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음] 장미라는 빛을 잃었다 외

2022년 07월 10일

트위치 스트리머로 활동한 인터넷 방송인 잼미(본명 조장미·27·사진)가 숨진 채 발견됐다. 잼미의 트위치 커뮤니티 게시판에 ‘안녕하세요. 잼미 삼촌입니다’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잼미 아이디로 접속한 삼촌은 “그동안 경황이 없어 알려드리지 못했다. 장미는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며 사망 소식을 전했다.

글을 통해 삼촌은 “장미는 그동안 수많은 악플들과 루머 때문에 우울증을 심각하게 앓았었고, 그것이 원인이 됐다”고 밝혔으며 “잼미가 유서를 남겼다”면서 “그 글을 통해 평소 잼미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괴롭힘을 당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더는 전혀 말도 안 되는 루머는 생산하지 말아달라”고 밝혔다.

잼미는 2019년 트위치에서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다. 게임으로 팬들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방송을 해 온 것이다. 트위치와 유튜브 각각 16만 명, 13만 명 구독자를 보유했다. 그러나 잼미는 2019년 남성혐오 제스처를 취했다는 이유로 누리꾼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사과를 했음에도 특정 유튜버들이 잼미를 공격하면서 온라인 상에서도 성희롱 댓글과 악성 댓글이 달렸다.

불특정 다수 공격이 이어지자 잼미 어머니가 죽음을 선택했고 잼미도 방송 중단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몇 개월 공백 기간을 두면서 짧은 방송을 이어간 잼미는 2022년 1월 24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됐다. 잼미 삼촌은 앞선 글에서 “부디 장미가 편히 쉴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바란다”며 “장미는 그 어떤 마약도 한 적도 없고 래퍼와도 연관되지 않았다”면서 마지막까지 해명과 당부가 이어졌다.

평소에도 잼미는 극단적 사고를 반대했다. 2021년 4월 “나는 절대 페미가 아니다. 페미도 싫고 그런 쪽에 빠져있는 것들도 너무 싫다”고 해명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다수의 커뮤니티에서 잼미를 비난하거나 인신공격하는 댓글, 게시물이 이어져 한국 사회의 불건전한 인터넷 환경이 주목받았다.

더 나아가 타인의 죽음을 조롱하고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특정 인터넷 방송인 역시 부각 됐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갈등을 증폭시키면서 자극적인 다툼을 재생산하는데 한국의 정치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여성의 위기이자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발언한 것 외 문제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김성광 대한민국 개신교 목회자로 최자실 목사 2남 1녀 중 차남. 강남순복음십자가교회와 강남금식기도원 설립. 2022년 1월14일. 향년 74세

김용복 대한민국 개신교 목회자. 1세대 민중신학자로서 교회 일치인 에큐메니컬 원로. 한국YMCA 생명평화센터 고문, 한국목회학박사원 원장 등을 지내며 민중신학 형성에 기여. 2022년 4월7일. 향년 84세

김인혁 대한민국 배구선수. 진주동명고-경남과기대를 거쳐 2017-2018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3순위로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에 지명되어 프로 경력을 시작. 2019~2020시즌에 32경기, 120세트에 출전하여 공격성공률 49.20%로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2020-2021시즌 삼성화재로 트레이드. 모든 아픔 내려놓고 고이 떠나소서. 2022년 2월4일. 향년 26세

김정주 넥슨 그룹 NXC 대표 이사. 대한민국 게임업계 1세대 선구자. 2022년 2월27일. 향년 54세

김지하 민주주의를 ‘타는 목마름으로’ 집필한 대한민국 시인. 2022년 5월 8일. 향년 81세. 발인은 11일 아침 9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송해 음악 경연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 진행자로 희극 배우, 방송인이자 대한민국 최고령 가수. 95세 고인이 되기까지 현역으로 활동. 34년 동안 진행자로 활동하는 강인함과 먼저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며 아버지로서 모습을 보인 영화 ‘송해 1927’을 통해 국민들은 한국사의 거친 파고를 가늠. 2022년 6월8일. 향년 95세. 발인은 10일 서울대병원

이어령 대한민국 문학평론가, 언론인, 저술가, 대학 교수, 초대 문화부 장관 역임. ‘벽을 넘어서’ 1988년 서울 올림픽 표어와 개회식에서 굴렁쇠 소년 등 인상적인 연출을 선보여. 언어를 흥미로운 시각으로 연결해 대중에게 통찰력을 선사해 준 할아버지. 마지막 말하려던 메시지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2022년 2월26일 오후 1시 30분. 향년 88세. 발인은 2일 아침 10시

이외수 대한민국 작가. ‘장외인간’ ‘괴물’ ‘풀꽃 술잔 나비’ ‘감성사전’ 등 문학작품 발표. 2022년 4월25일. 향년 75세. 발인은 29일 아침 7시30분 춘천안식원

조장미 대한민국 트위치 스트리머. 남성잡지 맥심 표지 모델로 발탁되어 아름다움을 보여준 인터넷 방송인. 모든 아픔 내려놓고 고이 떠나소서. 2022년 1월24일. 향년 27세

최창환 삶의 철학자 최시규 아버지, 2022년 3월2일 오전 3시. 발인 3일 오후 1시 청주 목련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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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쏘, 할 말 있어④] 뭘 물어봐야 하는지도 모르는 회사, 영포티에게서 “도망쳐!”

면접 때 잘 봤어. 그 새끼 싸가지 없더라. 그럴 거면 뭐 하러 면접관 타이틀 달고 앉아 있었대? 지 할 일이나 할 것이지. 잘 됐어. 그런 회사 가봐야 별 의미 없었을 거야. 마지막까지 예의를 갖추고 “회사의 번영을 기원합니다” 인사했던 거, 잘 했어. 너도 잠시 면접관 노릇 좀 해봐서 알 거야. 무얼 질문해야 할지를 모르는 인간은 면접에 참여할 자격조차 없다는 사실 말이야. 뭘 물어봐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면접을 보라는 거야. 그렇지? 처음 떨리는 마음, 직접 손으로 공고를 올리던 긴장된 너의 숨결, 너의 손길, 기억할 거야. 무엇부터 물어봐야 할지, 떠오르는 질문들을 쏟아내고 ‘이건 물어봐야 해’ ‘이건 묻지 말아야 해’ 고민하던 순간들. 밀려오는 면접자를 대하던 너의 숙고를 생각하면 그날 그 회사의 면접은 이미 꽝이야. 기억나니. ‘이 분은 이 회사에 적합하지 않아’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말이야. 능력은 출중한데 이런 험한 데 와서 고생하지 않았으면 했을 지원자들 말이야. 마음속으로 ‘지원자들 모셔두고 배워보자’고 생각나게 만든 능력자들 말이야. 네가 떨어진 이유도 똑같아. 능력이 출중하니까, 머리 잘 굴러가니까, 금방 뛰쳐나갈 거란 것도 알았을 거야. 그러니 공고에도 없는 ‘행사 보조’ ‘전화 응대’ 같은 단어로 에둘러 지껄였겠지. 그것도 면접장에서. 그래서 그 놈 회사는 꽝이라는 거야. 난 말야. 회사 선임에게 된통 당하며 혹독하게 살아왔던 그 분이 가장 기억에 남더라. 동변상련이라 해야 할까. 규모가 있는 회사일 수록 분업화가 잘 돼 있잖아. 전문적일수록 디테일함에 몸서리치기도 했고. 오자(誤字) 하나에 광분하는 선임을 보면 볼수록 때론 두려움을, 때론 자책이 들기도 했겠지. 그렇지만 그 혹독한 시간들을 보냈기에 지금의 섬세한 네가 다듬어졌잖아. 그렇게 하나 둘, 성장하는 거겠지. 그분의 눈망울에는 아직도 그 선임이 존경하는 자리에 서 있는 걸 느꼈어. 섬세하고 예리하다 못해 예민해서 갈구고 또 갈구는, 그러나 그 손길이 없었다면 결코 몸에 익힐 수 없었던 실무 경험 말이야. 그런 회사를 가야 하는 거 아니겠니. 일하면서 빼먹을 게 있는 곳, 혼은 나지만 존경심이 드는 곳, 지치지만 배울 수 있는 곳. 무력감이 아니라 성장통을 느낄 수 있는 곳. 하긴, 그런 회사가 아니라서 귀한 시간 내 가지고 온 면접자에게 그따위 질문이나 던지는 거겠지. ‘한 놈만 걸려라’ 심보로 말이야. 가운데 앉아 가지고 좌장처럼 보이고는 싶었는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공고에도 없는) 이 일들, 감당할 수 있겠냐”고 묻는 놈 밑에서 뭘 배우겠니. 갈 데 없는 건 똑같은 처지에다, 나이만 열 다섯살 더 많아 이직은 꿈도 꾸지 못할 텐데. 나이 좀 많다고 깝죽대는 게 전부인 놈이 말이야. 잘 됐어. 어차피 됐어도 안 갔을 거잖아. 주제도 모르고 콧대만 높은 것들, 넘치는 노동 인구의 수혜를 받는 한심한

[열여덟, 이런 고3이라 됴아④] 세상을 바꾸는 건, 뜨거운 정의심과 압도적인 문장들이 아냐

잡지를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네가 만들려던 그 잡지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포기하길 잘했어. 원래 잡지를 만든다는 건 혼자서 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야. 유명한 잡지들을 봐. 그 잡지 한 호를 만들기 위해 매달리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더라. 사진 보정과 편집조차 익숙하지 않은 네가 잡지를 만든다는 건 어쩌면 욕심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뭔가를 말하고는 싶은데, 말할 방법이 없어서 편집 디자인에 기대는 너의 부푼 마음 말이야. 나도 그게 뭔지는 알 거 같아.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 잡지를 만드는 일은 단순히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 정도는 아니야.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를 기획해야 하고, 어떤 제목으로 독자들을 후킹 할 수 있는지, 사진은 또 저렴한 스마트폰이 아닌 미러리스 같은 전문 카메라로 찍어야 하는 고급 기술이야. 글자를 조제(調劑) 하는 일도 그래. 하고 싶은 말을 나열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거지. 고등학교 1학년 때 기억해? 담임 선생님이 써오라던 독후감, 일부러 단락도 구분하지 않은 채 3000자, 5000자 한 무더기로 써 냈던 거. 마음이 고운 선생님이라서 그랬지, 나였으면 가차 없이 다시 쓰라며 까버렸을 거야. 선생님이 홀로 자리에 앉아 네가 쓴 그 거대한 문장들을 다섯, 여섯 줄로 요약하느라 진땀 뺀 모습도 기억할 거야. 그땐 챗지피티(chatGPT)도 없던 시절인데 말이야. 선생님이 고생 좀 하셨지. 이제 사람들은 손바닥만 한 글을 겨우 읽는 시대에 살고 있어. 손바닥이 뭐니, 손톱만 한 글도 읽지 않는 논 텍스트(non-text) 시대야. 그러나 글과 문장이 필요 없어졌다는 건 아니야. 왜냐하면 인간은 글과 문장으로 의사를 소통하기 때문이야. 글을 읽으려 하지 않는 시대에, 오히려 글을 정제된 손길로 다듬고 또 다듬는 강인함이 필요하다는 걸 나는 말하고 싶어. 네가 듣기에 참 미안한 말이지만, 앞으로도 네가 만들려던 지면신문 오래도록 실패할 거야. 그러나 포기하지는 말아 줘. 그 신문이 너의 멱살을 잡고 삶의 자리를 이끌어갈 테니까. 너의 그 신문에 사람들이 호응하지 않더라도 신문을 만들어 글을 다듬고 다듬는 일에는 지치지 말아 줘. 미래의 내가 과거의 네 글을 보면서 살아갈 힘을 얻을 테니 말이야. 지금의 난 두 학생의 서로 다른 갈림길을 관찰하고 있어. 두 녀석을 보니 네가 떠오르더라. 신념에 가득한 딱딱한 문체, 옳고

[상황설명] 기어코 무르익은 ‘소년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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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맞서야 했던 초기교회”… 완벽한 정답 대신 방향 찾아 헤매야 했다

한 달 만에 완판… 성서의 형성 과정을 다룬 ‘마침내 성경’ 염진호 전도사는 6년 전 이 신문 인터뷰에서 ‘신 죽음의 시대’를 논했다. 서울 압구정에 있는 대형교회에서 일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떠나는 교인들을 보며 좋은 길을 가도록 응원하고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교회에 남은 이들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에는 ‘파수꾼’ 이 한 단어가 남아 있었다. 그는 그들을 이렇게 회상했다. “교회 역사와 전통을 사랑하는 이들.” 염진호 전도사침례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감리교신학대학교 목회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해 강릉중앙감리교회 간사를 시작으로 청수감리교회, 광림교회 교육전도사를 거쳐 현재는 강릉샘물교회에서 신앙과 삶을 나누고 있다. 그동안 개신교는 달라진 게 없었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2025년 발표한 ‘한국사회의 다층적 위기’ 인식조사에서 개신교의 신뢰도는 일반 시민의 27%로 나타났다. 이는 개신교 인구로도 나타난다. 2025년 총회 기준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과 합동의 인구는 2015년에 비해 각각 21%(59만8183명), 16%(45만8133명) 감소했다. 10년 만에 100만명이 줄어든 것이다. 염 전도사의 제언은 냉정했다. “우리가 성서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되돌아보는 전환점을 가져야 한다.” 손에는 두 달 전 출판한 책 ‘마침내 성경’이 들려 있었다. ― 무엇을 말하려고 이 책을 썼는가.
Today소랑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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