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안 된다는 거다] 모세가 오경을 안 썼다고 하더라도

2020년 01월 05일

카페 한 복판에 싸움이 벌어졌다. 아담과 하와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따져댔고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았다며 날이 섰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그 구절로 오류를 가릴 순 없다고 받아쳤다.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지 믿음의 눈이 아닌 세상의 관점에서 읽으면 안 된다고 했다. 신천지도 성경으로 성경을 푸는데 걔들 논리하고 뭐가 다르냐고 반박했다. “걔들은 이단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하는 거니까!”

오늘 처음 방문한 빽다방을 다시는 방문하지 못할 것 같다.

학부시절 4년을 함께한 대풍이가 물었다. “어쩌다 니 신앙이 이렇게 됐냐”고. 생각해보면 성경을 읽기 시작한 중학생 때부터 그래왔다. ‘하모니’란 정체불명 단체에서 성경을 묵상할 때도. 성서 본문의 배경과 인물, 사건 중심으로 저자가 무얼 말하려는지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풍이에게 의도는 아니라 해도 적어도 역사적 배경, 인물, 사건을 중심으로 읽어야 하지 않냐고 물었다.

◇오경, 모세가 쓰지 않았을지도
꽤 오랜 시간 오경을 모세가 집필한 책이라 믿었다. 나도, 인류도. 일단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다(여호1,7-8; 1열왕2,3; 2열왕14,6; 23,21; 23,25; 2역대8,13; 34,14; 35,12; 에스3,2; 6,18; 느헤8,1;13,1). 예수님과 신약도 모세저작설을 전제했다(마태8,4; 19,8; 누가2,22; 16,29; 16,31; 요한5,46; 7,19-23; 사도3,22; 로마10,5; 10,19; 1고린9,9; 히브7,14).

필로와 요세푸스도, 탈무드조차 모세 임종 땐 여호수아가 펜을 들었을 거라고 추정했다. 종교개혁 시기에도 오경의 권위에 집중했지, 정작 누가 집필했는지 질문하지 않았다. 교회도 하지 못한 그 질문을 세상이 먼저 꺼냈다.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는 『리바이어던』에서 모세저작설에 의문을 제기하고 스피노자(Spinoza)는 1670년 신학-정치론(Tractatus Theologico-Politicus)에서 네 가지를 지적한다. ▶오경이 모세를 3인칭으로 기술한 점. ▶모세의 죽음을 기술 ▶후대의 이름을 사용 ▶야곱과 요셉 이야기의 비일관성. 서로 다른 두 자료로 결합했을 가능성을 언급한다. 홉스처럼 에스라가 오경을 최종적으로 편집했다고 주장했다.

◇문서가설-단편가설-보충가설 등장
프랑스 의사 장 아스트뤽(Astruc)이 용감하게 모세저작설을 ‘지난 세기의 질병’으로 묘사하며 지적한다. ‘문서가설’의 탄생이다. 아스트뤽은 인간 창조와 사라가 이방 왕에게 넘겨진 사건이 두 번이나 반복된 점에서 의문을 가졌다. 복음서처럼 두 개의 긴 자료와 짧은 자료, 총 네 개의 자료로 배열했다고 봤다. 후대에 이 자료를 조합하며 반복과 비일관성을 갖춘 현재 본문에 이르게 됐다는 주장이다.

가톨릭 신학자 게데스(Geddes)가 모세 시대나 그 이전에 유래한 단편들의 편집으로 반박했다. 단편 가설이었다. 따라서 완성 시기를 솔로몬 시대인 기원전 10세기로 추측한다. 파터(Vater)도 게데스처럼 단편 가설을 지지했다. 보충 가설도 등장했다. 잠언 1,1처럼 ‘이것은 ~의 잠언이다’로 시작한 걸로 보아 원래 오경은 짧은 작품이 여러 시대 후대의 저자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하고 상상한 것이다. 오경을 계속해서 개정하며 본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을 거라고 추정했다.

◇J-E-D-P 전성시대
벨하우젠(Wellhausen)은 성서를 유심히 살피다 네 개의 자료로 분류했다. 주로 신명(神名)에 따라 J자료(Jehovah)와 E자료(Elohim)를. 율법에 관한 일련의 설교를 다룬 D자료(Deuteronomy). 제사장이 관심을 가졌을 만한 문제인 P자료(Pristly).

ⓒ위키백과

신명과 문체에 따라 성서를 네 자료로 조각낸 것이다. 드라이버(S. R. Driver)도 그러했다. 제사장이 다뤘다고 추측하는 P자료의 언어는 역사가보다 법률가의 언어라고 말이다. 벨하우젠과 드라이버는 연구를 통해 오경이 후대의 자료임을 주장했다. 벨하우젠은 『고대 이스라엘 역사 서언』(Prolegomena to the History of Israel·1878)에서 이스라엘 종교 발전 과정을 다섯 가지 영역으로 관찰해 결론을 내렸다. 초기 이스라엘은 제사에 질서가 없었고 규례도 단순했지만 점차 관료제와 법이 세밀하게 발전하며 엄격한 준수를 요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따라서 P자료는 후대의 편집된 문헌이라 일관되게 주장했다.

벨하우젠의 문서가설은 개신교회와 일반대학에 널리 받아들여졌다.

무너지는 모세저작설
계몽주의 시대의 새 물음,
“오경 저자가 모세라고?”
물음에서 비평하기 시작

문서가설의 시작
오경의 네 문헌, JEDP 분석
아스트뤽, 반복과 비일관성
벨하우젠, 신명과 문체 비교

합의가 힘든 이유
성서 원본이 없을 뿐 아니라
문체로 완벽하게 구분 못해
완벽한 문서로 보기엔 무리

그럼에도 여전히 창세기의 족장 시대와 언약 법전에서 초기 이스라엘 초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믿은 학자가 등장했다. 알프레흐트 알트(Albrecht Alt)와 그의 제자 노트(Noth), 폰 라트(Rad)였다. 알트는 자신의 논문 ‘The God of the Fathers’(1929)에서 창세기의 반 유목적인 족장 종교를 통해 그들이 살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을 제시했다. 사례법(case low: 만약 ~하면)과 절대법(apodictic law: 너는 ~하지 말라)을 구분해 이스라엘 법 초기 형태도 가늠했다. 문서가설이 주장한 것만큼 오경이 허구는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제자들은 오경의 초기 형태와 최종 형태 사이의 연속성을 증명하려고 했다.

올브라이트(W. F. Albright)와 스파이저(E. A. Speiser), 고든(C. H. Gordon)은 창세기가 고대 서아시아 자료와 비교하며 비록 오경이 후대에 기록됐지만 역사적 정확성은 확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세기에 이르러 학자들은 최종 편집된 오경과 실제 발생한 사건들 사이에 연속성을 가진다고 합의했다.

◇조각낸 문서가설 너머 통일의 강조
하지만 문서가설에 치명적 한계가 있다. J와 E자료를 명확히 뗄 수 없다는 점이다. 요셉 이야기 사이에 등장한 창세기 38장은 어색했지만 이제는 뗄 수 없는 한 부분이 되고 말았다. 문서가설은 성경을 조각조각 갈라냈지만 이후 통일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등장했다. JE처럼 자료를 혼합했거나 J자료의 확장으로 볼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이 무렵 학계는 정경비평의 영향을 받았다.

화이브레이(Whybray)는 두 가지 이유로 문서가설을 지적한다. ▶문서가설이야 말로 논리적이지 않고 자기 모순적이다: 문서가설의 전제는 오경 형성 당시 자료도 반복이나 모순을 담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면 후대 작가들은 최종 편집된 오경처럼 반복과 모순을 용인하는가. ▶반복과 문체 비교보다 더 좋은 설명이 가능하다: 다른 종교적 본문에서도 신의 이름을 다양하게 제시한다. 유독 창세기만 신명의 변화를 자료의 변화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신명의 변화를 문학적 장치로 이해하는 학자도 있다(알터(Alter), 스텐버그(Sternberg)). 문서가설보다 오경의 통일성을 강조한 화이브레이는 단편가설을 인정하며 편집자가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 오경을 형성했다고 추정했다.

70년대 미국 학계에서 창세기와 기원전 2000년의 고대 서아시아 본문들이 서로 유사하기 때문에 창세기 이야기가 오랜 시간에 걸쳐 전승됐다고 합의했다. 반 시터즈(Seters)는 이 유사성이 과장됐다고 지적한다. 급진적인 주장을 펼친 반 시터즈는 보충 가설을 이용해 수세기에 걸쳐 기원전 300년 무렵에 오경이 완성됐다고 주장한다. 렌토르프(Rendtorff)도 시터즈처럼 보충 가설로 오랜 기간 자료의 누적 끝에 현재의 오경 형태로 편집될 가능성을 추론한다.

◇합의 없는 오경: 포로기 이전인가 이후인가
그렇다면 오경은 포로기 후기에 편집된 문헌일까? 벨하우젠에 의하면 P자료는 포로기 이후에 등장한 문헌이다. 비평적 유대학자인 카우프만(Kaufmann)은 P자료를 포로기 이전 문헌으로 봤다. 벨하우젠은 농경 풍습에 뿌리 내린 자연스럽고 즉흥적 제사 분위기에서 제사장 주도로 발전한 조직적 체계로 발전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카우프만은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처럼 고대 동양 문화에는 정해진 시간, 복잡한 규정, 제사장이 주관한 조직화된 제사 체계를 통해 연대를 증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밀그롬(Milgrom)은 에스겔서를 통해 반론을 이어간다. 포로기 이후의 문체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다. 유대 학자들은 느헤미아 시대의 두 번째 성전 의식이 레위기와 민수기 규정과 큰 차이를 발견하며 P자료 역시 포로기 이전 문헌으로 추측한다. 이처럼 고든 웬함(Wenham)은 시터즈 이후 학계가 점차 P자료를 포로기 이후로 볼지, 이전으로 볼지 의견이 양극단에 몰린다고 지적한다.

지금도 구약 학자들은 오경의 기원을 연구하며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성서 원본이 없을 뿐 아니라 신명, 문체에 따라 JEDP로 완벽하게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오경은 모세가 기록한 완벽한 하느님의 문서로 봐서는 곤란하다. 문서가설로 성서를 비평한다 해도 신 존재가 부정되지도 않는다. 성례전(聖禮典) 중심의 가톨릭교회와 달리 ‘오직 성서(sola scriptura)’를 구호로 삼은 개신교회라면 성서무오라는 미신에서 멀어져야 하지 않을까.

구구절절 말해줘도 대풍이는 이렇게 답했다. “평지에서 설교하다가 산에 올라가서도 설교했겠지!(누가6,17)” 아이고, 성경이 잘못했네, 성경이 잘못했어!

자유의 새노래

자유의새노래

정론직필의 자유·시대성의 창달·주체자의 기록

답글 남기기

Previous Story

10년 전의 편지

Next Story

“정여진 先生님,,, 音樂을 들으며 기운내고 있읍니다”

Latest from 개신교

“신약만 읽으면 되지, 굳이 구약도 봐야 하나” 그래서 교회는 구속사에 주목한다

같은 신명기 문헌 안에서 연좌제 허용·불허 왜 일까 수많은 사람 손 거친 결과 기독교라 부르는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는 구약과 신약을 경전으로 인정한다. 가톨릭은 더 나아가 제2경전이라 부르는 ‘토빗기’ ‘바룩서’ ‘집회서’ ‘마카베오서’ 등도 경전으로 받아들인다. 기본적으로 구약은 고대 이스라엘을 다룬다. 어려운 구약을 굳이 공부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명확하게 예수의 생애와 죽음, 부활, 재림을 말하는 신약만 공부하면 되지 않을까 묻는 이들도 있다. 신약성경 중 복음서를 읽다보면 각주에서 구약성경 주소를 볼 수 있다. 신약성경 구절이 구약과 연결된다는 의미다. 마태7,23에서 각주는 시편6,8을 가리킨다. 마태복음서에서 예수가 시편 구절을 인용해 설교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복음서 외에도 바울 서신이나 일반 서신에서도 구약 인용을 볼 수 있다. “마음이 한껏 부푼 교만한 자를 보아라. 그는 정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하박2,4) “하나님의 의가 복음 속에 나타납니다. 이 일은 오로지 믿음에 근거하여 일어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로마1,17) 하박국과 로마서 본문을 정독하다보면 바울 사도가 하박국 구절을 인용하며 재해석함을 알 수 있다. 하박국서 내용은 ‘왜 하나님을 믿는 백성은 힘들게 살며 믿지 않는 이방인은 승승장구하느냐’는 물음(1,2-4)에 야훼 하나님이 “정한 때가 올 때까지 기다려라”(2,3)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4)며 믿고 기다릴 것을 독려한다. 그러나 바울은 하박국의 의도대로 인용하지 않는다. 단순히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말하려함이 아니다. 유대인에게 향한 구원이 이방인에게까지 전해지면서 바울은 “복음이 부끄럽지 않다”는 맥락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라” 권면한 것이다. 리처드 헤이스(Richard B Hays)는 ‘바울서신에 나타난 구약의 반향’에서 구약의 메시지를 문자 그대로 인용한 것이 아니라 바울이 살던 상황에 맞게 재해석한 것을 지적한다. 따라서 연구자 조주희도 논문(어거스틴, 칼빈과의 비교를 통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구속사적 성경해석에 관한 연구, 2015)에서 칼빈은 구약의 역할에 대해 구약성경을 해석하기 위해 신약성경을 지침서로 활용한 점을 가리켰다. 예수 그리스도 역할을 구약 본문으로 인용하는 해석 방법은 가톨릭이나 개신교나 비슷하다. 단지 가톨릭 교부 전통과 루터의 해석 방식, 칼빈의 해석 방식 등으로 세분화되어 차이를 만들 뿐이다. 개신교회는 이를 ‘구속사’라고 부른다. 유대교는 신약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으므로 구속사 관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신약은 구약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신약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구약도 필요하다. 신약과 구약을 떼어 한 경전만을 중요하게 생각해서도 곤란하다. 그래서 가톨릭과 일부 교회가 성경 읽을 때 구약과 복음서, 서신서 세 군데를 모두 읽는 게 아닐까. 누가 구속사적 해석 방식을 시작했는지 모른다. 성경 형성 과정을 보면 이해 가능하다. 구약은 얌니아 회의(기원후 90년)를 통해 확정되었으며 신약은 카르타고 공의회(기원후 397년)에 이르러서야 정경 과정을 마무리한다. 예수가 죽고 300년가량 지나서야 신약조차 정경으로 완성되어 지금에 이르렀고 구약은 말할 것 없이 원본을 확보할 시간과 여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오늘의 성경으로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사라지고 추가된 문헌 자리는 오늘 우리의 성경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없음’ 구절 속에는 성경 형성 과정이 응축되어 있다. 다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누구의 손에 의해 지금에 이르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할 뿐이다. 신명5,9에서는 연좌제를 허용하지만 신명24,16에는 연좌제를 부정하는 성경 내용상 불일치를 설명하지 못한다. 같은 신명기 문헌 속에서 불일치가 나오는 이유는 성경이 다양한 사람들의 손에 의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약성경으로 모든 신약성경을 재해석할 수는 없다. 마태2,23에서 나사렛 사람이라 부를 것이라 예언한 구약 문헌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잘한 성경 속 오류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성경을 완벽히 해석할 수 없다. 이쯤 되면 ‘구속사’ 용어 자체가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 가톨릭도 예수의 죽음, 부활, 재림으로 이어지는 예수로부터 시작될 해방을 믿는다. 자기가 해석한 성경이 더 구속사 관점이고, 더 예수 중심이라는 미사여구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는 완벽한 해석이란 없다.

[미망이의 신학 서재] “호오, 의외네요.” 非전공자가 쓴 성경 통독서라니…

“호오, 의외네요.” 만화 드래곤볼에서 악당 프리더는 예상 못할 만큼 강해진 주인공 일행에 놀란다. “호오 전투력이 상승하는군요.” 한 페이지 펼치자 엇비슷한 입버릇이 나왔다. 저자가 신학이나 종교학 전공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공자 아닌 사람이 성경 가르치는 책을 쓰다니. 그렇다고 전공자만 써야 한다는 편견에서 느낀 당혹감은 아니었다. 전공자도 어려워하는 성서에 관한 글쓰기를 일반 신자가 감당했다는 사실에서 의외라고 생각했다. 의외는 이어졌다. 본문 초반부터 다른 성경통독 서적에서 다루지 않는 성서 번역의 역사를 다룬다. 보통 신학을 모르는 일반 신자들은 성경에 과도한 신성을 부여한다. 따라서 신의 가르침과 의미를 성경이라는 문자로 가두어 또 다른 우상을 만드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 책은 다르다. “우리는 ‘신이 메시지를 준 대상이 고대인이었다’는 것을 반드시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 읽을 때는 현대 뉴턴적 세계관으로 해석하고 분석하는데 정력을 소비하는 것보다 고대인들이 어떤 역사적 경험을 했으며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32쪽) 기독교인 다수가 가진 성경에 대한 생각에 도전장 내밀며 포문을 연 것이다. 신학교에선 저자의 주장은 너무도 당연하다.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저자가 집필했다니. 흥미롭고 재미있다. 미망이의 평점가독성│★★★내용│★☆☆소장가치│★★☆보너스점수│★☆☆총점│7점 평점 기준가독성① 한 번에 읽기 쉬움 3점② 두 번 읽어야 이해가 됨 2점③ 세 번 읽어야 이해할 수 있을 경우 1점④ 세 번 읽어도 어려운 경우 0점 내용① 독서 후 다른 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함 3점 (다른 곳에 적용 가능성)② 단순한 새로운 정보의 습득 2점 (다른 곳에 적용 가능성이 없음)③ 새로운 정보 없이 기존 정보를 재편집 했을 경우 1점④ 텍스트 오류 발견 시 0점 소장가치① 평생을 두고 함께 갈 텍스트 3점② ①의 경우에는 해당 되지 않지만 지인에게 한번은 추천할 텍스트 2점③ 도서관에서 빌려볼 만한 책 1점④ 안 봐도 그만인 텍스트 0점 보너스 점수저자에 대한 호의감이나 감동 외에 기타 점수 1점 ◇내용은 쉽지만 구약의 존재를 묻게 만드는 구성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학자들이 그간 써놓은 내용을 정리했다”(머리말) 전체적으로 괜찮은 입문서로 보인다. 중간사 몇몇 부분을 제외하면 성경 기본 지식이 없는 사람도 충분히 읽을 정도로 쉽다. 하지만 ‘좋은’이 아니라 ‘괜찮은’으로 평가한 이유는 두 가지 문제 때문이다.

순복음 신앙의 별이 지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원로목사 靈山 조용기… 85세 일기로 逝去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가 85세 일기로 서거했다.(2021.09.14) 지난해 7월 뇌출혈로 쓰러져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입원 치료를 받았다. 지난 2월 부인인 고(故) 김성혜 한세대 총장 장례식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조 목사는 2020년 7월 19일 ‘예수님과 강도’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으나 생방송이 아닌 녹화 방송으로 보이는 영상물로 설교를 대체한 바 있다. 안경을 쓰지 않은 채로 오른쪽 눈을 감고 설교하고서 뇌출혈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세계 최대 교회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설립한 조용기 목사는 해방 이후 서울 서대문구 대조동에서 1958년 5월18일 5명의 교인으로 개척했다. 1961년 천막 성전에서 서대문성전으로, 1969년 여의도 부지에 지금의 여의도 순복음교회 건물을 세웠고 1979년 교인 10만명을 돌파해 기념 예배를 드렸다. 1984년 ‘순복음중앙교회’에서 ‘여의도 순복음교회’로 개명했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8년 담임목사 직에서 은퇴한 조 목사는 원로목사로 취임했고 2020년 7월까지 주일4부예배에서 설교를 진행했다. 제2대 담임목사로 취임한 이영훈 목사가 뒤를 잇고 있다. 조용기 목사는 평소에 복음성가를 작사했다. 아내

조용기 목사 서거에 한국교회 이어진 哀悼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 서거에 한국 보수교회는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교회총연합은 ‘고 조용기 목사님의 한국교회장에 즈음하여’ 성명을 통해 “산업화 시대, 실향민이 서울로 집중되는 변화의 시기에 십자가 복음을 통한 삶의 변화와 긍정적 삶의 가치를 가르치며 모든 국민에게 희망으로 세상을 이길 용기를 갖게 했다”며 “어려운 이웃을 돌보기 위해 NGO 선한사람들 설립과 헌혈 운동 등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며 한국교회를 위한 큰 족적을 남겼다”며 애도했다. 한국교회연합은 ‘조용기 목사님의 소천을 애도합니다’ 성명에서 “지금도 까랑까랑한 음성으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3요한
Today소랑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Go to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