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셀라 시론] “다 부질없는 일이었는데”

빗나간 예언들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종교에 취하며 잊었던 생명적 가치를 새긴다 “관대하라” 남기셨던 병상 말씀만 남는구나
2020년 07월 04일

10년 전 일이다. 강경한 근본주의 신앙을 견지하던 내 입에서 울려 퍼진 세대주의 종말론 신앙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메시지 그 자체로 요약할 수 있다. 내용인 즉은 곧 전쟁이 임할 테니 모두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는 예언이다. 알다시피 2010년 3월 북한에 의한 천안함 피격 사건과 나라 잃은 슬픔을 기억하려 시청 앞 광장에 10만 명이 넘는 교인들이 강사로 세운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아멘하던 시절이다. 때 마침 미디어의 실체라는 동영상에 심취하며 유럽연합이 정치적으로 통합하면 적그리스도가 출현함으로써 지구상 완전한 종말이 다가오니 휴거를 대비하라를 진지하게 믿었던 때였다.

예언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무슨 이유로 이 같은 메시지를 설파했느냐는 조롱을 받아야 했지만 당시엔 한 번도 틀렸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마태복음 24장 가락으로 짚어가며 “실제 내 눈 앞에 벌어지는 최후 심판의 날 같다”던 열여섯 소년의 메시지에 누나들은 감탄해 마지않았다. “나도 그런 체험이 있었으면” 부러움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10년이 흐르고 지금에선 콧방귀도 뀌지 않을 허무맹랑 극단적 세대주의 종말론이 지금에도 정치와 아이돌, 교육, 종교, 사회 곳곳에 퍼진 것을 보면 10년 전 내 모습이 떠오른다. 특히나 학창 시절 푸르디푸른 어린 소년이 무얼 알겠는가. 정확히 10년이 지나 그 때의 어리석음을 ‘부질없는 짓’으로 정의하며 신앙을 재해석하고 재평가 할 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내 모습을 10년 전의 내 모습과 일치하지 않음에서 충격을 받고 돌아가는 교인들도 부지기수다.

과거와의 단절,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진부한 교훈도 이 지점에서 발견했다. 그렇게 뿔뿔이 흩어진 10년 전 사람들은 기억에서 잊혀졌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진부한 교훈을 도무지 받들기 어려운 사람들은 지금도 태극기를 들거나 카메라를 들고서 앨범을 사간다. 남는 것도 없는 알력다툼 세계로 들어가 자신들의 위대함을 예찬한다. 과거의 영광이 배경에 깔리고 상징폭력과 함께 등장해 이념이란 무기로 존재를 공격해 댄다. “살아야 한다”는 역설적 반 생명 인식이 그림자처럼 드리우는 동안, 민아의 비명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 지켜야 한다는 부질없는 생각들이 인간에게 지닌 삶의 정황(Sitz im Leben)을 파괴했고 살아야 한다는 역설적 반 생명 인식에 잠식되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우연히 마주친 정미홍 전 아나운서 강연을 들으며 새벽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관련 영상에선 한 유튜버의 생방송이 종료된 녹화 본 영상으로 등장했다. 대한애국당 당장(黨葬)으로 마련된 정 씨 빈소로 향하던 발걸음에 유튜버도 포함되었다. 영상물을 뒤로하고 채널 영상을 하나 둘 살펴봤다. 평범해 보이던 이 아저씨는 음악과 사연을 읽으며 보이는 라디오 방송을 이어가던 유튜버였다. 그렇게 노래들이 스쳤다. 임태경이 부른 ‘My Destiny’를 지나 예민의 ‘어느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에 이르자, 무엇이 이 아저씨를 태극기 들게 만들었을까 물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새 정미홍 씨가 단상에 올라와 강연하며 좌파, 우파로 나누던 말씀들이 떠올랐다.

10년이 지나 10년 전의 일들이 부끄러운 학창시절 사건이란 조각들로 절망했던 그 밤처럼 스쳐갔다. 잠시간 잊혔던 기억들이 되살아난 것이다. 당연히 복구하기 어려운 아픔으로 앞으로도 그렇게 잊히기를 바랬다. 하지만 잊지 않음으로 존재하는 기억들이 다시금 재소환되는 이유엔 기억을 기억나게 만드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포팔이는 이 지점에서 등장한다. 이념처럼 단단해진 “살아야 한다”와 “지켜야 한다”는 구호가 뇌를 굳게 만들고, 생각을 중지하게 만든다. 존재를 등한시하고 살아있음을 혐오한다. 타인의 비명이 그 속에서 들려오지 않은 채 녹림청월식 피해서사만이 들어찬 역겨운 광경이 연출되는 것이다. 기억으로 아픔을 호소하는 피해자가 다시 재소환 된 기억 조각들 앞에서 자신을 변론하는 이 현상을 무엇으로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이념 논쟁이란 부질없음에 하나 둘, 집단을 떠난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신의 주체성을 되찾고 있는다. “지켜야 했던” 조국 대신 사랑하는 가족에게 돌아가고, 나에게 집중하다 소외되고 매몰됐던 눈빛들은 하나 둘 해체되자 타자에게 향하고, “살려야 했던” 가치와 이념 대신 생명을 존중하고 혐오를 중단하는 풍경들로 돌아간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처럼. 세상이 아름다운 풍경으로 돌아가리라고 믿으며. 잔상(殘像)으로 남은 죽음의 공포 앞에 오히려 삶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명백한 진리를 품은 채 이념과 가치가 다르지만 정미홍 씨의 마지막 그 말이 새벽녘, 아무 일 없기를 바랬던 마음에 남았다. 물론 그의 “부질없는 일”은 박근혜 석방이라는 이념 자체를 거부했던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태극기 집회를 의미하지 않았으리라 안도하는 이들의 무리를 보며, 다음의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다 부질없는 일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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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셀라 시론] 소녀의 이름으로

나는 이제껏 김용철의 새능력을 왜 더 빨리 탈퇴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괴로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좀 더 빨리 탈교(脫敎) 했다면, 조금 더 빨리 관계를 정리했더라면…. 소년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은 우연히 입수한 18년 전, 한 영상을 보면서 오롯이 해소되었다. 연세중앙교회 YBS 인터뷰에 담긴 소년은 짐짓 말할 수 없는 모든 죄를 짊어진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알고 지은 죄인데 왜 그걸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했는가….” 도대체 중학교 2학년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카메라 앞에 서서 자책하며 스스로를 옥죈단 말인가. 새능력을 탈퇴하고서 나는 단 한 번도 김용철의 설교를 끝까지 들어본 일이 없다. 양심에 찔려서도 아니고 눈물이 감격으로 앞을 가렸기 때문도 아니다. 1시간 설교 모든 문장 옭아맨 감정 동원과 협박 구조, 의미 없는 아멘의 반복, 철학도 신학도 없는 감정만 휘젓는 수준의 처참한 호통은 그의 설교를 들어보면 누구나 깨닫게 된다. 그는 오로지 의식의 흐름에 의지한 채 청중을 감정적으로 끌고 다닐 뿐이다. 각 단락 사이의 논리적 연결은 찾아볼 수 없다. 자기도취에 빠진 간증을 서사로 가져다가 어떻게든 이어 붙이는 게 전부다. 모든 것 공허함의 파도밖에 보이지 않던 시절, 나는 죽을 용기를 가지고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시절 스물 두 살의 나는 미지(未知)의 두려움을 견뎌야 했다. 이제는 지옥에 가는 건가 싶었다. 가족도, 연고도 없이 새능력에 붙잡혀 노동 착취를 당했어도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탈출이 재생되었다. 때로는 방송실 귀퉁이에서 일을 하는 장면이 꿈으로 재생되었고, 어쩔 땐 빠져 나오는 꿈을 꾸기도 했다. 많으면 한 달, 뜸하면 서너 달에 한 번 연속된 꿈은 새능력으로부터의 완전한 탈출을 가리키고 있었다. 과거의 나로부터 찾아오는 ‘시간의 죄책감’이 나를 오랜 시간 사로잡은 것이다. 몸은 난파선을 벗어났지만 아직도 나의 혼은 그곳에 갇혀 있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허물어지는 시간. 탈교는 무너진 영혼 속에서 재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저 어른들이 주입한 죄책감은 남은 인생의 각도를 비틀었다. 어그러진 관념과 여성성에 대한 왜곡된 이해는 긴 시간의 교정이 아니었으면 영구히 손상되었을 것이다. 바로 그 소년이 자신의 입으로 토설한 ‘알고 지은 죄’는 이브가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따먹은 상징이다. 왜곡된 여성 이해의 뿌리는 기독 담론 그 자체다. ‘성숙한 소녀’라는 어른들의 거짓말이 빚어 만든 망상이 소녀의 노동을 착취했고, 소년의 미래를 짓밟은 것이다. 탈교 이후 나는 차근차근 기독 담론을 해체하기 시작했고 비로소 소녀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그 소녀는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천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악과를 먹은 후 야훼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침잠한 것처럼 나는 소녀 앞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되어가는 과정을 순연(純然)하게 바라보듯 과거의 시간을 다시 배열하고 재건하는 소녀의 손길을 말없이 볼 뿐이었다. 소녀는 잃었던 재주, 놓쳤던 이름, 잊혔던 얼굴을 되찾았다. 에덴의 난민, 아담과 이브는 재건의 기회조차 잃었으나 소녀는 신의 질서를 거스르고 마침내 ‘지금 여기(hic et nunc)’의 자리에 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소녀의 일하는 광경 속에서 기록하는 것뿐이었다. ‘기억의 화해’가 시대 담론으로 등장하면서 나는 더 이상 기독교의 언어로는 표현하지 못할 또 다른 층위를 발견했다. 신의 표정으로도 완곡하게나마

[에셀라 시론] 가난 선생님, 이제 울지 마세요

잔나비의 정규 4집 Sound of Music pt.1 수록곡 ‘무지개’에는 비장한 제목이 붙어 있다. ‘모든 소년 소녀들2’. 그 뮤직비디오에서 나는 서글픈 직감에 사로잡혔다. 바닥에 쓰러진 채 날지 못하는, 새의 형상을 한 인간. 그리고 멀찍이서 말끔한 정장을 입은 이들이 언덕 위에 서 있었다. 망원경인지 요지경인지 알 수 없는 쌍안경을 들고, 그들은 하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코 날 수 없는 이의 날갯짓은 외로워 보였다. 정장을 입은 다수의 사람들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그 몸짓은 이룰 수 없는 ‘시궁창에서 별 바라보기’ 같았다. ‘무지개’는 앞선 곡 ‘모든 소년 소녀들 1 : 버드맨’의 연작처럼 들린다. 두 개의 뮤비가 말없이 이어지며 메시지를 완성하는 것이다. 말끔한 교복을 입고 졸업 사진을 찍는 소녀와 소년들. 미래를 약속받은 듯한 모습으로 사회에 나아가는 희망에 찬 장면들. 그러나 제목이 가리키듯, 버드맨은 아기새를 의미한다. 갓날개를 펴고 꿈을 향해 발버둥치는 존재. 그리고 그 꿈은 결국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저 너머의 하늘만 바라보게 되는 운명으로 귀결된다. 이룰 수 없는 꿈, 닿을 수 없는 이상. 버드맨은 그렇게 다수가 되는 법을 배운다. 뮤직비디오를 보고 나는 올해가 가기 전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이 직감을 기록할 수 있다면 언제가 되었든 글로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더욱 글로 남기고 싶은 강렬한 불꽃이 타오른 것은 가난 선생님과 헤어질 무렵이었다. 가난 선생님과 가까워진 건 전임자가 인수인계를 완전히 완수하고 떠난 후였다. 회사에서 영상을 촬영하면 편집한 후 고객들이 볼 수 있도록 홍보 영상을 만드는 게 가난 선생님과 나의 주 업무였다. 때로는 내가 보조로 촬영을 도와드리기도 했고 내가 가난 선생님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얼굴을 마주한 지 3일 만에 통성명을 했다. 가끔은 한국어 이름이 익숙하지 않아선지 내 이름을 잊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가난 선생님은 유능한 통역 업무로 나를 놀라게 했다. 본사 직원이 아닌 대행사 직원임에도 내게도 따뜻하게 대해준 노동자였다. 가난 선생님은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자신의 일처럼 회사를 대했다. 회사 사람들에게도 화사했고, 당찬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하더라도 꿋꿋하게 버티고 견디는 그런 사람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일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무엇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인지 알고 싶었다. 그 노력을 임원들이 알았더라면 좋았겠지만 원체 세상은 무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선한 마음의 가난 선생님은 두 번이나 내 앞에서 눈물을 훔쳐야 했다. 이놈 회사는 당신에게 속상한 대우로 가슴을 아프게 만든 것이다. 어느 날은 축 늘어져 의자에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가난 선생님 옆에서 앉아만 있어야 했다.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고생했어요” “고생 많으셨네요” 뿐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가난 선생님의 아픔과 고통에 함께하는 일뿐이었다. 송구스럽게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진정 그것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원래 나의 퇴사 기사에는 이곳 회사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풀어갈 생각이었다. 사무실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내가 속상했던 순간들, 화가 났던 기억들. 그것들을 남겨 놓기로 마음 먹었었다. 말 없이 문장을 쌓고, 쌓다 보니 이상하게도 사건은 사라졌고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가난 선생님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옆에서 묵묵히 버텨준 다른 통역사 선생님들의 얼굴도 떠올리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일’을 기록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함께 견뎌낸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가난 선생님을 통해 변해가는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것을 나는 보았다. 묵묵히 일하는 자의 항상성(恒常性). 웃음이 났다. 그 항상성은 가벼운 토대가 아닐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변하는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건 사랑, 정의 같은 추상적 가치나 개념 따위만이 아닐 수 있겠구나라고. 이 비참한 사회를 흐름잡고 있는 건 돈의 가치, 힘의 논리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 굵은 권능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을 때 삶의 토대를 이루는 이름 없는 것들이 항상성을 만들 수 있겠구나를 깨달은 것이다. 마침내 원고를 마감하다 한 가지 질문을 떠올렸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공동체성과 과거의 전통, 사랑에 스며든 고귀한 희생 정신을 잃은 채 그저 삶에 치여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린 채 돈에 절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뮤직비디오에서 느낀 서글픈 직감은 내게 청춘을 가리켰다. 사회의 모순을 견뎌야만 하는, 끝내 꿈을 간직한 채 살아내야 하는 방황의

[에셀라 시론] 파수꾼의 마지막 등불

브라우저가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10년 만에 다시 만난 가영이 누나는 달라진 게 하나 없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 날 만난 게 정말 반가워서 웃는 미소는 여전히 행복하게 만들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어서가 아니었다. ‘지금 여기’ 꿋꿋하게 서 있는 당찬 누나의 모습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달라진 외형 하나 있다면 양손 꽉 쥔 두 아이. 이제는 아이 엄마라는 게 믿기지 않을 나이다. 누나를 다시 만난 이유는 단순했다. 누나의 시선에서 바라본 과거의 내 모습이 궁금했다. 솔직히 말해 학창 시절 누나에게 빚진 마음은 둘째였다. 누나는 나와 10년 전 새능력교회를 함께 다닌 교우였다. 어렸을 시절 나의 민낯을 그대로 본 사람인 것이다. 기록가로서 눈망울이 빛나는 이유였다. 누나를 위해 나는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었다. 점심을 대접하는 일과 키즈카페 비용을 내준 일, 누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누나는 예민하고 까다로웠던 나의 학창 시절을 서슴없이 나열했다. “그때는 서운했더라” “그때는 미웠더라” “그때는 마음 아팠더라” 늘 누나에게 상처 준 일은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10년 지나서도 사과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련하고도 좋은 기억으로 남은 고맙기만 한 누나의 기억 속에 나는 ‘죽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사는 고등학생’이었나 보다. 그러다 달라지지 않은 누나의 성정(性情)을 발견했다. 잡초 같은 누나의 강인한 생명력을 발견한 것이다. 누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갑자기 교회를 나오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부모님이 교회를 그만 다니라고 하셨어.” 내가 알던 퍼즐의 조각과 다른 대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누나의 입에서 “목사의 신념이 나와 안 맞아서” “교회 일이 너무 힘들어서”라는 말이 나오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허나 적어도 교회의 착취 시스템, 기독교 교리의 한계 정도는 말할 줄 예상하고 있었다. 착각이었다. 누나의 신앙은 “죽지 않고 살아서”(시편118,17) 강인하고 질긴 그 무언가였다. 누나는 10년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과거의 비밀을 풀어 헤쳤다. 나는 그 비밀 앞에 할 말을 잃었다. 누나의 과거는, 그리고 기억은 송명희 시인의 고백처럼 “비밀이 되어 버린 건축가의 버린 돌”이었다. 오히려 힘겨운 비밀이 견디기 어려운 무거운 짐이 되어 오랜 시간 어깨 위에 지워져 있었다. 따라서 교회의 어려움 따위는 힘든 일도 아닌 것이었다. 욱여쌓임 당해도, 믿음젊음을 착취해도, 교회뼈아픈 과거에도, 신앙꿋꿋한 누나의 신앙과달라지지 않은 미소에‘강인하고 즐긴 생명력’악다구니에 피 토하며 너희 교회에 말하노니“파수꾼의 등불 지키라” 나는 지금도 그날 밤 누나의 한숨, 피로, 적막감을 또렷이 기억한다. 무급으로 교회에서 일하던 시절이었다. 토요일은 일요예배를 위해 아예 교회에서 잠을 잤다. 나는 늘 주보를 밤 10시에 발행했다. 방송실 근무를 마치고 사무실 앞에서 가영이 누나를 마주쳤다. 피곤에 절여 있는, 누가봐도 힘겨움에 고통스러워하는 누나를 보았다. 괜챦느냐고 물었다. 괜찮다고는 했지만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누나의 손에는 목사가 준 일감으로 보이는 용지로 가득했다. 대학 마지막 학기와 취업, 교회생활을 병행해야 했으니 심정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부모님의 교회생활 반대까지 겹칠 때라면 누나는 나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목사의 한 마디는 정말이지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수준이다. “가영이 쟤가 말야, 돈을 좇고 돈 따라가서 문제야.” 목사 따위가 자격증 시험보러 일요예배 빠질 수밖에 없는 청년의 심정을 알기는 아나. 누나는 교회에 충성했다. 문자 그대로다. 온몸으로 교회에 헌신했다. 누나의 삶을 갈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목사는 떼를 쓰기 바빴다. 나를 비롯해 청년들을 가리키며 “쟤네들이 사역하는 거 그냥 다 애들 장난 같아 보여. 내가 일하던 때랑 비교하면 노는 것 같다고.” 그러나 목사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으며 젊은이의 한 번뿐인 청춘을 그대로 갈아 넣었다. 최저시급조차 챙기지 않으며 말이다. 젊은이의 숭고한 정신과 고결한 노동력을 귀한 줄 모르니…. 그래서 예수가 이렇게 말했나보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태,7,6) 그런데도 누나의 기억 속 교회는 착취 구조와 목사의 비정상 신념에 찬 공간이 아니었다. 날마다 놀러 가면 쉴 수 있는 곳, 토요일이면 사람으로 북적대고 반겨주는 곳, 젊은이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행사 준비하느라 생동감 넘치는 곳, 가정과 학교에 치여 갈 곳 없는 나를 받아주는 마지막 등불 같은 곳. 세상 모든 사람이 누나처럼 힘듦을 짊어지고 사는 건 아니다. 애초에 짐의 무게가 다를뿐더러 비교

[에셀라 시론] 유랑하는 너의 삶에게 보내는 찬사

브라우저가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선교단체 인터콥에서 인턴 간사로 일하다 그만두고 쿠팡에서 알바 뛴다는 녀석의 안부를 들었다. 녀석에겐 미안하지만 ‘저 허영심 언제쯤 끝나려나’ 지켜본 게

[에셀라 시론] 잘 지내, 퍼피레드

브라우저가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내가 본 이용수 대표는 넉살스러운 아저씨였다. 운영진들 사이에서 조용히 있다가 말없이 등장해 자기 할 말 풀어내던 지긋한 나이의 포스. 적절히 가벼운 캡 모자 하나가 어울릴 듯한 익살맞은 제스처. 한눈에 봐도 평범한 아저씨로 보였다. “20대를 다 바친 게임” 긍정의 에너지를 바라던 절실한 호소를 폄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퍼피레드M 1차 테스트 때 일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대표와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게임 문 닫기 두 달 전 서버가 닫혀 있더라고요. 서버 운영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그렇죠. 그땐 가끔 들어와서 웹사이트 관리하다 메일 확인하고 그랬죠.” 퍼피레드 개발에 앞서 이 대표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았다. 그 대표적인 논리는 자칭 원작자의 지지층에게서 출발했다. 그가 퍼피레드를 개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상조차 공개되지 않은 불명의 사람이었다. 회사를 운영할 만한 자질도 공개된 바 없었다. 지적재산권(IP)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건지, 게임을 무료로 풀겠다는 건지, 서버를 운영해 관리하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었다. 컬러버스 전신 소울핑거가 퍼피레드를 개발하겠다고 나서자 ‘퍼피레드 같은 게임’이라는 괴이한 이름의 지난한 과정을 돌연 중단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무렵 원작자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나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나는 영문도 몰랐지만 떠나는 이들을 붙잡지 않았다. 이 신문은 당시 어느 쪽도 두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훗날 이 신문이 이 대표를 밀어준 이유는 단순했다. 적어도 퍼피레드가 문 닫기 직전 서버를 운영한 사람이고 마지막까지 서버 종료 소식을 건넨 운영자였기 때문이다. 회사 경영자라는 점에서도 재론의 여지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퍼피레드는 문을 닫았지만 말이다. 얼마나 부활을 바랬으면 불명의 사람 바짓단이라도 붙잡는 걸까 생각했다. 현실은 달랐다. 너무도 가혹했다. 앱 분석 회사 모바일인덱스의 ‘실시간 마켓별 순위’를 보면 퍼피레드가 들어갈 구석이 없다는 걸
Today소랑 2026년 8월 24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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