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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현실논단

[현실논단] “신문 기자는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

 

낙하산 인사 논란이 터지고 부서에는 체념의 기운이 감돌았다. ‘열심히 해 봐야 뭐 하나’ ‘실력 없고 무기력한 이들이 비집고 들어온 마당에디자인은 고사하고 시계열이 없는 데이터에 꺾은선 그래프를 넣은 최종본에 기겁하고 말았다. 대표는 아무 문제없다고 두둔하니. 누가 이런 회사를 옳다고 생각할까. 체념에 물든 건 부서 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의욕을 잃었다. 일 잘하는 사람을 온갖 인사 조치로 봉쇄하는 칼날 앞에 할 말도 잃었다. 대표의 칼날이 목덜미에 닿을 무렵 체념은 무기력으로 변했다.

 

낙하산 인사는 시작일 뿐이다. 무능 경영은 직원에게 불신을 낳았다. 대표 주도의 이간질은 더 이상 무능 경영만으로 끝낼 상황이 아님을 내보였다. 대표 신임은 급전직하 내리막을 달렸다. 더는 한 부서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사원 모두의 문제로 걷잡을 수 없이 퍼졌고 고통이 닿았다. 한 사람이 짊어진 아픔이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뻗쳤어도 대표는 인지하지 못했다.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이 회사를 떠났고 무능 경영을 지적했다. 체념의 기운도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신문이란 특성상 오늘 취재한 정보를 지면신문에 담아 내일의 독자에게 배달해야 한다. 가판마감. 오후 6시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다. 확인해야 할 정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많으면 네 면의 종이를 훑어야 한다. 적으면 기사 13개에서 많으면 기사 15개가 실린다. 오탈자부터 본문 오류까지 잡아내어야 한 호() 지면신문을 완성한다. 따라서 취재 지시를 내리는 고즈넉한 인품의 어른도 폼 잡고 있어야 하지만 빠릿빠릿 움직이는 젊은 기자도 절실하다. 모든 질서 한데 어울려 도제(徒弟)와 새 것이 하나 되지 않으면 완성하기 어려운 직종이 아닐까 생각했다.

 

 

체념뿐인 신문사에서
아무 것도 못할 바에야
한 각도, 1도만이라도
튼다면 삶은 달라질 것

 

 

15년 전 한국 언론 종사자 연령별 비율은 20-30()40-60대 기준으로 6:4였다. 지금은 4:6으로 각각 22.3%p 줄었고 21.5%p 증가했다. 대표가 아무 문제없다고 공언한 직원의 연령이 50-60대에 포진해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하나 같이 고집만 부린다. 일머리도 없고 배울 생각도 없는, 월급만 공짜로 받으려는 대표가 말한 밥값 못하는 인간이다. 자기 힘으로 공부하며 스스로 탐구해도 모자란 시간에 되짚지 않는다. 신문도 보지 않는다. 어떤 기사가 실렸는지도 모르는 이들은 그래프를 잘못 그려도 문제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도 대표는 아무 문제없다고 말한다.

 

종이신문 열독률, 열독시간, 정기구독률 추이(한국언론진흥재단, 2021)

 

언론학 전공자가 아니면서도 취재기자로 뛰는 선배와 점심을 먹었다. 다른 신문기자 선배에게서 한 가지 특징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신문 기자는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 처음엔 오늘의 기사를 실어 내일에 발송하려는 열의를 표현한 줄 알았다.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것 같았다는 말에서 유시민의 말이 떠올랐다. 방송국놈들이 인간 취급 받지 않던 시절 신문기자들은 펜을 권력처럼 휘두르기 바빴다. 그동안 숱한 권력자들이 펜 한 자루에 정치적 목숨을 잃었다. 선배는 선배 기자가 한 말을 가리켜 요즘 애들은 열의가 없다” “옛날만 못하다며 한탄했다고 한다.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는 맥락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한국 신문 열독률은 20년이 채 되지 않아 80%대에서 9.7%(2022)로 떨어졌다. 더는 신문으로 정보를 습득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읽는 신문에서 보는 신문으로 바뀐지도 오래다. 신문은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대응하지 못했으며 저출생과 기후 위기에 무력하다. ‘열심히 해 봐야 뭐 하나질문은 한 회사만의 물음이 아닌 것이다. 모두가 체념에 빠진 이 상황에서도 선배는 낭설에 빠지지 않았다. 더 잘 해보려는 마음에 회사 근처로 이사 간다고 말했다. “그야 정의에 불타오르는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스스로를 기레기로 겸양하는 자세가 낯설지 않은 그런 선배다.

 

더는 오류를 잡아낼 데스크도, 부족한 기사를 혼내 줄 선임도, 밀어주고 당겨줄 선배도 없는 이 회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냐마는. 회사를 생각하는 선배의 속마음을 되새기며 항해술을 생각했다. 학부를 졸업하자 든 질문. 조금이라도 각도를 틀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금 당장 180도 회전하기 어렵지만, 1도씩. 1도가 어렵다면 0.5도씩 서서히 틀어갔다면. 시간이 흘러 우리는 몇 도를 더 틀어 달라진 인생을 살고 있을까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