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논단] 당신의 설교를 듣지 않는 이유

2021년 03월 31일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가 자청한 기자회견에서 황당한 통계인용을 보았다(2021.02.18).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가 발표한 자료를 반박하며 균형 잡힌 보도를 요구한 것이다. 크리스천투데이는 손 씨의 행동을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시하며”라고 보도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중대본이 발표한 종교시설 감염자 비율 17%는 국내 코로나 전체 확진자 중 집단감염 45.5% 안에서 꼽은 데이터를 의미했다. 따라서 전체 확진자 중 종교시설 감염자는 8%에 불과하니 교회는 코로나 최대 감염 경로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코로나는 사람을 통해서 사람으로 감염된다. 세 차례 코로나 파동(wave)을 겪으며 우리는 두 차례 집단감염을 목격했다. 두 차례나 종교집단 통해서 감염되었고, 그 종교집단은 개신교 내 주류에서 벗어났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손현보 씨는 “IM선교단체는 교회가 아닌 학교”라 말했고 “신천지가 이단”이라 표현하며 개신교회와 무관하다는 제스처를 보였다. 지난 달 토론에 참석한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연구기획위원은 대면예배 강행에 초점 맞춘 목회자를 향해서 비판했다. 가톨릭평론 2021년 봄호에 집필한 “언택트 시대 한국개신교” 서론에서 개신교 주류에서 밀려난 신천지·인터콥·소형교회 현상 앞에 퇴행적 종교성을 끄집어 내 지적했다.

어째서 코로나를 맞이한 시점에 대형교회, 그것도 웰빙보수주의 현상에 주목했는지 의문이 들었는데 서론과 토론 장면을 지켜보니 단번에 이해했다. 한국교회 주류로 밀려난 신천지는 강한 부족적 결속력을 가졌고 공동생활 특성상 감염에 취약했다. 세대주의 인터콥도 부족과 이념 성향이 강하고 젊은 층이 많다. 소형교회는 신자 감소로 인해 재정 압박이 크고 협소하며 환기도 되지 않은 폐쇄적 공간이란 점에서 코로나에 취약한 종교 집단들이다. 신학자 김진호의 시선은 90년대 중후반에 가닿았다. 개신교 성장이 둔화하고 저성장하던 시절, 담임목사 카리스마로 성장했던 선발대형교회인 영락·여의도 순복음교회와 다르게 탈권위적 후발대형교회인 사랑의교회와 온누리교회는 교인의 수평이동 현상에 주목했다.

설교를 못할 수도 있다
 강조하며 화내고
마귀의 탓으로 돌리는
그따위 설교만은 말라

대형교회와 중소형교회라는 양극화도 심각한 문제지만, 개교회가 교단적 특성을 보이지 못한 채 단일한 오순절 예배 스타일을 보인다는 점에서 개신교회는 상품으로 전락했다. 김 신학자는 교통수단이 발달한 사회에서 상품처럼 전시된 교회에 자기 입맛에 맞는 교인들이 수평이동하는 현상을 목도한 것이다. 손현보 씨의 세계로교회만해도 그렇다. 한국적 특수한 개신교회 환경 속에서 대면예배라는 오순절 스타일의 열광적인 예배를 고수하는 이유 역시 김 신학자가 지적한 것처럼 노아의 방주를 자처한 작금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연속 기사 쓰려고 몸 담았던 참여교회 목사의 설교를 시청했다. 네 편이나 청취하다 당신의 설교가 달리 들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적어도 교회 안에 붙어살았을 땐 들을만했던 변하지 않은 논조가, 이제는 천박해서 들을 가치도 없음을 느끼고 있었다. 침 튀기며 신앙에서 벗어난 이들을 또 다시 교회 바깥으로 몰아낸다. 교회 나오지 않는 행동을 마귀의 꾀임으로 해석하며 담임목사 당신의 퇴행적 신앙을 반성하지 않는다. 성서 중심으로 주해하고 성경에서 가르치는 교훈을 말하여도 모자란데, 제의와 행위 중심으로 집착하다 못해 제의에서 벗어나면 마귀에게 꼬인다는, 샤머니즘과 다르지 않은 설교를 겨우 청취했다.

언젠가 당신은 “네가 신앙생활 그렇게 하면 너를 놔 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역량에 한계를 느끼자 내뱉은 나름의 충언이다. 고깝게 듣지 않았다. 그게 당신의 수준인걸. 코로나는 백신 맞지 않는 이상, 사람 간 접촉을 줄이는 것만이 답이다. 적어도 교회는 온라인으로 예배에 참여할 수 있다. 대면예배 강요하지 마라. 예수도 자기 이름으로 모인 곳에 있는다고 말했다.(마태18,20) 특정 행위를 하지 않으면 신앙이 유지되지 않는 퇴행적 신앙이야 말로 문제다. 당신의 설교가 마귀사탄과의 전쟁이라는 샤머니즘과 다를 바 없고 당신 자신의 신앙을 강요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마귀 탓이나 하는데 누가 당신의 교회를 가고, 그 설교 온라인으로 듣겠나. “한 번에 훅 빠진” 한때 당신의 교인 중 한 사람이던 나의 충언을 고깝게 듣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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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논단] “변화를 기다리던 때는 이제 지나갔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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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논단] 9월에 떠난 두 목회자를 뒤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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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논단] 최문정, 널 마감하고서

학부 4학년 때 일이다. 뒤늦게 확인한 페이스북 메시지엔 “학보사 문제로 뵐 수 있을까요?” 묻는 선배의 한 마디만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선배라 지인 선배에게 이미 전달 받고 확인한 부탁이었다. 정중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학보사는 생활관장과 정치적 싸움을 이어가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신문은 정치적인 매체이자 일상과 동떨어진 종이일 뿐이었다. 정치적인 싸움은 165호에서 출발한다. 침신대학보는 지면신문 뿐 아니라 홈페이지 ‘학보사’ 카테고리 속 PDF를 통해서도 학교 안 소식을 전달한다. 유독 165호가 올라오지 않았다. 보통 한 학기에 한 두 호 정도는 발행해 왔거늘. 편집국장에게 물었다. 홈페이지에 올릴 수 없다는 이유로 한글 파일을 건네 받았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영부영 완성된 느낌적 느낌이 싸했다. 학교에서 재정 지원은 없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지만 묻지 않았다. 복학하자 학보사를 둘러싼 소문을 접했다. 사람들은 ‘오탈자 하나 잡아 내지 못하는’ ‘예의없고 싸가지 없는’ ‘반성경적이면서 진보적인’ 집단으로 함축했다. 학보사에 들어가려던 내 결정도 접어야 했다. 사람들이 흘려 낸 정보들 때문이 아니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진학이 앞섰기 때문이다. 지인들은 “네가 학보사 들어가지 않아서 다행이야” “정치적으로 이용 당했을지도 몰라” 그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꼬박꼬박 읽었다. 어떻게 만들었을지 궁금했지만서도 어떤 내용으로 만들었을지가 궁금했다. 종합 일간지는 정치적 의도와 목적으로 만든다. 학보도 그런 정치성이 보일지 궁금했다. 진보적인 신문은 아니었다. 당연히 박근혜는 탄핵되어야 했다. 기독교 인이라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예수의 가르침 대로 가난한 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들도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과 무관하게 당연했다. 창조설에도 여러 이론이 있기 마련이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성서 구절로 창조설이 진리라던 문장을 보면 확실히 진보적인 신문은 아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를 위시해 음모론을 말하던 박성업에 관해서는 비판했다. 대법원 앞 거대하게 탑 쌓아가던 사랑의교회를 지적했다. 공동체 정신을 잃어가던 와중에 아나벱티스트에 주목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상화가 요원한 이 학교 총장 직무대행을 꼭두각시로 보이도록 곰돌이 인형을 만평으로 풍자했다. 총학생회장은 정기총회에서 공개적으로 교수의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교수들 중 한 사람이 친인척을 학교 이사로 꽂은 상황이라 말을 꺼냈고 방학 기간 틈 타 징계 당할 뻔 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학교 문제에 말을 아꼈다. 대자보라도 내야 할 상황에도 침묵했다. 법원이 직무집행정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자 비품을 아껴 쓰라는 말만 돌았다. 공론장 잃은 사람들은 우왕좌왕했다. 교수들 알력 다툼만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무엇이 문제인지 누가 잘못했는지 물어볼 질문은 많았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정치적 일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런 학보의 인쇄 자금을 끊은 건 학교 당국이었다. 아래아 한글판 165호도 배곯던 상황에서 만들어졌다. 학보사에서 일할 학우 구하는 일이 상당히 어렵다고 들었다. 나를 영입하려던 부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기사를 쓴다는 건 취재하는 일이고 취재 지시를 받은 다음 일이다. 누군가는 지면 신문을 기획해야 한다. 누군가는 백지 위에 기사를 배치해야 한다. 누군가는 오탈자를 확인해야 한다. 그래픽은 또 누가 만드나. 한 두 사람만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공동체 의식은 나라는 존재가 사회라는, 학교라는 토대 위에서 살아간다는 인식 속에서 피어난다. 하지만 누구도 학교 문제에 나서지 못했다. 용기가 없었을지 모른다. 문제가 어떻게 얽혔는지 풀어낼 자신도 없었을 것이다. 또래 정치 싸움 너머 어른들 다툼에 끼어드는, 분명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어른들이 공론장을 박살 내는 동안 젊은 것들은 무시 당했다. 그런데도 대학원에 들어가려 하다니. 내 아둔한 지각에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본지 문화섹션 나우에서 선보인 단편소설 ‘너에게 맞설 수 있는 치트키’에서 주인공 최문정은 아무도 없는 밤 기숙사에서 남자애와 키스한다. 문정은 잠 못 이루는 감정을 느꼈다. 키스를 그리는 장면에서 상상했다. 만일 선배의 부탁을 받아 들고 학보사에 들어갔다면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루라도 더 빨리 장신대 신학대학원 진학이란 허황된 꿈을 버리지 않았을까. 사람들과 부대끼며 현실의 벽을 조금 더 일찍 마주치지 않았을까. 지면신문 배치마저 인쇄소에 맡기던 “에휴, 자유의새노래 만도 못한 학보구나” 탄식 대신. 기획실장, 아니 편집국장과 싸우며 침신대학보라 쓰고 공론장으로 읽는 희망의 탑을 하나씩 쌓아가지 않았을까. 최문정을 이용해서라도 과거로 돌아가 세상을 바꾸고픈 열망이 샘솟는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 20대 대선을 맞았다. 정치인을 아이돌로 추앙하던 20세기와
Today소랑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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