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으로 세운 공허한 탑… 한 순간 무너져도 괜찮을까:『가짜 진짜 목격담』

되도 않는 처세술이 아니라 생채기의 질감을 느끼는 것 우린 그걸 윤리라 부른다네
2026년 02월 04일

가짜 진짜 목격담
김혜진 지음 | 뜨인돌출판사 | 104쪽 | 1만1000원

아무도 모르게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실이 알려지면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았고, 자기 자신만 인식하는 그런 류의 범죄 말이다. 도둑질의 경우, 물건이 사라지는 물리적인 범죄이고 불륜은 정신을 파괴하는 심리적 범죄라면 아무도 모르게 저지르는 범죄는 괜찮을까.

‘피해가 없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겉으로 보기엔 피해가 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윤리적으로 행위가 어떤 구조를 지향하는지가 중요하다. 어떤 행동이 발각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현실에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해도 관계와 사회, 자기 인격의 질감에 영향이 생긴다. 아무도 모르는 윤리적 진실을 스스로만 알고 있으므로, 그 진실이 자기 내면과 자아를 어떻게 만들어가는지가 핵심 문제가 된다.

다시 말해 피해가 없더라도, 자기 자신에게는 남는다. 법적으로는 피해가 없으면 처벌 대상이 아닐 수 있다. 타인에게도 피해는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반드시 어떤 흔적이 남는다. 흔적은 죄책감일 수도, 자기기만일 수도, 혹은 더 큰 욕망을 허용하는 문틈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잘못은 대부분 자기 자신에게만 남는 상처 형태로 돌아온다. 우리는 그 상처를 어떻게 피해야 하고,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물음을 우리는 ‘윤리’라고 부른다.

거짓말이 그렇다. 중력을 거스르고, 관성과 물리 법칙을 거스르며 자연 법칙을 무시하는 태도 말이다. 누군가를 해할 목적으로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는 거짓말 정도야, 어떻게 해서든 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은 어떤가. 모니터로 연결되는 드라마와 영화 세계는 어떠한가. 없는 말을 지어내 실제로 존재하는 이야기처럼 가꾸는 작품은? 자고 일어나면 사라질 배우와 연예인의 백옥 피부, 이 모든 멋들어진 외양의 마케팅은?

지은이 김혜진은 책을 통해 ‘선의로 만들어진 말’도 하지 말아야 할 거짓말임을 꿰어 묻는다. 그 말이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진다 해도 어긋하게 뒤틀리고, 기어이 타인을 향해 질주하는 왜곡된 질감을 포착한다. 지은이는 거짓말로 쌓은 모래성이 허무하게 스러지는 상처와 물음을 외면하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서도 거짓말을 일삼는 태도를 처세술쯤으로 여기는 인간이 많다. 사회생활의 단면쯤으로 생각했다가 돌아오는 상처의 빚에 절망으로 구르고 또 구른다.

돌이킨다는 것은 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단순히 몸을 뒤틀어 걸음을 옮기는 수준이 아니라 관성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력과는 다르다. 인간의 이성으로 과학 법칙을 거스르는 게 아닌 몸의 흐름, 자연의 질서에서도 좀 잘 살아가는 방식이기에 결코 가볍지 않다. 지은이는 그 윤리를 또렷이 응시한다.
지은이는 말한다. “거짓으로 쌓아 올린 담장이 무너지고, 찢을 듯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그러나 나는 찢기지 않았다. 산산이 흩어지지도 않았다.”

책 사이에는 출판사 뜨인돌이 끼워 놓은 별첨스프(책갈피)가 있다. 출판사 관계자는 본지 서면 질문에서 “본문의 인용 글이 아니고 지은이가 따로 작성한 글”이라며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도움을 얻을만한 글귀를 지은이에게 부탁드려 받았다”고 밝혔다.

자유의 새노래

자유의새노래

정론직필의 자유·시대성의 창달·주체자의 기록

답글 남기기

Previous Story

비공개 기사입니다

Next Story

내 딸이라도 눈 감을 거냐구요?:『킬러 문항 킬러 킬러』

Latest from 도서

신문이 ‘큐레이터’라고? 건방 떨지 마라:『세상을 편집하라』

세상을 편집하라이영훈 외 4명 지음 | 한국편집기자협회 | 179쪽 | 1만8000원 냉정히 말해 신문의 문법은 죽었다. 더는 신문의 문법으로 말하지 않는 시대에 도달했다. 슬로우뉴스나 미디어오늘 정도가 지면신문 파워를 말한다. 아직도 무시할 수 없는 힘이라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어디까지나 종합편성채널과 지면신문 중심의 전달력이란 점에서 1990년대 권능과 비교하면 한없이 초라할 뿐이다. 신문 열독률 지표를 내세우는 것도 지겹다. 결과적으로 신문은 매체로서의 힘을 잃었다. “반면, 인터넷뉴스의 레이아웃은 대부분이 정해진 화면 크기에 간추린 제목과 텍스트만을 나열하고 있다. 뉴스의 경중완급이 확실치 않다. 포털에서 가장 많이 보는 기사는 그날의 중요한 뉴스라기보다는 제목에 낚인 경우이거나 연예인, 스포츠 스타의 소식이 대부분이다.” 과연 그럴까. 조선닷컴은 디지털 뉴스를 다룬다. 지면신문인 조선일보와 발걸음을 함께하는데 때론

“신학의 여정, 기꺼이 돕겠습니다”… 미망이가 드리는 길잡이:『구약, 타나크, 신약 ─ 마침내 성경』

구약, 타나크, 신약 ─ 마침내 성경염진호 지음 | 문장공방 | 164쪽 | 1만1000원 사람들은 성경을 그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경전쯤으로 생각한다. 그러니까 신이 모세에게 불러주는 대로 적었다든지, 급하게 기록물을 모아다가 ‘신의 말씀’으로 편집했다고 보든지 말이다. 분명한 것은 성경이 한순간에, 한곳에서 만들어진 기록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성서는 단순히 역사적 타임라인이나 교리식 공부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주입식 암기 중심의 교리 공부만으로는 구원의 다층적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성서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그것은 하나의 교리로 이해되지 않는다.”(11쪽4단) 성서는 도서관처럼 다양한 장르와 층위의 해석이 공존하는 문헌이다. 따라서 지은이는 ‘성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주목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진화된 성서 성서의 편집 과정을 역사적으로 훑어보면 꽤 유연한 문헌이다. 이슬람의 코란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코란은 성서와 달리 중앙집권적 체계를 통해 편찬되고 유통되어왔다. 따라서 하나의 조직이 단일한 결정으로 경전을 확립할 수 있었다. 성서는 수 세기에 걸쳐 구전과 기록, 편집, 번역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것이다. 구약은 기원전 5세기인 에스라 시대 이후 유대교 공동체 속에서 정립되었고 율법과 예언서, 성문서인 타나크로 확립됐다. 신약은 바울 서신과 복음서가 점차 권위를 얻으며 마르키온 논쟁 등 이단 대응 속에서 4세기 교회 공의회를 통해 27권이 확정됐다. 따라서 지은이는 성서가 코란처럼 ‘창조’되기보다 천천히 ‘진화’됐다는 점에서 공동의 산물로 보고 있다. ◇자유로운 첨삭과 편집의 전통 속에서 태어난 성서 신명기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모세 사후의 기록과 로마서 16장에 나오는 더디오의 첨언을 보면 성서의 후대 수정이 자연스러웠다. 지은이는 오히려 ‘후대의 자유로운 편집’에 주목한다. “성서 시대의 문서 전승은 단순히 학생들이 공부한 내용을 빼곡히 적어 낸 깜지처럼 ‘있는 그대로 글을 옮겨 쓰는 작업’이 아니었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이 시기의 글쓰기에는 후대의 첨삭과 편집이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졌다.”(21,3) 사해사본과 사마리아 오경, 70인역(LXX) 등 다양한 버전이 병존했으며 각 공동체의 신학과 상황이 반영됐다. 바로 이 ‘성서의 변형’이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는 데 방해물이 된다. 성서 곳곳에도 다양한 성서의 문헌이 가져온 “분열된 시대의 현실”(47,5)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성서의 변형은 오히려 성서 시대의 정황을 보여줌으로써 다층적인 전승 구조를 가늠하게 한다. ◇역사적·신학적 논쟁의 산물 ‘정경화 과정’과 성서 복원의 역사

제목에 심어놓은 ‘조선일보의 의도’ 편집자의 윤리를 묻는다:『이런 제목 어때요?』

이런 제목 어때요?최은경 지음 | 루아크 | 232쪽 | 1만7000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만천하에 알려지고 다음 날 조선일보 사설 제목은 단 네 글자였다. ‘부끄럽다’ 조선일보와 박근혜를 분리하고 국민과 조선일보를 이입시키는 유체이탈 화법도 놀라웠지만, 내가 정말 놀란 건 단문이었다. 조선일보는 단 네 글자로 부끄러움을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다. 2012년 3월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 현장 조사 차 방문한 일이 있었다. 공정위 조사관들이 신분을 밝히고 건물에 들어가려 했으나 출입을 50분 동안 가로막았다. 그새 삼성은 관련 자료를 통째로 폐기했고 책상과 서랍장을 바꿔 조사 대상 직원의 컴퓨터를 새것으로 바꿔치기한 게 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다음 날 조선일보 사설 제목은 이랬다. ‘삼성 눈에는 이 나라 법은 법같이 보이지 않는가’ 가끔 조선일보 기사와 사설 제목을 보면 ‘심판자 조선일보’의 우스운 태도가 느껴진다. 조선일보의 제목은 언제나 강렬하지만 그 의도를 들여다보면 권력에 대한 적나라한 태도를 가늠할 수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다음 날 신문은 제각각 1면 제목을 다채롭게 달았다. ‘”어찌 됐든 사과” 140분 맹탕 회견’ ‘고개만 숙였다’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맹탕, 고개만 숙였다고 비판했다. ‘’김건희 의혹’ 부인한 윤, 특검 거부’ 동아일보는 고집부리는 윤석열을 강조했다. ‘아내 처신 머리 숙이고 의혹 앞엔 고개 숙였다’ ‘윤 고개 숙였지만, 의혹엔 고개 저었다’ 국민일보와 한국일보는 대통령의 사과와 의혹에는 고개를 저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조선일보만 달랐다. ‘“저와 아내 처신 올바르지 못해 사과드린다”’ 마치 윤석열이 정중하게 국민 앞에 사과하는 내용으로 제목을 단 것이다. 도대체 의도가 무엇인가.
Today소랑 2026년 6월 28일 일요일
Go to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