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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교회

나우[now] [내 맘대로 교회 탐방] 경동교회 주보는 이렇습니다 입력 : 2019. 09. 09 | 수정 : 2019. 09. 11 | B7 오르가니스트의 아름다운 연주로 시작하는 경동교회 주일예배는 독특할 어떠한 건 없었다. 예배는 오전 11시 30분 정각이 시작했고 찬송가 67장을 부르며 첫 순서 ‘모임’이 진행됐다. 예배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모임’과 ‘말씀’ ‘보냄’. 예배 인도자인 목사와 교인이 복음서와 서신서를 교독하면 성가대가 송영(頌榮)을 부르고, 응답송을 교인이 부른다. 응답송의 경우 찬송가가 아닌 경동교회가 자체 집대성한 ‘경동찬송’을 부른다. 그 중엔 테제 찬송(찬양하여라)도 포함해 낯익은 풍경을 경험했다. 교인이 침묵의 기도로 한 주간의 죄를 고백하면 목사는 용서를 선언한다. 경동교회 예배 순서 두 번째 순서인 ‘말씀’에선 구약의 말씀과.. 2019. 9. 12. 10:20 더보기
나우[now] [내 맘대로 교회 탐방] 1945년 12월 2일, 이곳에 「경동교회」가 섰습니다② 입력 : 2019. 09. 08 | 수정 : 2019. 09. 11 | B7 11시 정각을 훨씬 넘은 시각. 붐비지도, 시끌벅적 않은 불편한 상황에 주보(週報)도 바삐 나눠주지 않았다. 이제 막 도착하자 조용히 건네받은 주보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부끄러울 만큼 고요했다. 한국의 진보적 교회로 유명한 경동교회는 해방 직후 일본 천리교(天理敎) 건물을 인수해 30여 명 어린이와 학생들이 첫 예배를 드리며 시작했다. 재밌게도 영락교회와 성남, 경동. 세 교회는 1945년 12월 2일 창립일이 동일하다. 적산불하(敵産拂下), 일본인 부동산이 교회로 넘어간 덕이다. 주일 2부 예배를 마치고 나서 은은하게 비추인 노출 콘크리트 벽면을 바라봤다.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해주는 동굴 같은 분위기였다. 경동교회 .. 2019. 9. 12. 10:03 더보기
나우[now] [내 맘대로 교회 탐방] 1945년 12월 2일, 이곳에 「경동교회」가 섰습니다① 입력 : 2019. 09.09 | 수정 : 2019. 09. 11 | B1 조영남이 교회 옥상에서 공연을 펼치자 한국교회는 발칵 뒤집혔다. 동아일보는 1970년 9월 16일자 기사에서 “인기 가수의 팝송을 곁들인 새로운 예배 형식을 시도하여 일반 교역자나 많은 청소년 신도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며 기존 교회의 저항과 젊은이들의 관심을 보도했다. ‘京東敎會 새 形式의 파문’. 경동교회는 파격적 교회였고 강원용 목사는 과감한 성직자였다. 따라서 틀에 매이지 않았다. 교회는 곧장 두 의견으로 갈라졌다. 박자도 느리고 재미없는 찬송가 대신 팝송을 도입하자는 입장과 과연 바꾼다고 될 문제인가 회의적 시각이 충돌했다. 50년이 지난 현재 드럼과 기타 없는 교회는 없다. 옥상교회 위 조영남 파격적 교회 행보 보이자.. 2019. 9. 12. 10:00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