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셀라 시론] 유랑하는 너의 삶에게 보내는 찬사

누군간 삶이 이렇다고 훈수나 둘지는 몰라도 네가 쿠팡에서 일하든 기실 해외로 떠났어도 거센 파고 너의 계절 온몸으로 살아내니 고고한 너의 삶에게 경의를 담아 찬사를
2024년 03월 18일

 선교단체 인터콥에서 인턴 간사로 일하다 그만두고 쿠팡에서 알바 뛴다는 녀석의 안부를 들었다. 녀석에겐 미안하지만 ‘저 허영심 언제쯤 끝나려나’ 지켜본 게 전부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녀석의 삶과 꿈은 양립 불가능했다. 몸을 혹사하면서 꿈을 이룬다 한들 딱히 나아지는 것도 없다. 그저 공동체 일원에게 인정받는 것 하나? 하느님에게 열심히 충성했다는 자긍심 정도? 혹여나 선교사가 되어 해외로 나간다 해도 몸 어느 한 기관은 망가지고 말았을 것이다. 좁디좁은 쪽방, 하루 수면 4시간, 월 50만원도 채 되지 않는 급여에 ‘그럴 거면 서울대라도 가지’ 혀만 끌끌 찼다.

이 신문 지면에 인터콥 비판 사설과 기사를 실었던 내가 친구 따라 임이스마엘 선교사 보러 집회에 간 게 레전드였다. 1시간 모임인 줄 알았으나 장정 3시간 예배에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가 이 새끼는 아는 게 뭐가 있나’ 싶은 생각에 화가 치밀었지만 언젠간 집회라도 한 번 가주겠다던 약속을 저버릴 순 없었다. 지부 사람들과 정답게 마주하며 이 녀석 좀 잘 봐달라고 인사도 했건만 네 달도 채 되지 않아 관뒀다는 말에 조금은 허무했다. 녀석도 초반엔 초점을 열정에만 맞춘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배울 게 있으니까, 하나라도 배울 수 있다는 부푼 희망에 몸을 던진 것이다. 매일 매일 깨져가는 자신을 보면서 녀석은 조금씩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름만 부르면 알만한 남자의 운전사로 일하다가 고되게 혼이 났다고 한다. 스케줄을 꿰지 못했다는 호통에 기막히고 어이없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마치 인턴에게 무리한 일을 시키고도 이 험악한 데를 견뎌낼 수 있는지 묻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백지장 같은 얼굴로 나타난 녀석을 데리고 한강을 거닐었고 “나도 회사에 처음 들어와 1년 동안은 편집실장에게 무참히 박살나야 했다”는 되도 않는 위안을 건네기도 했다. 효창동에서 짜장면 한 그릇 먹고 헤어졌다.

그렇다면 내 삶은 내가 계획한대로 이루었느냐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해야 옳다. 언제나 계획은 어그러졌고 거듭 미래를 수립하면 어김없이 새로운 사건과 만남이 어제의 나를 오늘의 나에게로 이끌어주었다. 8년 전 오늘이 그랬다. 내 세계의 전부였던 새능력이란 이름의 교회를 탈퇴한 첫걸음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목사에게 훈련 받고 교인들에겐 인정받으며 대충 구원 받았다는 안도감 속에서 살았다면 속 편했을지 모르겠다. 허나 신앙에는 똑 부러진 정답이란 없다는 말처럼 인생도, 삶도 이렇다 할 종착지란 있을 수 없다는 걸 교회 나올 무렵 깨달았다. 따라서 교회를 나오고도 매순간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를 따져 물어야 했다. 때로는 부끄러운 선택에 이불을 뻥 차곤 했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한 번의 선택이 궁지로 몰아세우기도 했다. 그저 모든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다보니 오늘의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내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

내 모든 선택이 옳다는 자만(自慢)이 아니다. 언제나 내 선택을 존중하는 자애(自愛) 덕분이었다. 나 자신을 사랑한다 한들 불안이 해소되는 건 아니었다. 모든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통해 울렁이는 파고에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걸 견디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완전히 계획 없이 사는 것은 아니다. 삶의 계절을 온몸으로 지각한다고나 할까. 정확히 몇 월 며칠에 패딩과 코트를 벗는 삶이 아니라 적당히 따뜻해졌으니 이에 맞는 옷을 입는 지각 능력 말이다. 생각은 옳다고 판단하지만 온몸이 아니라 말할 때가 있다. 이 부조화를 조화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나를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사람들은 인생에 알 수 없는 미지의 시공간을 앞두고 한 마디씩 훈수를 둔다. 대충 이 나이 땐 이렇게 살아야 하고, 어느 정돈 돈은 모아야 하고. 안 그래도 거센 파고가 더욱 매섭게 보이는 것도 다 허영심에 가득 차 헛소리하는 인간들 때문이다. 중위소득별 급여 수준은 칼 같이 따져 물으면서도 내 존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돈이라는 물질이 나를 보호해주는 것 같으면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부조화 속에서 혼란한 감정을 느낀다. 내 삶에 대해 진지한 물음,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은 울렁이는 이 혼란한 감정을 추스르게 만든다.

어느 날 녀석은 자신이 없어선지 푸념 섞인 말을 내뱉었다. “나 방황하고 있는 것 같아.” 열차에선 괴괴한 소리만이 감돌았다. 침묵을 깨고 내가 이렇게 답했다. “방랑처럼 보이는 걸. 유랑이라고도 하는. 이쪽 섬도 가보는 거고 저쪽 섬도 가보는 삶 말야.” 누구처럼 울컥한 마음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광주로 내려가던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하여튼 그리 위안을 건넸다. 허나 녀석이 몸 쓰는 일에 혹사하는 삶을 살아도 동정심 따위는 조금도 들지 않았다. 녀석의 삶에는 어디에서 무얼 하든 언제나 응원하게 만드는 애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부심은 내보이지 않더라도 자신만이 살아갈 그 삶을 사랑하고 있었다. 자신만이 걸을 수 있는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인생에게 해코지 하나 못한 이유였다.

그러나 나는 정작 내 삶을 돌아보지 못했다. 울컥해서 퇴사를 결정한 것도 업보로 돌아온 것 같았다. 부끄럽고 무서웠다. 1년 전, 퇴사하며 점심을 사준 기자님에게 연락했다. 약속은 지키고 싶었다. “일 년 전, 점심 대접해주시면서 언젠가 저도 이 회사를 그만두면 점심 대접해드리겠다던 약속이 떠올랐습니다.” 그도 여전히 유랑하고 있었다. 1년 만에 만난 그 얼굴에서 근심과 절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여행을 다니며 자신의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에겐 각자의 시간표가 존재한다. 이를 지각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자신뿐이다. 때론 지나치거나 뒤처질지라도 가는 방향, 온몸으로 느낀다면 보이지 않던 길도 서서히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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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은 요지경②] 밤 11시, 새벽까지 이어지는 철학 공부 ‘완벽한 주경야독’

밤 11시. 오늘 근무의 문을 연다. 첫째, 전 근무자에게 인사를 한다. 둘째, 편의점 조끼를 입은 후 계산대에 간다. 셋째, 전 근무자에게 하루 있었던 일들을 인계받는다. 마지막, 시시콜콜 노가리를 까다가 전 근무자의 퇴근에 맞춰 인사드린다. 그렇게 시작되는 온전한 나의 시간. 자정까지는 고객 수가 꽤 있는 편이다. 5분에 한 명, 아니 1분에 한 명을 마주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 뉴스를 청취한다. 종편에서 지상파까지, 듣고 싶은 기사들을 훑다 보면 방문하는 고객은 뜸해진다. 자정을 넘기면 혼자만의 시간이 열린다. 나는 자리에 앉아 신문을 읽는다. 문자 그대로 본격적으로 읽는다. 오늘 자 신문 톱기사를 중심으로 사회의 다양한 사건 사고들과 정치권 현안, 경제계 상황을 살핀다. 오피니언이라 해서 대충 읽는 법이 없다. 꼼꼼히 읽으며 사설의 방향을 가늠한다. 신문을 읽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가져온 책을 읽기 시작한다. 특히 서양철학사는 내게 고대 철학을 가르쳐 준 선생님이다. 다 읽은 건 아니다. 중세쯤에 덮어뒀으니 말이다. 철학자 한병철의 피로사회도 인상 깊게 읽었다. 때로는 편의점 곳곳을 돌아다니며 흥분한 채 낭독하기도 했다. 시간을 어림잡아보면 대충 새벽 3시쯤 된다. 피곤할 틈이 없다. 청소 시간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음악을 틀어 놓고 먼지를 털어낸다. 빗자루로 먼지를 쓸고 막대 걸레로 바닥을 닦는다. 섬세하고 꼼꼼하게 청소한다. 그러면 땀이 흐른다. 더운 여름, 에어컨? 단 한 시간만 틀었다. 일주일 다섯 번, 계속되는 반복 업무에 지겨워질 때면 나는 마음으로 다짐했다. 이 순간, 이 근무. 머지않아 끝나리라고. 1년만 단 1년만 버텼다가 퇴직금을 받으면 여행을 떠나자고 마음에 새긴 것이다. 두 달만 쉬면 어떨지 상상했다. 떠난다면 어디를 가볼까.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다시 힘을 주어 바닥 박박 문질렀다. 청소를 마치면 새벽 4시부터 다시 공부에 돌입한다. 말이 공부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시간이다. 덮어뒀던 책을 읽기도 했고, 노트북을 가져와 편집을 하기도 했다. 이 신문, 자유의새노래를 조판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다시 손님들이 이곳 편의점의 문을 열었다. 어느 날 나는, 동이 터오는 하늘을 바라본 일이 있었다. 붉게 물든 작열의 수채화 풍경 앞에 넋을 잃었다. ‘퇴근이 머지않았구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언제까지 출근해야 할지 모르는 아르바이트의 삶, 편돌이의 시간. 나는 후회 없이 하루를 상실하게 살았다. 하루하루 탑을 쌓아가는 삶 말이다. 지금의 내가 일을 할 때면 버틸 수 있는 노동 근력도 이 시절 다져 놓은 바탕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에게 소중했던 단 하나뿐인 청년의 시간, 완벽한 주경야독의 시간들. 퇴근 시간은 아침 7시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편의점을 나섰다.

[고마운 이름들⑦] 그분은요, 버려진 꽃에게조차 예쁘다 하신 그런 분이셨어요

조전혁 씨가 유포한 ‘전교조 명단’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당시 감정이 이 신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생님이 전교조 조합원이었다니”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무렵, 나는 조선일보를 읽기 시작했다. 정치 성향과 역사관은 보수, 그러니까 우파에 맞춰질 운명이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하면서 어떻게 경선 투표 결과를 조작할 수 있는지 말문이 막혔다. 애국가 제창을 거부하는 이들의 모습이 무척 낯설게 다가왔다. 이 와중에 전교조 명단은 나의 애국심에 불을 지폈다. 당시 신문은 기록한다. “이번 사태는 전교조가 종북좌파이자 이적단체로까지 보는 시각이 있기 때문에 일파만파로 퍼질 것으로 보인다” 나를 가르치던 꽤 많은 선생님이 전교조 소속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실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전교조 선생님들은 지금의 2030 남자들이 느낀 이미지와는 달랐다. 왜곡된 정치 이념, 치우친 역사관, 개똥 철학을 가르치던 모습과는

[작품 해설] 너에게 맞설 수 있는 치트키: “문소혜, 너와 연결된 이 신문을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야”

이야기는 매화고등학교 학보사 이른아침매화 사회부 기자 최문정의 회상으로 시작한다. 신문은 문정에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창구다. 소셜 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 메신저가 아니라 신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제된 단어와 깔끔한 문체, 함축하여 전달하는 정보력을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과거라는 방식의 학보사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문정의 삶 저변에는 신문이 자리한다. 문정의 확고부동한 성향이 사실 관계를 집요하게 파헤쳐야 할 기자 체질에는 맞았다.(4단43줄) 때로는 신문의 존립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고개도 숙일 줄 알았던 편집국장 문소혜와 달랐다. 조판 과정에서 친해진 선배는 진정 기자라는 타이틀을 몸소 가르쳐주었다.(3,36) 소혜는 선배처럼 심지 굳은 최문정 캐릭터를 말랑말랑한 이미지로 풀어내려 했다. 문정은 그 사이를 ‘동반자 같은 우리 사이’로 느낀다.(6,3) 신문은 문정과 소혜를 하나로 연결해주었고 서로가 서로의 업무에 충실할수록 매듭지어져갔다. 어디까지나 신문이라는 공동체가 존재할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학교 본부는 의도적으로 문정을 배제했다. 학교 이익과 배치되는 기사들을 신문에 싣지 못하도록 가로 막은 것이다.(5,32) 학교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소혜도 알고 있었다. 학보가 학교에게 흠집 내는 기사를 가만 놔둘 리 없으리라 판단했다. 소혜는 학보 주간 교사 마음대로 데려온 새 기자를 지켜만 보아야 했다. 문정도 반발하지 못했다. 신문은 더 이상 교내에 어떠한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매체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학내 신문 열독률은 영향력이 전무한 수준이다.(3,7) 도리어 자칭 독자로 등장한 사람들은 신문을 자신의 커리어에 이용할 뿐이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이제는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문정은 난관을 돌파할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학보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숨죽이고 쓰라는 글만 쓰며 졸업을 맞이할지. 불안하고 외롭지만 어른들에게 맞서야 할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문정에게 가장 쉬운 길은 원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면 될 뿐이다. 맞서는 순간 맞서야 할 방법과 전략까지 문정 스스로가 세워야 했다. 여기서 어른들의 문법을 발견한다. 권력을 쥔 누구라도 적으로 등장한 이라면 숨통을 완전히 쥐어야 한다는 것.(5,48; 9,22) 앞에서는 문정을 몰아붙이면서도 뒤에서는 나긋하게 말하는 주간도 그 중 하나다. 기자 최문정을 완전히 죽여 버리면 새 인력을 보강해야 하니 적절히 타협하는 차원에서 내 편으로 만드는 전형적인 어른들의 문법을 발견한 것이다. 먹고 사는 일이 누군가의 피눈물보다 중요하다는 게 문정에게 무슨 소용일까. 어쩌면 소혜도 그 문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문정이 소혜의 편에 서 있으니 편집국장으로서 방패도 되어주고 뒷바라지도 해주지만 그 그늘에서 벗어난다면 돌변할지도 모를 일이다. 두려운 마음은 이 시점에서 곰팡이처럼 퍼져간다. 학보사를 벗어나면 문정은 누구 하나 지켜줄 수 없는 낙오자의 세계로 발 딛는 꼴이다. 홀로 남은 상황으로 압박하는 어른들의 계략을 문정이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신문과 연결된 사람들은 학보사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 밤, 기숙사 한편에서 남자애와 키스하던 순간. 문정은 잠 못 이루는 감정을 느꼈다. 말했어야 했던. 가슴앓이로 눈물로써 지새우던 지난날의 셀 수 없는 밤이 지나고 용기를 내어 입술을 마주쳤다. 존재하지 않는 줄로 알았던 또 하나의 독자, 그 남자애와 다시금 연결될 때 설레는 감정이 추동력이 되어 문정을 알지 못하는 세계로 데리고 간다. 신문은 학생 독자에게 완벽하게 버림받은 매체다. 더는 신문으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 에스크가 일상의 질문으로 정보를 주고받고, 인스타그램 중심의 인플루언서 여론은 밈이 되어 젊은이들을 감싸 안는다. 굳이 정보로 정리되지 않아도 될,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정보들이 사회를 움직인다. 신문이란 구시대 문법이 파고들 여력이 없다. 문정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문의 문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 문제로 부각되는 신자유주의 흐름을 누구라도 포착하지만, 누구라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7,65) 은연중에 소외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지만, 어느 누구하나 이를 지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정제된 단어와 깔끔한 문체는 영상 언어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현상들을 간결하게 내보일 수 있기에 신문의 문법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따라서 문정은 결심한다. 소혜가 쓴 사설을 뒤엎고, 자신이 써내려간 글로 몰래 바꿔다 끼워 넣는다. 신문의 문법은 오늘의 정보가 내일에서야 독자에게 가 닿는 방식으로 구성한다.(7,34) 내일이면 소혜가 마주할 문정의 글에는 무엇이 적혔을까.
Today소랑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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