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문법을 읽기 위해 되짚은 천안함 피격 사건과 세월호 침몰 사고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맞닥뜨리기 어려운 미숙함의 연속이었다.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고,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는 아픔 속에서 천안함 12주기와 세월호 8주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 의한 천안함 피격은 전 세계 얼마 남지 않은 분단국가 대한민국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했다. 그럼에도 국가를 위해 희생한 마흔여섯 용사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생존장병 쉰여덟 명 용사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를 집필한 고려대 김승섭 교수는 천안함 피격 사건 생존장병의 아픔을 되짚는 과정에서 군 내부가 낸 상처에 주목했다. 적이 조롱하는 일보다 내부의 사람들이 생존장병을 돌봐주지 않는 배제하고 차별하는 과정에서 죽음을 마주하고 견딜 수 없는 고독을 경험한 것이다.
아픔은 천안함에서 끝나지 않았다. 맹골수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에 이르러 절반 넘는 희생자 가운데 가엾은 아이들이 포함돼 있음에도 어른들은 정치 투쟁과 갈등으로 일관하기 바빴다. 한국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해상 침몰 사건임에도 진상을 규명하기보다 덮기에 바빴고, 상처 받은 유족을 위로하기보다 조롱과 힐난이 이들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정부에 의한 불신은 언론의 반인륜적 행태에 강해지는 과정에서 단단해졌다. 유족은 사회로부터 외면 받을 지경에 이를 만큼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사회 그 자체를 보여주었다.
저자 김 교수는 타인의 고통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방치하는 한국 사회를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와 천안함 사건 이후 보상과 위로에 피로감을 느낀 이유가 무엇인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국민 개개인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할 지경으로 피로한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 공간 속에서 ‘먼저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의 맥락은 무엇인가. 이데올로기로 고착화된 한국 사회 문법과 담론을 해체하고 구조를 바꾸어야 할 일에는 구조적 변화를, 시스템의 변화에는 시스템을 고치는 방식으로 개인에게만 지우던 짐을 사회가 자발로써 지는 방식으로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를 강하게 감싸 안는 ‘나만 아니면 된다’는 아이도 하지 않을 무책임한 행태를 돌이켜야 한다. 당장 나의 부모, 나의 딸, 나의 친구가 희생자가 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 누가 고통스러워하는 불신의 사회를 맞닥뜨릴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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