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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신학; 신앙

[교회 安 이야기] ‘언제부터 우리가 노예였던 거지?’

자유의새노래 2019. 12. 19. 16:57

입력 : 2019. 12. 10 | A26


3년 만에 교회 갈 생각을 하니 두근두근 설렜습니다. 25분만 걸어가면 언덕에 위치한 교회가 보이거든요. 인도없는 10분 거리를 아무 생각 없이 걸으면 500m, 300m. 조그만 주차장에 빼곡한 차들이 보이고 정문에서 주보 건네며 이 남자 저 여자 악수 나누는 장로님도 보입니다.

예배당 곳곳 울린 김도현의 ‘샬롬’을 듣자하니 방송실 한쪽에 수그려 커피를 홀짝이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샬롬’보단 ‘우리 아버지는’을 좋아했죠. 음향도 포근하고 시끄럽지 않은 평일 오전 카페 같습니다. 얼굴을 마주하고 반갑게 인사한 저 아저씨는 딱 봐도 장로님 같습니다. 눈도 감지 않고 주보를 책상에 걸쳐 두고 목사님이 설교할 본문을 찾았습니다.

흠, 이사야 40장이군요. 제 2이사야. 선지자가 주님의 길을 예비하라는 익숙한 구절입니다. 3부 예배는 예레미야서가 본문이라 ‘선지서 강해를 하나’ 물었습니다. 제 뒤에선 반가운 권사, 집사님이 어디 앉을지 옥신각신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시곗바늘은 11시 2분을 가리켰고 성가대 복장을 입던 집사님인지 목사님 사모님인지 나와서 예배의 시작을 알리더군요. 드럼 꽝꽝치고 피아노를 부수는 어떤 교회와는 달랐습니다.

장로교회는 아니라서 전통적 예배와 달랐습니다. 묵도는 있지만 교독문(성시교독이라고도 하죠)은 없었고, 성가대가 찬송을 부르면 담임목사와 교직자들이 교인석 사이 강단으로 향하는 가톨릭식 입장으로 시작을 알렸습니다. 성가대의 찬송, 장로 및 권사의 기도, 사도신경과 주기도문, 성가대 찬송과 광고, 설교 순입니다. 담임목사님은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바짝 긴장했습니다. 본문의 시대상은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어떤 고귀한 말씀을 전해주실까요?

 

 

천근만근 몸을 이끌고 열한 시 이 분, 2부 예배 참석하다
인생의 봄날로 시작해 선지서로 설교하던 목사님 설교에
“인생의 포로기 끝내야 한다”며, 교인들 “아멘”으로 화답


목사님은 각박한 우리 사회를 꼬집으며 고달픈 인생을 그리듯 술회했습니다. 자신의 힘든 인생을 말하기엔 겸손한 분이라 그랬을까요? 말 안 듣는 남편 때문에 눈물로 호소하는 권사님이 생각난다며 목사님께 물어본 그 말씀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목사님, 언제쯤 제 인생에 봄날이 찾아올까요?” 그러게요. 역 주위 마켓이라 이름도 ‘역전슈퍼’로 지었다는 그 분도 숱한 고생을 하셨다는군요. 아이고~ 이를 어쩌나. “기어서라도 교회에 가겠다” 선언한 교인에게 불끈 쥐고 “역전슈퍼처럼 인생이 역전(逆轉)될 거라” 축복한 목사님의 눈망울은 열의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패망해 나라 빼앗긴 포로기 70년과 작금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교인들이 목사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가엾고 가슴 아프겠습니까. 곧 인생에 봄날이 올 거라고, 역전될 거라던 말씀에 두 손 불끈 쥐고 “아멘”하던 앞자리 권사님 모습에 제 마음도 아팠습니다. 근데 알아야할 게 있더랍니다. 갑자기 본문을 보재요. 그 오실 봄 날… 아니, 주님의 길을 닦으라던 구절 다음 ‘모든 계곡은 메우고, 산과 언덕은 깎아 내리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 구절을 읽는 것 아니겠어요? 허허. 무엇이든 대가가 필요한 법이죠. 예수 잘 믿어보자는 담대함이 선포로 이어지자 뒤에서 중년 남성분의 아멘 소리가 실낱같이 들렸습니다.

목사님도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었던지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를 두 번이나 복창했고 교인들은 따라 외쳤습니다. 그러더니 선지자 요나가 살던 시대로 데려갔습니다. 인생 봄날 어쩌고 하다가 뜬금없이 예수 잘 믿어보자니까 교인들도 부담을 느꼈을 법 하죠. 하나님을 질투한 나머지 니느웨 가지 않으려다 3일 물고기 뱃속에 갇혔다고 하니 예배당은 물고기 뱃속처럼 고요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 No Pain No Gain! 인생의 봄날을 맞이하기 위해, 아니아니 인생의 포로기를 끝내기 위해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해방사(解放史)로 설교를 갈음하셨고 우리는 목사님의 축복 기도를 받아 예배를 마쳤습니다.

와우, 해방과 성장. 그렇죠! 포로기 이스라엘은 종교적 성장을 거듭했죠. 오늘 본 이사야서도 그렇죠. 근데 교회를 나오며 물음이 생겼습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노예였던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