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완21 누군가의 죽음이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음’에서 찾아오는 게 아니라 완벽히 비어‘있음’을 느낄 때 비로소 슬픔으로 다가오듯 “왜?”라는 질문으로도 풀리지 않는 질문 앞에 섰을 때 무기력을 느낀다. 지금은 고인인 정신과 전문의 임세원 교수는 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에서 왜(Why?) 대신 어떻게(How)로 물을 것을 제안한다. ‘어떻게’는 ‘왜’와 달리 절망적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도록 돕기 때문이다. 청소년 문학소설 ‘열여덟 너의 존재감’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온다. 오랜 밤, 부모의 격한 싸움에 지쳐버린 여고생 이지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스스로에게 다정한 말을 건넨다. ‘지금 당장, 교복부터 갈아입자. 옷 갈아입고 일단 자자’(161쪽 3줄) 피할 수 있었고 막을 수 있는 인재에 화가 난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계속 ‘왜’를 물으며 책임 소재를 묻기 급급하다. 지금도 커뮤니티 댓글 자체를 보지 않는다... 2024. 11. 7. 23:09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