 있었나.”
낮에 나가기 전, 내가 몰래 된장찌개를 끓이고 나간 것이었다. 여자친구는 이런 나에게 ‘우렁이 각시’ 별명을 붙여주었다. 빨래도 해주고 밥도 만들어주는. 고마운 우렁이 각시.
무더운 한여름 달달하고 시원한 면발! 버거 대신 가벼운 샐러드는 어떠세요?
⑩ 냉모밀
사진 찍고 돌아오니
여친이 완성한 저녁
시원한 모밀에 군침
⑪ 샐러드파스타
지겨워진 맥모닝에
상큼한 샐러드 눈길
미소 짓게 만드는 맛
올 여름은 무더웠다. 무척이나 더웠다. 올해 만큼 에어컨을 틀고 살다시피한 여름은 없을 것이다. 나 혼자였다면, 두 세 시간을 틀어 놓고 끈 상태에서 찬 공기를 즐기며 부채질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여름은 특별히 여자친구와 함께할 수 있었다.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온 저녁이었다. 여자친구는 이미 냉모밀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고마웠다. 후딱 씻고 오는 동안 완성된 저녁을 나는 즐기기만 했다. 물론, 설거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만드는 건 한 세월인데, 먹는 건 후딱이네요.” 여자친구의 한 마디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여자친구는 설거지가 싫다고. 힘들게 만든 저녁, 한 입, 두 입만에 사라지는 게 허무한 듯했다.
주말이면 우리는 맥모닝을 먹으러 간다. 어느 날은 맥모닝이 입에 물렸다. 샐러드를 해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샐러드 야채를 손으로 북북 찢었다. 닭가슴살과 양파를 굽고 카펠리니면을 삶았다. 야채를 쌓고, 그 위에 닭가슴살과 양파, 스위트콘에다가 오리엔탈 소스를 버무리면 끝.
달달하면서도 아쉽지 않은 상큼한 맛, 파스타 중에서도 얇은 면이 야채와 어울러 가벼운 아침이 되었다. 가끔 해먹으면 미소 짓게 만드는 맛.
③ 닭갈비
“재현씨, 오늘은 집에서 닭갈비 해 먹어요.” 우리는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일이 잘 없다. 여자친구 집에서 지내는 동안 맛있는 닭갈비도 해 먹었다. 회사 근처에 있는 정육점에서 닭갈비를 구매했다. 1+1이었다. 집에서는 양파를 썰고 닭고기를 넣어 소스에 버무려 볶기 시작했다. 매콤한 소스에 군침이 돌았다. 여자친구씨 손맛의 닭갈비, 춘천 닭갈비가 부럽지 않았다.
④ 부추전
이날 여자친구의 조수가 되었다. 여자친구는 부추를 써는 동안 나는 옆에서 반죽했다. 보울에 밀가루를 가득 담고 일정 용량의 물을 넣고 마구마구 섞기 시작했다. 거품기를 통해 반죽이 무르 익을 무렵, 여자친구에게 자랑했다. “반죽이 다 완성 됐어요!” “잘했어요.” 며칠 전에 산 무알콜 맥주에다 한 점 입에 넣었다. 바람도 솔솔 부는 주말 낮. 보기 좋은 낮술이었다.
⑤ 토마토스파게티
여자친구가 컵에다가 물을 부었다. 냉동된 소시지를 넣고 녹이기 시작했다. 이어서 여자친구가 피망을 써는 동안 마침내 녹아버린 소시지를 어슷하게 썰면 대략 준비는 끝난다. 이어서 여자친구는 면을 삶는데, 삶는 데에는 11분 가량이 걸린다. 냉장고에 붙은 타이머를 이용해 정확히 삶아준 후 물을 버리고 소스를 넣어 스파게티를 완성한다. 피망의 식감이 제격이다.
⑥ 김치볶음밥
“재현씨, 김치통 좀 들어주세요.” 김치볶음밥을 할 때마다 김치통은 가벼워진다. 내가 직접 김치볶음밥을 만들 때면, 김치를 대충 잘라다가 만들곤 했다. 여자친구는 큰 칼을 이용해 김치를 완전히 분자(?) 단위로 햄과 함께 썬다. 김치가 작으면 작아질수록 볶을 때 더욱 맛있게 되는 게 무척 흥미로웠다. 햄은 그냥 소시지가 아닌 스팸일 때 맛은 두 배가 되는 법!
⑦ 카레라이스
한 번 만들면 두 끼, 세 끼는 먹게 되는 반가운 메뉴. 닭가슴살과 양배추, 양파, 토마토를 준비해 깍둑썰기를 해주면 끝. 닭가슴살과 양배추를 볶고, 물을 부은 후 카레 고형 제품을 넣고 끓이는 동안 양파와 토마토를 넣으면 카레라이스 만들기 완성. 밥과 카레가 워낙 뜨거워선지 선풍기를 켜지 않을 수 없었다. 후후 불어가며 조금씩 먹다 보면, 어느새 한 공기 정도는 뚝딱.
⑨ 김밥
“재현씨, 맛살 좀 분리해주세요.” 햄, 계란, 단무지, 어묵이 들어간 김밥. 따끈따끈한 밥에다가 참기름을 넣고 비벼준다. 비닐 장갑을 낀 후, 입으로 호호 분 밥을 조금씩 떠다가 김 위에 올려 둔다. 발라 펴기 시작하면 밥이 식으면서 그 위에다 햄, 계란 등 하나 둘 쌓으면 된다. 마지막으로 돌돌 말아 완성하면 끝. 거창하지 않아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김밥에 행복감도 더해 간다. 다음엔 어떤 재료를 넣어 만들어 먹어 볼까.
⑫ 미역국
여자친구가 미역을 볶는다. 참기름을 넣고 솔솔 볶기 시작하면 집 안 가득 풍기는 향긋함에 취하고 만다. 생일이 아니어도 입 안 가득 퍼진 감칠맛 나는 미역국에 반해버리게 되는데. 미역국을 먹기 전, 요 며칠 과식을 좀 하게 되었다. 매일 고기에 맛있는 군것질까지 배가 부르고도 남은 상황에서 가벼운 미역국이 위를 달래주는 듯했다. 밥 한 공기에 미역국, 작아 보여도 든든하고도 고소한 국물에 집 밥이 그리워졌다.
⑬ 볶음밥
김밥 만들다 남은 재료를 가지고 볶음밥을 만들었다. 맛살과 계란이 들어간 재료가 무척 인상적이다. 알록달록한 색상을 가진 것만큼 달달한 식감이 원톱. 나라면 대충 주걱으로 퍼내기만 했을 텐데, 여자친구는 플라스틱 공기에다 볶음밥을 꾹꾹 눌러다가 거대한 공기에 올려두는데, 예술이 따로 없다. 이 볶음밥이 김밥 만들다 남은 재료로 만든 요리로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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