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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now]

[지금,여기] 사라진 촉각 되살리는: 「조각충동展」①

 

조각충동전시회정보

코로나가 유행하며 사라진 감각은 냄새와 맛뿐만이 아니다. 만지는 감각, 촉각(觸覺)도 사라졌다. 악수 대신 주먹을 맞대거나 안아주기보다 멀찍이서 바라보는데서 끝나는 상황이 2년 가까이 이어졌다. ‘조각충동’에 향한 관심도 잠시 잊힌 촉각이 떠오른 탓이다. 북서울미술관에서 다음 달 15일까지 ‘조각충동’ 전시회를 개최한다.

작품 수는 모두 66점으로 참여한 작가는 17명에 달한다. 언론에서는 젊은 작가들 특성을 강조하지만 막상 작품 앞에 서보면, 작가들 나이보다 일반인 입장에서 생각지 못한 다채로운 표현 방식에 놀라게 만든다. 단지 존재 그 자체로만 서 있던 물건에서 이름과 의미를 갖춘 작품으로 세워지기까지 작가들이 고민한 발걸음을 되짚고 싶어진다.

 

 

 

조각충동_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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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현 작가 '공공조각파일'. 다른 각도에서 보면 얼굴이 보인다.

조각의 의미를 묻는다: [공공조각파일] [어린이 조각가]

작가 정지현의 ‘공공조각파일’은 작업실 근처 길가에 서 있는 여성 나체 조각상에서 출발한다. 알루미늄으로 제작해 거대하다. 전시 전(前)만 해도 포개어 보관하던 알루미늄 망을 높게 쌓아 완성했다. 작가가 떠낸 공공조각은 방치되고 버려진 듯 웅크린 조각상이다. 뒤 계단에 올라가 바라보면 눌러서 표현한 여성의 얼굴이 보인다.

작가 본인의 완성한 작품을 참조해 ‘어린이 조각가’로 표현했다. 완성한 작품은 과거의 존재다. 작가 곽인탄은 과거를 가져와 오늘의 새 작품으로 만든 이유를 묻는 듯했다. 나도 내 글을 다시 인용하곤 한다. 단지 과거의 재생산과 반복을 이유로 가져오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가 기존의 틀과 현실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작품만 볼 땐 알록달록 형체 불명으로 보이지만 작품 설명을 읽을 때에야 의미를 이해했다.

‘어린이 조각가’는 높이 3.7m로 상체와 하체로 나뉜다. 하체는 ‘다리가 계단이 될 때’ 형태를 가져왔고 상체는 3D 프린트로 ‘조각 스터디1’ ‘조각 스터디3’의 작은 모형 일부를 확대 출력했다. 조각이라 하면 사람의 손으로 제작한 작품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기계 힘으로 만들어 작가 스스로 꼿꼿하게 세운 작품 앞에서 조각은 더 이상 순수하게 사람의 힘으로만 완성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순수라는 올바름의 영역보다 작가가 자기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기존 방식에서 벗어난 제작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활동성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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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탄 작가 '어린이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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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제성 작가 'Index_초전리 미륵불'.

가져보지 못하거나 표현 불가한 방식을 가능하게 만들다: [Index_초전리 미륵불] [Bag with you_ Take your shape] 

우리가 아는 보통의 제작 방식은 안에서 밖으로 형상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작가 오제성의 ‘Index_초전리 미륵불’은 3D 스캔과 프린트를 통해 반전, 변형, 왜곡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주조 과정을 실험한다. 종교 차원에서 조각은 현재의 시간에서 지켜가고 과거의 시간에서 앞으로의 시간에 다다르기까지 연결한다. 작가도 실재보다 1.5배 확대해 내부 공간을 묘사하면서 전통을 재구성한다.

잃어버린 신체를 상상해 보라고 가리키는 작가 우한나의 패브릭 조각 ‘Bag with you_ Take your shape’은 작가 자신이 신장(腎臟) 치료 받으며 느낀 감정과 감각을 선보인다. 자궁과 고환뿐만 아니라 햄스트링 같은 근육과 안구, 척추 등 신체 기관 일부를 패셔너블하게 제작했다. 직접 입어보면서 결핍을 가졌거나 결핍을 느끼는 이들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꼭 결핍 감정이 아니어도 작품을 직접 만지면서 가져본 적 없는 서로 다른 성별의 장기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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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만지면서 존재하지 않는, 잃어버린 장기를 상상해볼 수 있다. 작가 우한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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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작가 '우리의 기도-나는 동료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나는 사랑한다 나는 껴안는다 나는 연대한다'

인간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의 기도-나는 동료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나는 사랑한다 나는 껴안는다 나는 연대한다] [이펙터] [피셔 1, 2] [소파쥐]

뒷모습에 기어이 얼굴을 보려 했을 텐데 설명을 읽고 나서 보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작가 신민의 ‘우리의 기도’에서 표현하는 인간상은 여성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목덜미를 보면 프렌치프라이 포대가 보인다. 나이 들면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노동자 그 자체를 느낀다. 동일한 모습으로 묶어낸 머리망, 유니폼은 전혀 즐겁지 않다. 미술관 홈페이지에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확인해보면 더욱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종이 조각도 인상적이다.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의 ‘맹인의 우화’를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깡통처럼 세워진 작품은 알고 보면 속이 빈 종이일 뿐이다. 종이들은 몸 부분이 서로 끼워진 방식으로 연결되어 하나로 묶였다. 작가 황수연은 인간이 느끼는 결핍을 보았던 것일까. 얇은 종이에서 발생하는 중력과 장력을 이겨내는 상태를 “결핍을 안고 서 있는 것을 몸이 내포하는 갈등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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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황수연 작품. 단단한 철로 만들어진 듯 하지만 사실 종이 조각이다. 겉모습은 단단하지만 속이 빈 존재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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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미소마저 짓게 만드는: [Not Shy] [Next Level] [일곱 번째 감각] [테스타] 시리즈

누가 봐도 에스파(aespa)로 보여서 웃음이 났다. 작가 이동훈은 여자 아이돌 포인트 안무를 ‘추는 것’에 주목한다. ‘Not Shy’ ‘Next Level’ ‘Savage1’ ‘Savage2’는 멈춘 조각이 아니다. 다리와 손, 허벅지를 중첩 효과로 표현해 움직이는 조각으로 시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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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1912년 마르셀 뒤샹 作 '계단을 내려가는 나부 No.2'. 작품에서 움직임이 느껴진다. 아래 사진인 작가 이동훈의 'Next Level' 등에서도 움직이는 조각을 느낄 수 있다.


마르셀 뒤샹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가 생각났다. 인쇄에서 글자를 다룰 때 글자는 항상 멈춰있다. 정지 상태에서 글자는 그 자체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한계를 가진다. 그러나 글자가 ‘Black Mamba’라든지 ‘어쩔티비~’라 쓰였다면 귀에서 소리도 함께 재생되는 효과를 느낄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 그림 그리고 조각을 중첩이라는 효과를 통해 움직이는 듯 보이도록 만든 작품이 웃음을 만들었다.

‘Next Level’을 보는 동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Not Shy’는 여자 아이돌 있지(ITZY) 미니 앨범 3집 타이틀곡이다. 작가의 구체적인 의도를 알 수 없지만 에스파를 좋아하는지, 있지를 좋아하는 것보다 작가가 표현하려는 바가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전신이 필요한 작품에선 머리부터 발끝까지 조각으로 표현했다. 반면 포즈를 표현할 땐 다리 하나 혹은 고개 숙인 생략된 몸통 등으로 묘사해 동세를 드러낸다.

작가 최고은의 ‘테스타’ 시리즈는 익숙한 가전제품을 대리석으로 재현하고 밑단을 절단한 두상이라고 한다. 압력밥솥, 에어플라이기, 컴퓨터 모니터, 에어컨을 보고 에스파를 발견했을 때보다 더 웃었다. 작품 설명을 봐도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작가는 “그간 산업 사회의 생산, 소비 시스템과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대량 생산품들의 제작, 유통, 폐기, 재활용에 이르는 과정에 주목하고 그 사물들이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방식을 파고들어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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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최고은 '테스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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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채린 '행동유도조각 #2: 들여다보기'는 직접 만지며 관람할 수 있다. 작품 옆 모니터를 참고하면 된다.

작품과 관람객을 연결하는 관계, 상실한 존재를 변화하는 존재로 재탄생하는 연결: [행동유도조각 #2: 들여다보기] [세이브 미 2005-2022]

맞은편 작가 김채린의 ‘행동유도조각 #2: 들여다보기’는 몸으로 감상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관람자가 몸으로 작품을 해석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따라서 보는 것뿐만 아니라 손을 넣거나 머리를 집어넣어 만지면서 몸으로 느낀 감정을 관람자가 해석한다. 몸은 피부로 닿은 감각을 몸의 기억으로 재해석한다. 작가는 이 기억을 ‘몸이 가진 기억을 저장한 덩어리’라고 표현한다.

작가가 표현한 조각과 관람객이 가진 몸은 분리되지 않으면서 관계를 형성하는데 작품 설명을 읽고, 작품 옆에 위치한 텔레비전 설명을 보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적 맥락과 사회, 경제적 맥락을 설명하는 그 어떠한 문구도 없이 연결 된 작품과 관람객의 관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세이브 미 2005-2022’는 전기장판, 벽돌, 수화기로 보이는 물건이 눈에 띈다. 작가는 “원래의 기능을 다 한, 혹은 그 위치를 상실해 원 기능에서 멀어진 대상에 관심이 있”다고 말한다. 기존 재료를 사용하면서 기존 작업을 수행한 “고정된 존재로부터” 새 작품 재료로 변화하는 존재로 재탄생시켰다.

1층과 2층으로 구성된 전시장을 2시간가량 돌아다녔다. 직관적으로 이해한 작품도 많았지만, 아무리 설명을 보아도 이해되지 않은 작품도 많았다. 보기만 하던 조각을, 만질 수 있고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오감(五感) 이상의 작품은 흥미로웠다. 관계라는 측면에서 상실의 감각까지 지각하게 만드는 시각은 더운 햇살 속 전시회로 향한 발걸음을 아깝지 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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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채린 '세이브 미 2005-2022'. 작품 가까이에 서면 소리가 들려온다.


북서울미술관_전경
2022년 6월 21일 촬영한 북서울미술관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