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타자를 이해함

2017년 12월 31일

엔도 슈사쿠 ‘침묵’이 <기리시탄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로 끝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실은, 엔도가 말하고 싶었던 건 ‘신은 말씀하고 계신다’였다. 후미에를 밟기 직전, 들려온 예수의 음성에 우리는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엔도가 초점을 맞추고 싶었던 건 “나의 지금까지의 인생이 그분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관리인의 일기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지만, 엔도가 말하고자 한 건 관리인 일기를 통해서였다.

관리인의 일기는 ‘조쿠조쿠군쇼루이주’ 안에 있는 ‘사켄요로쿠’에서 발췌한 ‘침묵’의 결말이다. 사교를 조사한 기록인 사켄요로쿠는 기리시탄 주거지를 관리한 가와라 진고베가 남긴 일기다. 엔도는 관리인의 일기를 통해 기치지로에게서 그리스도 상(像, みいませ)이 발견 돼 ‘문초’ 당함을 묘사한다. 살기 위해 신부를 이용했던 기치지로는 더 이상 배신을 이어가지 않는다.

후미에를 밟은 기치지로와 로드리고 신부는 배교했다. 후미에를 밟으며 그의 성흔을 밟았다. 우리는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엔도가 말하고자 한 건, 단지 밟았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후미에를 밟음으로써 남은 발자국의 얼룩을 통해 ‘아픔으로서의 흔적’을 보았다. 페헤이라 신부에게 상처가 남은 것도 그 때문이다.

‘침묵’의 결말

엔도 문학, <침묵>은 ‘기리시탄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로 끝맺어

신은 말씀하고 계신다

후미에 밟은 기치지로, 로드리고로 하고 싶은 말은 “신은 침묵하고 있다”가 아니라 “신은 말씀하고 있다”

지수를 통해 타자 이해를 말하다

엔도 작품에서 ‘흔적’을 아픔으로 이해해… 타자를 이해하는 창으로 승화한다면 핀잔 주지 않아도 돼

엔도에게 흔적이란 신을 볼 수 있는 ‘창’이다. 그리스도를 밟음으로써 발생한 아픔으로서의 흔적을 통해 로드리고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었다. 숨지는 그 날까지, 기리시탄 주거지에 갇혀 지내는 동안 그들은 잊혀졌다.

여기까지 겨우 집필했지만, 여전히 엔도 문학에 흐르는 ‘흔적’을 다 이해할 수 없었다. 최대한 이해하고 있는 바를 정직하게 말하고 싶다. 소설 ‘트와리즈’를 쓰면서도 흔적이 등장한다. 일상적 흔적으로도 표현하고 싶은 ‘흔적’을 통해, 인간과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통로로 표현했다. 엔도가 이 부분까지 염두해 두고 썼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엔도에게서 아이디어를 받아 우리 마음속에 내재하고 있는 아픔, 이 같은 흔적이 무엇이든 간에 타자를 이해할 수 있는 창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것이 인식할 수 없는 신이라고 할지라도, 적어도 인간 대 인간으로 이해하며 보듬어 안아줄 수 있는 통로라고 이해했다.

이 흔적을 굳이 지우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소설 속에 등장하고 있는 서지수를 향한 공격을 통해 계속해서 흔적은 드러나고 있다. 주인공은 극복하려 할 테지만, 나는 그렇게 두고 싶지 않다.

극복할 수 없는 지극히 연약한 인간을, 현실을 그려내고 싶기 때문이다. 흔적을 가진 채 끌어안으며 오히려 타자를 이해할 수 있는 창으로 승화할 수 있다면, 우리는 타자에게 고난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핀잔을 주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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