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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now]

[지금, 여기] 논골담길 그 끝 해파랑길, 찰싹이는 파도를 느껴보다

입력 : 2020. 05. 11 | 수정 : 2020. 05. 11 | B4

 

 

논골담길 걸으며

 

20분이면 도착하는 논골담길 등대오름길

해파랑길 파도소리 정겨운 모습 구경하며
도착한 등대서 파도 보니 즐거운 마음도

 

걸어봄직 하다고 느껴질 즈음 묵호등대에 도착하자 이곳 논골담길 네 길 중 한 길로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골목 마을 오름직한 풍경, 사진으로 담기까지 20분. 바람개비와 풍차, 시(時)를 천천히 음미하며 올라오기 충분한 코스였다.


코로나 여파가 닿기도 한 달 전, 멀리서 불어오는 파도가 겨울의 정점에 섰음을 말해준다. 왜 해가 지는 2019년 12월 31일 동해바다여야 했는지.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2010년대 마지막을 지는 해와 함께 인사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져가는 석양 앞에 나는 잘 살아왔는지를 묻고 새로운 노을이 떠오르기 전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파도 소리, 등대오름길 풍경
묵호역에서 출발해 논골담길 입구까지 20분.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걸어가다 보면 동해가 그리 크지 않은 작은 마을처럼 느껴진다. 묵호 등대마을에 도착해 ‘등대오름길’ 팻말 다음으로 눈에 띤 건 벽면 가득 메운 벽화였다. 지게를 지고 걸어가는 아저씨, 땅따먹기 중인 아이들, 뒤돌아보는 진돗개, 연탄 가게와 묵호이용소, 제일선구점이 그려진 벽을 뒤로하면 방금 지나친 오줌이 마려운 소녀 위로 오름길이 길게 뻗어 있다.

 


오랜만에 보는 바람개비가 추운 겨울과 함께 팽글팽글 돌아가고 사이에 쓰인 시(時)는 지나치지 말고 사진 좀 찍고 가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건넨다. ‘기억 저편 묻혀있던 섬이 떠오른다. 아직 혼자다. 나를 불러 혼자 있어도 외로워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던 그 섬. 다시 나를 부르고 있다…….“(오래된 엽서, 안상학) 시가 쓰인 팻말 뒤론 우수수 낙엽 떨어지듯 파도 끝자락에서 물살도 서로 간에 어쩔 줄 모르고 흩어진다. 붉은 풍차에 낯익은 길 이름이 보였다.

 

 


◇겨울바다치곤, 에메랄드빛인 파도
조금만 더 오르면 등대에 도착한다. 웬걸? 두 갈래로 나눠진 길 오른편에 다시 내려가던 길목에서 얼룩덜룩 동그란 지붕의 가건물이 서 있었다. 힘없는 걸음으로 들어가 봤다. 지겹게 오고간 대공초소를 빼닮았기 때문이다. 겉모습만 국방색이라면 영락없는 초소다. 소리도 울린다. 중간엔 유리창도 없어 비올 때 이곳으로 피한다면 곤란해질 듯.


그리고 도착한 등대. 힘차게 흩어지던 파도는, 등대 멀리서 바라보니 반복되는 파동뿐이었다. 등대 안에는 멀리 보이는 파동을 바라보던 가족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신기해했고 그 장면을 스마트폰에 담기 바빠 보였다. 알다시피 유리창 너머 보이던 파동은 비치는 내 모습에 잘 보이진 않는다. 조금은 춥더라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화면에 담아냈다.


저물어가는 햇살이 건물과 해안도로, 바지선, 밀려오는 파도에까지 구석구석 닿았다. 겨울바다하면 마냥 파란빛 파도만을 떠올릴 테지만 유난히 따뜻했던 2010년대 마지막 겨울. 노을 비치는 광경 에메랄드 빛 파도가 제법 웅장하게 보였다.

 

 

 

◇해파랑길에 모든 것을 담으며 돌아오는 길

‘해파랑길’


등대를 뒤로 하고 내려오는 길, 반가운 이름을 보았다. 군 생활 함께한 이 길은 고성부터 부산구간까지 한반도 등줄기를 연이은 750km 벗 길이다. 힘겨운 시기인 만큼, 강렬한 빨강색 해파랑길에 주목한 마지막 소초에서의 탈출이 그 너머 보였다. 사진을 찍고, 그 앞에 똥 누는 아이 상(像)이 웃게 만들었다. 기념사진 한 장 찍기 어려울 만큼, 경사도 만만치 않았다.

 


품위를 갖춘 파도 소리를 들으며 마지막 멀리서 보이는 파도를 감상했다. 붉은 노을에 젖어 맥주 거품 마냥 흩어지는 파도를 보니 해지기 한 시간 남았음을 직감했다. 물론 카페도 곳곳에 서 있다. 서둘러 져 가는 풍경을 보면서 음료를 마시러 발걸음을 재촉하는 바람에 여러 카페를 방문하지 못해 아쉬웠다. 가족과 연인도 많아 훈훈한 목소리가 이곳저곳 울리기도 했다. 아 물론, 어르신과 함께 걸을 예정이라면 피하기를. 등대오름길 경사는 젊은이도 헉헉대게 만든다.


한 가지 후회한 게 있다면, 추운 겨울 묵호항 근처 카페를 찾아 헤맸다는 점 하나. 다방은 있을지언정 시장 부근 카페는 찾기가 힘들다. 귀왕 도착했다면 등대 주위 카페에서 차 한 잔하며 쉬었다 가시길. 바보 같이 이리 헤매고 저리 헤매는 바람에 무턱대고 방파제에 앉아 본지 편집 방향을 작성하며 어둠을 맞이하는 방파제 풍경을 담기로 했다. 어쩌겠나.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