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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서

삼풍이 무너지고 아파트가 지어져도 세상은 여전하다:『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산만언니 지음 | 푸른숲 | 256쪽 | 1만6000원

 

삼풍백화점 붕괴만 다루지 않았다. 사고 이후 기억에 초점을 맞춘다. 어째서 붕괴했는지, 보상 받기까지 과정, 새 아파트 지어지고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일목요연하지 않다. 흩어진 기억을 한데 모았다. 따라서 사회의 시선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이라는 삶의 정황을 비춘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이미 여럿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삼풍 참사의 진실’(2007)처럼 생존자를 중심으로 건축학적 원인을 다루거나 사체와 함께 잔해물을 매립지로 버린 사실을 드러낸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2015)도 있다. ‘KBS다큐 인사이트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시대유감, 삼풍’(2020)은 지대(地代)가 상승할 무렵의 강남 일대를 훑으며 삼풍백화점이 무너질 시기 다층적·시대적 상황을 그린 다큐멘터리도 존재한다.

 

그동안 기록들은 사회적 시각과 생존자라는 삼풍백화점이란 한정된 장소에서 풀어낸 기억과 기록이지만. 이 책은 삼풍 이후의 삶을 다룬다. 따라서 삼풍백화점 희생자라는 개인의 기억과 이후의 삶을 시간 순서가 아닌 다채로운 기억을 한 다발 묶었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수록 먹먹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사회를 개인들에 맞추어 바꿔가는 방식이 아니라 연약한 개인을 사회 구조로 끼워 맞추는 편리함 때문이다.

 

글쓴이가 주목한 기억은 기록하지 않던 아주 어렸을 시절에서 출발한다. 별다른 생각이 없었던, 그저 살아야했던 흘러가는 시대로부터 사회 문제는 조금씩 쌓이기 시작한다. 돈을 움켜쥐기 위해 쌓인 한 사람으로부터 출발한 부조리는 부실 공사로 모여 거대한 삼풍백화점 붕괴를 낳았다. 글쓴이 산만 언니는 힘이 없다. 사람들 속 한 사람일 뿐이다. 개인이 경험하는 거친 풍파 앞에 기억을 꺼내든 이유가 명확하다. 체계적이지 않고 학술과는 거리가 멀지만 산만 언니로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기억을 기록하여 죽음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드는 이들의 구조를 바꾸고 싶은 일.

 

일상적 악이 모여 상처 받고 고통에 처한 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보듬으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지를 묻는다. 일상적 병으로 전락한 우울증과 번아웃, 정신의 문제로 아파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비춘다. 유야무야 넘어가는 한국 사회 구조와 문제를 개인의 상처와 아픔으로 되갚음 당하는 현실을 들춘다. 그럼에도 신들의 풍차는 돌아가듯 산만 언니의 고단한 하루도 기록과 함께 주목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