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 10. 03 11:27 | B2
호흡이 맞았던 찬양 인도 집사님께
짜증과 어리광 좀 부려도 너털웃음
그 건달 집사님 어디서 무엇하실까
세 가지만 기억하자. ▶전도 ▶청년학생예배 ▶주일예배. 세 가지 일만 하면 토요일 업무는 끝난다. 오케이, 전도는 뭐 전단지와 사탕 건네면서 예수님 믿으라고 얼굴에 철판 깔면 그만. 그 다음, 청년학생예배? 성경구절 갈아치우고 늘 부르던 찬양 순서에 맞게 가사 자막만 배열하면 그만. 여기까진 막힘없이 순서대로 준비하면 그만. 하, 주일예배만 문제.
유독 주일예배 자막 제작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항상 건달 집사님이 찬양 콘티를 늦게 건네주기 때문이다. 건달 집사님은 방송실 근무를 시작하고 몇 달 지나고서 오후예배 찬양 인도를 맡으며 나와 호흡을 맞춘 유일하게 교회 내(內) 케미(chemistry)가 맞는 분이시다. 내 이름만 부르면 마이크 든 건달 집사님께 무엇이 부족하고 뭘 해야 할지 다 알 만큼 척척 맞았는데. 다른 건 다 좋다 이 말이야, 항상 토요일 저녁. 그것도 9시 넘어서 순서를 넘길 때가 많다는 점. 토요일엔 좀 일찍 쉬고 싶은데 말이다.
◇건달 생활을 청산하고 집사님이 되기까지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성격의 내 앞에선 굽신거리며 늘 미안하다고 하시지만. 건달 집사님은 이름에서 잘 알듯, 약한 사람에겐 강하고 강한 사람에겐 약했던 분이었다. 키는 나보다 훨씬 큰 건달 집사님은 교회 다니기 전 꽁지머리에 여러 술집을 운영하며 주먹 하나 믿고 살아온 건달 그 자체였다. 초창기 찬양 인도하던 풍경은 건달이 겨우 소화할 고역스런 정장에 다소곳이 오른손을 가슴 위에 두고 막역히 떨리는 손으로 찬송을 부르던 믿기지 못할 광경이다.
한 때 한 주먹 하셨던 건달 집사님의 짧디 짧은 성장사를 지켜봐 왔던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성격의 나라도 조심스러워질 법도 한데. 중학생 신분이던 시절부터 고등학생,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막역한 사이가 된 배경은 극렬한 신앙 체험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영적 체험은 건달 집사님을 짐승에서 사람으로 만들었다. 사람들도 알아주던 야한 조각상을 갖춰둔 술집을 때려치우고 당당히 유흥업소가 아닌 자신만의 사업에 손을 뻗치면서 자신의 삶을 주님과 함께 개척해 나가는 그런 어른으로 바뀌어 갔다.
그 거대한 덩치에 내가 움츠리기도 해야 하는데, 조금도 거리낌 없이 응석도 부릴 수 있었던 건, 다시 말해 극렬한 신앙 체험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건달 집사님의 인생을 바꾼 건, 자신의 처지, 부끄러웠던 나날을 볼 수 있었던 회심 덕분이다. 술만 마시고 집만 들어오면 풍비박산 내던 과거를 돌이키고 무릎 꿇어 사죄하던 첫 걸음부터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성격을 고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고 간증하며 예수님을 전하던 건달 집사님의 신앙은 내가 봐도 놀라웠다.
◇집사님의 달라진 삶을 보면서 느끼건대
이쯤 되면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나 같은 학생 나부랭이 도리어 가르칠 법도 한데. 매주 콘티 하나에 쩔쩔매는 건달 집사님을 보면 지금 생각해도 기이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주일오후예배 찬양 콘티는 항상 늦는다. 말 그대로 건달 집사님께 짜증내곤 했다. “이렇게 늦으면 안 돼요.” “아이고, 미안해.” 외롭지 않으라고 1평 남짓한 방송실에 들어와 작업하던 옆에서 맞장구도 쳐주셨던 분이다. “현란한 손 좀 봐라, 움직이는 예술이다. 예술! ㅎㅎ” 한창 김장겸 사장 시절 MBC노조가 파업하던 시절. 15분만 방영하던 뉴스데스크를 보고 고작 생각해낸 한 마디가 이것. “집사님! 찬양 콘티 안 주시면 15초만 자막 띄우고 안 띄울 겁니다!”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주일 점심 식사를 마치던 그 웃음소리가 몹시 그립다. 든든한 거목 건달 집사님. 콘티 하나 늦어도 용서되는 그런 웃음.
짜증은 내도 마음으론 이해했다. 평일엔 바쁘게 사업하느라 눈코 뜰 새 없으셨을 텐데 8년을 쉬지 않고 찬양 인도를 해왔으니 그 꾸준함은 신앙의 영역을 넘어선 듯했다. 때론 담임목사의 70년대 사고방식, 이를테면 뜨거운 회심 이후 교회에 충성해야 하는 절대적 신앙생활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구나 느끼게 했지만. 현대인은 건달 집사님처럼 살아가진 않는다. 다시 말해 집사님의 신앙 체험은 지극히 개인의 회심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하나의 경험과 단편사례가 모든 것을 증명하지 않는 법이다.
내가 교회를 나오고, 머지않아 건달 집사님도 교회를 나왔다는 소문을 접했다. 갈등으로 교회를 나왔던 나와 달리 자신이 설립한 사측과 법적인 문제에 얽혀 그곳 교회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전말을 듣고 한참을 고민했다. 무엇이 건달 집사님의 교회 생활을 가로막은 걸까 하고. 뒤늦게 추적해본 주식회사의 대표명도 어느새 동 교회 모 집사님으로 바뀌어 있었고 지난 해 회사는 회생절차를 밟은 상태였다. 배임 혐의로 감옥에 갔다는 소문부터 그새 타 지역에서 지내고 있다는 소문까지. 더는 추적하기 어려웠다. 건달 집사님 소식이 궁금하다.
낄낄대며 방송실에서 편집했던 성탄예배 간증영상 다시 보니 정겨운 그 모습이 그리웠다. 그 짧은 간절한 의지의 고백. “옛날의 내 모습을 가진 사람들, ‘나처럼 하나님을 만나면 당신도 살아나겠노라’ 전도하겠다”던 그 결심,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앞으로도 그 믿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덕분에 다시 만나 얼굴을 마주해도 과거의 케미를 느끼지 못할 운명일 테지만. 나는 이미 머나먼 세계로 달려간 지 오래라 과거라는 틀 안에서만 대화를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언젠간 다시금 만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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