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논단] “올 것이 왔다”

2018년 04월 11일

이제는 체념했기 때문일까. “올 게 왔다”는 마음뿐이다. 지난 10일, JTBC 뉴스룸에서 이재록 목사의 성폭행 의혹을 보도했다(2018. 4. 10).

   경찰은 이재록 씨를 출국금지 조치했고, 피해자들 진술을 확보해 수사 중이다. JTBC는 피해자 진술을 중심으로 보도했다. 피해자 중 한 명은 20대 초반에 이재록 목사가 성폭행했다고 진술했고, JTBC는 이재록 씨가 무려 30년 전부터 여러 명을 성폭행 해왔다고 보도했다. 30년이란 기간이라면,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제명당한 시기(1990)와 비슷하다.

   결코 ‘목사’ 이재록이 중간에 타락했다거나 변질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30년 전부터 가르쳐온 교리에 의하면 그러하다. 이재록 씨를 비롯한 만민중앙교회가 가지고 있는 천국의 개념은 일반 개신교회와 ‘상당히’ 다르다. 이들의 천국은 ‘목자의 성’이며 목자의 성 본체 안 2층과 3층 사이에 개인 성(城)이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이 영안을 열어주셨다고, 3D로 만든 목자의 성은 으리으리하다. 성서에도 없는 ‘개인 성’이란 개념을 도입해 교인들을 현혹했다. 아예 ‘목자의 성’이란 노래를 작사, 작곡해 부를 정도면 말 다한 셈이다. 유독 만민중앙교회는 당회장 이 씨 신격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과하다’, ‘너무하다’도 아닌 ‘심각한 수준’이다. 아이돌 담론에서만 볼 수 있는 ‘굿즈(가수 이미지가 들어간 물건)’를 교회에서 본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나.

   만민중앙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앙은 이재록 씨 중심으로 이뤄져있다. 이재록 씨가 영의 세계를 보면 이를 중심으로 설교를 하고 교인들은 그 설교에 “아멘”하는 구조다. 이재록 씨의 안수를 받고 천국과 지옥을 구경하는 정도이니, 만민중앙교회가 영의 세계를 강조하는데엔 이 씨의 강한 리더십에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이재록 氏 성폭행 의혹 구체적이고 일관적이다
20년 전부터 교리 문제 보통 개신교회와 달라
목사 중심으로 권력 在 현실 회피하는 교인들

 

   예배 실황을 보면, 찬송을 부르는 와중에 이 씨의 사진이 방영되는가 하면 ‘눈’에 관한 노래를 부르면 강아지와 뛰어 노는 영상이 재생된다. 실제 예배 시간에도 방영한다면 충격적인 일이다. 북한에서 할 법한 방송 기법을 도입했다는 이야기다. 설령 예배 생방송 도중에 재생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잘 알지 않은가, 성서 어디에도 이들이 믿는 천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톰 라이트는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의 나라’에서 인간의 사후에 관심을 가지는 행위를 강조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을 ‘통한’ 구원에 초점을 맞춘다. 재림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교인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대개 사후 세계에서 누릴 복락이거나 극단적 세계를 회피하는 자세다.

   지옥을 강조하고 심판을 중세시대 모습과 다르지 않게 강렬한 이미지로 그리는 이들 특징은 단순하다. ‘지금, 여기’를 회피하는 자세다. 세상은 천국도, 지옥도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지구일 뿐이다. 이곳을 지옥으로 그려낼 필요도, 천국으로 미화할 필요도 없다. 현실을 보려는 자세가 결여되어 있다.

   교회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아닐 거라 믿는 게 아닌가. 1999년, MBC PD수첩은 ‘이단파문 이재록 목사, 목자님 우리 목자님’을 보도한 바 있다. 법원은 방영 전 날, 이재록의 성문제 등 사생활을 보도하지 말 것을 판결했다. 재판부는 “성추문 부분은 증거와 증언이 모순되고 일관성이 없으며 객관적 소명자료가 부족하여 성추문을 믿기 어렵고 방송시 큰 피해가 발생할 염려가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터진 성문제는 다르다. 일관성 있으며 구체적이기까지 하다. 목사를 견제할 구조도, 근거도, 의심도 없었다. 단지 목사를 믿었을 뿐이다.

   지금 교회는 아니나 다를까, 1999년 5월 1일, MBC 습격 사건과 다르지 않은 양태를 보이고 있다. 오히려 JTBC를 상대로 보도 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냈다. 법원이 금지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만큼, 추이를 지켜보아야 한다. 오늘 JTBC가 이 씨 성추문을 또, 추가 보도할 것임을 밝혔다. 전말에 관하여서 언론을 통해 사회 단면을 보아야 한다. 교회 내 한 사람이 권력을 가지고 행사한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교회 내에 가난하지 않은 자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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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논단] 최문정, 널 마감하고서

학부 4학년 때 일이다. 뒤늦게 확인한 페이스북 메시지엔 “학보사 문제로 뵐 수 있을까요?” 묻는 선배의 한 마디만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선배라 지인 선배에게 이미 전달 받고 확인한 부탁이었다. 정중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학보사는 생활관장과 정치적 싸움을 이어가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신문은 정치적인 매체이자 일상과 동떨어진 종이일 뿐이었다. 정치적인 싸움은 165호에서 출발한다. 침신대학보는 지면신문 뿐 아니라 홈페이지 ‘학보사’ 카테고리 속 PDF를 통해서도 학교 안 소식을 전달한다. 유독 165호가 올라오지 않았다. 보통 한 학기에 한 두 호 정도는 발행해 왔거늘. 편집국장에게 물었다. 홈페이지에 올릴 수 없다는 이유로 한글 파일을 건네 받았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영부영 완성된 느낌적 느낌이 싸했다. 학교에서 재정 지원은 없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지만 묻지 않았다. 복학하자 학보사를 둘러싼 소문을 접했다. 사람들은 ‘오탈자 하나 잡아 내지 못하는’ ‘예의없고 싸가지 없는’ ‘반성경적이면서 진보적인’ 집단으로 함축했다. 학보사에 들어가려던 내 결정도 접어야 했다. 사람들이 흘려 낸 정보들 때문이 아니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진학이 앞섰기 때문이다. 지인들은 “네가 학보사 들어가지 않아서 다행이야” “정치적으로 이용 당했을지도 몰라” 그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꼬박꼬박 읽었다. 어떻게 만들었을지 궁금했지만서도 어떤 내용으로 만들었을지가 궁금했다. 종합 일간지는 정치적 의도와 목적으로 만든다. 학보도 그런 정치성이 보일지 궁금했다. 진보적인 신문은 아니었다. 당연히 박근혜는 탄핵되어야 했다. 기독교 인이라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예수의 가르침 대로 가난한 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들도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과 무관하게 당연했다. 창조설에도 여러 이론이 있기 마련이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성서 구절로 창조설이 진리라던 문장을 보면 확실히 진보적인 신문은 아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를 위시해 음모론을 말하던 박성업에 관해서는 비판했다. 대법원 앞 거대하게 탑 쌓아가던 사랑의교회를 지적했다. 공동체 정신을 잃어가던 와중에 아나벱티스트에 주목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상화가 요원한 이 학교 총장 직무대행을 꼭두각시로 보이도록 곰돌이 인형을 만평으로 풍자했다. 총학생회장은 정기총회에서 공개적으로 교수의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교수들 중 한 사람이 친인척을 학교 이사로 꽂은 상황이라 말을 꺼냈고 방학 기간 틈 타 징계 당할 뻔 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학교 문제에 말을 아꼈다. 대자보라도 내야 할 상황에도 침묵했다. 법원이 직무집행정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자 비품을 아껴 쓰라는 말만 돌았다. 공론장 잃은 사람들은 우왕좌왕했다. 교수들 알력 다툼만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무엇이 문제인지 누가 잘못했는지 물어볼 질문은 많았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정치적 일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런 학보의 인쇄 자금을 끊은 건 학교 당국이었다. 아래아 한글판 165호도 배곯던 상황에서 만들어졌다. 학보사에서 일할 학우 구하는 일이 상당히 어렵다고 들었다. 나를 영입하려던 부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기사를 쓴다는 건 취재하는 일이고 취재 지시를 받은 다음 일이다. 누군가는 지면 신문을 기획해야 한다. 누군가는 백지 위에 기사를 배치해야 한다. 누군가는 오탈자를 확인해야 한다. 그래픽은 또 누가 만드나. 한 두 사람만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공동체 의식은 나라는 존재가 사회라는, 학교라는 토대 위에서 살아간다는 인식 속에서 피어난다. 하지만 누구도 학교 문제에 나서지 못했다. 용기가 없었을지 모른다. 문제가 어떻게 얽혔는지 풀어낼 자신도 없었을 것이다. 또래 정치 싸움 너머 어른들 다툼에 끼어드는, 분명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어른들이 공론장을 박살 내는 동안 젊은 것들은 무시 당했다. 그런데도 대학원에 들어가려 하다니. 내 아둔한 지각에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본지 문화섹션 나우에서 선보인 단편소설 ‘너에게 맞설 수 있는 치트키’에서 주인공 최문정은 아무도 없는 밤 기숙사에서 남자애와 키스한다. 문정은 잠 못 이루는 감정을 느꼈다. 키스를 그리는 장면에서 상상했다. 만일 선배의 부탁을 받아 들고 학보사에 들어갔다면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루라도 더 빨리 장신대 신학대학원 진학이란 허황된 꿈을 버리지 않았을까. 사람들과 부대끼며 현실의 벽을 조금 더 일찍 마주치지 않았을까. 지면신문 배치마저 인쇄소에 맡기던 “에휴, 자유의새노래 만도 못한 학보구나” 탄식 대신. 기획실장, 아니 편집국장과 싸우며 침신대학보라 쓰고 공론장으로 읽는 희망의 탑을 하나씩 쌓아가지 않았을까. 최문정을 이용해서라도 과거로 돌아가 세상을 바꾸고픈 열망이 샘솟는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 20대 대선을 맞았다. 정치인을 아이돌로 추앙하던 20세기와
Today소랑 2026년 8월 24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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