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이름으로②] 예고 없이 다가온 ‘신의 죽음’… 그의 대침묵이 이끈 기독 담론의 끝

의미 잃은 신앙과 성서의 오류 모순 보이지 않는 해답 신은 말이 없고…
2025년 11월 27일

연결 기사

[소녀의 이름으로①] 죽음의 네 화살과 신앙의 해방… 탈교의 끝에는 소녀가 있었다


교회에서 비롯한 과잉 노동과 인간성 상실은 내면의 자아인 소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기독교를 버리는 과정 탈교를 통해 인간 존엄성을 회복하고 현대의 뿌리 질문에 도전하기에 이르렀다.

2017년은 오순절 신앙의 내적 종말이 가시화된 해였다. 참여교회에서의 탈출, 그리고 해방. 버뮤다순복음교회의 해체는 제도권 교회의 붕괴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는 신의 대침묵과 이어진다. 감성주의 사태 이후 외마디조차 사라진 신의 말없음은 곧 ‘신의 죽음’으로 해석되면서 더는 신앙이 개인과 사회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과 마주하기에 이르렀다.

기독교 신앙을 중심으로 재편된 이념과 정체성도 죽음을 비껴가지 못했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 갈등은 생계와 학문, 존재의 성장에 조금도 성장의 실마리를 풀지 못했다. 의미 없는 충돌, 관념의 반복, 자기소진의 정체성으로 귀결된 것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파생된 전통적인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가치가 뒤바뀌기 일보 직전의 상황을 맞이한 이유다.

신의 대침묵이 이끈 것은 성서로의 귀환이다. 성서 읽기에 머문 신앙이 성서 해석으로 한 단계 발전하면서 기독 담론의 끝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성서의 오류와 무오는 양립 불가능하며, 성서에서 느껴진 것은 신의 숨결이 아닌 자신의 모순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오만한 신의 침묵뿐이었다.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지 않는 무력한 신, 자신을 변론하지 않는 허무한 신, 오로지 믿음으로 추앙 받는 만들어진 신, 예고 없이 다가온 신의 죽음.

거꾸로 본 아담과 이브의 ‘창세 설화’…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

성경의 절대 존엄 전통성 무너지고
문학적 해석으로 등장한 너머담론

성경의 재인식은 변혁의 시작이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범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창세 설화로 재인식하면서 역사적 문헌이라고 믿었던 성경을 문학으로 다시 읽기 시작했다. 변함없는 말씀, 불변하는 진리의 가르침이라 믿었던 성경은 허점투성이었다.

재인식을 통해 타락과 반역을 가르치는 전통적인 교회의 해석에서 벗어났다. 오히려 인간은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범함으로써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게 된 존엄한 해방의 순간을 맞이했고, 성경의 거룩함과 절대적인 존엄함은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다. 성경은 더 이상 경전 그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며 문학으로 전락한 것이다.

역사, 문화비평은 성경을 절대적인 자리에서 쫓아내었고 빈자리를 철학과 문학이 대체하기 시작했다. 기독교 서사를 통해 구원론을 확정 지은 것처럼 문학 서사로 이 세상을 이해하려는 자세로 탈바꿈하면서 내러티브의 문학적 기능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성경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은 도리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었고 이목은 진리에서 ‘대화’로 쏠리기 시작했다.

성경의 시각이 아닌, 성경 바깥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은 경이로움의 연속이었다. 이성으로는 다 알 수 없는 인간의 본성에 주의를 기울이며 성경 바깥의 세상에 주목했다. 경전이 종교적 기능으로만 머물면서 담론이 재편된 것이다. 신 죽음의 시대 이후 ‘너머 담론’으로 말이다.

인류를 죄악으로 몰고 간 여성? ‘앎’을 깨닫게 하고 해방시켜준 영웅

고립된 자아 대신 타인과 공존으로
神 권위 무너져도 남는 것은 윤리성

아담과 이브의 원죄론이 기독 담론의 핵심이자 교리의 주류라면, 페미니즘적 해석 이를 테면 이브의 선악과 사건이 오히려 인간을 ‘앎’을 깨닫게 한 해방이라는 새로운 시각이 성경을 새로운 비평의 눈을 열었다. 성서 비평은 창세 설화를 페미니즘 시각으로 본 데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죄의 저주였던 선악과를 인간 해방이자 여성의 승리로, 인간 본연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의 존엄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로 담론이 발전하게 된 것이다. 신의 권위가 해체되어도 인간의 존재는 여전히 존엄한 것이다. 과거의 헤게모니를 넘어 존재는 판단하고 책임지는 주체로 재정의되었다.

존재는 더 이상 고립된 자아가 아니라 타자와의 공존을 통해 완성된다. ‘지금 여기(hic et nunc)’에서의 삶 자체가 중심을 이루며 담론을 형성했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대상이 아닌 공존하는 파트너이자 타자는 나와 다르지만 함께 살아가야 하는 대상으로 시야의 재조정이 이루어졌다. 비로소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과 공존하는 세계관으로 발전하게 된다.

윤리는 바로 이 세계관에서 발견되었다. 신을 위해 살아왔던 일방향적 삶이 사람과 소통하는 양방향적 삶으로 발전하며 물음이 등장한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너머 담론은 신 죽음의 시대 이후의 담론이자 삶의 방향과 윤리를 묻는 실재적 질문이자 정답으로 향하는 길로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절대적 명령에서 주체적 삶으로… 신 죽음의 소산 ‘신앙 주권주의’

제도 교회에 매이지 않고 주체적 자아가 삶을 믿는
존재의 정치와 신앙 주권 비로소 되찾은 뿌리 질문

신 죽음 이후 인간은 삶의 해석권을 제도 종교에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삶의 의미를 구성할 권리를 발견했다. 신 죽음의 시대 이후의 담론은 삶에 분명한 정답을 제시한다. 우리의 권리를 제도권에 내맡기지 않고 가치를 인간이자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삶의 방향을 가늠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앙 주권주의는 너머 담론에서 파생된 새로운 방식의 신앙 양상이다. 제도권에 매이지 않으며 주체적 자아가 삶을 신앙함으로써 윤리에 답변하는 것이다. 신과 인간, 타자의 공존으로 삶을 사유하며 전통 신앙의 양식을 기반으로 현대의 뿌리 질문에 응답한다.

존재의 정치는 윤리를 기반으로 권력의 근간을 훑는다. 이제까지 보수와 진보는 무엇을 위해 응답했는가를 묻는다. 신과 교회라는 집단을 위해 복속했다면, 존재의 정치는 신과 교회를 해체함으로써 권력의 분배를 윤리로 응답하여 분산한다. 여기서 핵심 질문은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어떻게 일하는가’이다.

신앙 주권주의와 존재의 정치는 너머 담론 이후 등장한 새 가치로 전통을 해체함으로써 현대의 뿌리 질문에 응답하려는 시도이다. 어떻게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따라서 신앙 주권주의는 기존의 기독교 전통을 해체함으로써 현대적 방식으로 응답한 신앙과 정치의 산물이다. 이는 오순절이 종말하면서 등장한 윤리의 소산이다. 앞으로의 삶은 묻는다. 어떻게 믿어야 하는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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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이름으로①] 죽음의 네 화살과 신앙의 해방… 탈교의 끝에는 소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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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이름으로①] 죽음의 네 화살과 신앙의 해방… 탈교의 끝에는 소녀가 있었다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려던 때였다. 기독교가 진리를 탐색하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왜곡하고 소진시키는 신념 구조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독교적 삶은 심리적 탈진을 야기했다. 누군가에겐 여전히 의미 있는 신앙이라 해도, 기독교만의 배타적 복음주의는 성서의 민낯을 깨달은 이에게 더는 도움이 되지 않는 체계로 기능했다. 교회를 탈퇴한지 10년이 흘러서야 미신으로 인식하기에 이른 것이다. 신앙을 내려놓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과 문화, 가치관 전체가 걸린 선택이기에 더욱 조심스럽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탈교 10년을 되돌아보면, 그 과정은 치밀하고 정교했다. 감정적 반발이나 충동이 아닌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과 사유, 고통과 관찰을 바탕으로 자기 삶의 주도권을 되찾은 증거인 것이다. 교회의 과잉 노동과 사회를 바라보는 이분법적 시각, 새능력교회의 신앙은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드는 이념이었다. 무너진 인간성은 탈교를 하면서 회복되고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회복은 그저 신앙의 해체가 아니라, 내면 깊숙이 잠들어 있던 감수성과 윤리적 질문의 귀환이었다. 그때 모습을 드러낸 것이 바로 ‘소녀소년담론’이다. 기독교가 부정했던 인간의 섬세함과 복잡성을 복원하려는 시도, 그리고 잃어버렸던 인간성의 언어를 되찾아오는 과정을 서사화한 것이 소녀소년담론이다. 소녀소년담론은 도덕적 대체물도, 반기독의 상징도 아니다. 억압된 인간성의 귀환이며 되살아남의 기적을 담론화한 것이다. 이제 소녀소년담론은 기독교를 대체해 삶의 한 축으로 섰다. 악과 선의 이분법의 시각을 버리고 다채로운 삶의 풍경을 바라보며 끊임없는 대화로 세상과 소통하는 틀로 발전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어떻게 해체되었을까. 소녀소년담론을 만든 신앙 주권주의를 살펴보자. 연결 기사 [소녀의 이름으로②] 예고 없이 다가온 ‘신의 죽음’… 그의 대침묵이 이끈 기독 담론의 끝

[건조한 기억모음⑥] [1] 11년 전, 금빛 하늘 아래… 아이들의 힘찬 응원가 “빠따빠따빠따팀”

크리스마스 시즌도 벅찼는데, 여름방학까지 바빠진 건 신학교에 들어간 뒤부터였다. 교회 수련회에 따라다녀야 했는데,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교회학교와 중고등부, 청년부까지 모두 세 번. 한 번에 2박 3일에서 3박 4일씩, 한 달 가까운 시간을 교회에 바쳐야 했다. 그래서 가기 싫었다. 혼자 유유자적하게, 내 시간대로 여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알바비 때문에 그러니? 목사님이 줄 테니까, 좀 가라.” 나는 결국, 하는 수 없이 교회 스케줄에 맞춰야 했다. 중고등부와 청년부까지는 수월했다. 어차피 프로그램은 이미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면 되었기 때문이다. 큰 업체에서 진행하는 행사라 교사 자격으로 아이들을 케어만 하면 됐다. 예배도 드리고, 물놀이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었다. 밤에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도 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몸치 박치였던 내가, 이 세계에선 인기 교사? 문제는 교회학교였다. 중고등부와 청년부가 전국 단위로 여는 빅 텐트라면, 교회학교는 강원도 영동 지방의 교회들이 모여서 여는 스몰 텐트 수준이었다. 그러니까 나의 일손이 필요한 규모의 여름성경학교인 것이다. “선생님, 나가서 율동 좀 추세요.” 몸치 박치인 내가? 예배 중 갑작스러운 부탁에 시끌벅적했던 대성전이 한순간 고요해졌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두어 번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시작부터 어긋나 버렸다. 말 그대로 무대 위로 나올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나는 마지못해 무대 위로 올라갔고 속으로는 울면서 어설프게 율동하고 말았다. 동시에 마음의 상처도 입었다. 나와 이 여름성경학교는 맞지 않는 옷 같았다. 혼자 상처를 다독이다가 문득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규모도 작고 나의 손길이 필요한 여름성경학교라…. 반대로 내가 나설 수 있는 무대이지 않을까. 무언가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안고 예배 중 율동과 게임 등 다양한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풀이 죽어 있던 교사가 갑자기 의욕 넘치는 모습을 보게 된 아이들도 나를 따르기 시작했다. 툴툴 거리는 아이에게는 “대충대충춤추면서 하나님을예배해도돼 뭐든지 강제로하는건 하나님도좋아하지않으셔” 싸우는 아이에게는 “아니아니무슨일이야? 누가널화나게했니데리고와” 이제는 내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율동도 추면서 찬양 인도자보다 더한 성령 충만한 몸동작을 선보이며 아이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문제가 터지면 터진 대로 찾아가 수습하고, 물어보면 물어보는 족족 방언 터진 것 마냥 성경적으로 대답하니 나도 아이들도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믿을 수 없었다. 교회에서도 매일 방송실에서만 살다 보니, 내가 이렇게 붙임성 있는 인간인 줄은 몰랐다. 특히나 아이들과 이렇게 가까워질 줄은 상상조차 못한 것이다. 죽어도 하기 싫은 일 몸치 박치인 내게 선뜻“선생님, 율동해주세요” 어색한 강요 분위기에끝끝내 마상까지 입고 그래, 좋아, 그거야 ‘오히려 내 무대 아냐?’180도 달라진 내 모습 율동도 인솔도

[건조한 기억모음⑥] [2] 한여름 소년은 보았다 목마른 너의 가능성을

신학교에만 입학하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나의 허상은 단 한 달만에 산산히 부서졌다. 방학이 오기 전까지 나는 무력하게 지내야 했다. 목사는 끊임없이 “할 수 있다”는 새 능력만을 설교 했지만 나는 할 수 없다 는 무기력을 느꼈다. 1980년대의 부흥을 제창하는 교회에서 2014년도의 신앙을 가진 나와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우울증은 더욱 깊어만 갔다. 할 수 있는 사회에서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은 나를 더욱 슬픔으로 몰아 갔다. 행위로 구원을 받는 교회의 능력주의가 빚어 만든 결과인 것이다. 필요할 땐 은혜를 찾으면서, 정작 중요한 순간엔 행위를 강조하는 교회의 이중적 신앙이 나를 절망의 수렁으로 빠뜨리고 말았다. 그런 어두운 수렁에서 나를 구해준 것은 하느님도, 목사도 아니었다. 먼 타지에서 나와 함께해 준 루디아 선교사였다. 루디아 선교사는 내가 다니던 학부 부설 기관에서 선교 활동을 위해 잠시 머물렀던 중년의 여성이다. 할 수 없다는 무기력에 사로 잡혔을 시절, 내게 가능성을 일 깨워준 사람이다. 11년 전 신문은 기록한다. “‘형제는 사람의 마음을 간파하고 그 사람에게 맞도록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론을 알고 있는 자다’라고 어두움 가운데에서 빛을 소개해주는 일이 있었다.” 교회에서는 무능력한 신학생, 할 줄 아는 게 없는 녀석, 심지어 눈치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루디아 선교사는 남들이 보지 못한 나의 가능성을 선명하게 보았다. 그는 나에게 부활의 복음을 가르쳤고, 머지 않아 나는 신 죽음의 시대를 경험해야 했다. 그럼에도 루디아 선교사가 일깨워준 가능성은 훗날, 내게 재림 신앙을 되살리는데 영향력을 발휘한다. 언제나 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는 아이들의 삶을 바꿔 줄 기회라고들 광고한다. 그러나 정작 그해 여름성경학교는 아이들의 삶과 나의 삶을 바꾸지 못했다. 발견한 것은 있었다. 목마른 소년의 간절한 가능성을. 연결 기사 [건조한 기억모음⑥] [1] 11년 전, 금빛 하늘 아래… 아이들의 힘찬 응원가 “빠따빠따빠따팀”[건조한 기억모음⑥] [3] 수련회 때마다 반복된 ‘마귀의 역사’… 외로움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건조한 기억모음⑥] [3] 수련회 때마다 반복된 ‘마귀의 역사’… 외로움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수련회를 다녀올 때마다, 나는 감정 상하는 일을 경험했다. 목사는 매번 설교 시간에 나를 거론하며 “매번 삐지고 돌아온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스스로 영적으로 깨어 있는다고 믿었던 목사는 이런 현상을 두고 ‘마귀가 역사한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마귀 역사’라는 말만큼 무책임한 단어도 없다. 한창 사춘기 시절의 아이들을 강제로 수련회 합숙소에 몰아넣는 것도 모자라 계속해서 기독교 사상과 이념을 주입한다면 어느 누가 즐겁게 받아들이겠는가. 설교 메시지도 탁월한 것도 아니다. “너희들은 죄인이야” “게임하지 마” “부모에게 효도해” 같은 직설적인 언사를 누가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는가. 결국은 사람의 불완전성을 결함으로 비치도록 만드는 말들을, 이제 자라 나는 연약한 자아에게 화살처럼 찌르고 있으니, 어떻게 견디겠느냐는 말이다. 한국 개신교회는 유치원생부터 장년과 노년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메시지를 고수한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주장 말이다. 모든 이들에게 똑같은 메시지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던져 놓고 “이제 본질” “이게 진리”라고 주장하면서 정작 왜 진리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냥 믿기에 믿는 것이다. 사춘기 소녀 소년 모아“너는 죄인이야” 윽박만불완전한 인간의 존재 결함으로 몰아세우고공포팔이나 던져대니 마지막 수련회에서유일하게 말벗 되어준 고마운 형마저 떠나고나 역시 교회를 나선다 이제 자아가 성장하는 초등학생들에게는 효과적일지 모른다. 가장 연약한 자아를 가진 중고등학생들에게는 상처라는 사실을 교회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게 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경험하도록 돕는 것도 모자라 아이들을 죄인 취급이나 하며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길 바라고 있으니. 나의 감정도 다르지 않았다. 어느 때보다 민감하고 예민한 성정을 가진 나란 사람이 집단 공동체 속에 파묻혀 나의 나 됨을 잊어버려야 했으니, 감정의 진폭이 커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담임 목사는 일대일도 아니고, 모든 교인들이 보는 앞에서 “재현이는 이번 수련회에서 삐지지 않았다”며 “성령 충만해선지 이야기까지도 주도한 걸 봤다”는 걸 보면 참, 기가 막힐 따름이다. 2014년, 여름성경학교를 통해 나는 가능성을 보았다.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유아기 시절의 나는, 어른들에게 재롱 떨 줄 아는 아이였다고. 어렸을 시절 잃어버린 나의 본 모습을 여름성경학교를 통해 발견한 것이다. 교회의 억압적인 구조와 폐쇄적인 환경, 죄와 선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가두고 있었다. 나의 마지막 수련회는 2015년이었다. 군 생활을 앞두고 흰돌산 기도원 수양관으로 향한 것이다. 이번만큼은 토라지지 않았다. 나와 함께해 준 형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형님은 유일하게 나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었다. 머지않아 형님은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나는 무척 아쉬웠다. 간만에 좋은 어른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나에게 말벗이 되어준 사람은 없었다. 나는 성경을 말하고,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데까지 관심을 기울일 또래를, 어른을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딱 교회의 수준에 맞는 그런 어른들을 만난 것이다. 그런 어른을 만나러 교회를 다닐 필요는 없다. 교회를 벗어나, 그런 어른을 만나야 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아니, 그런 어른이 되면 좋겠다고 다짐했다. 연결 기사 [건조한 기억모음⑥] [1] 11년 전, 금빛 하늘 아래… 아이들의 힘찬 응원가 “빠따빠따빠따팀”[건조한 기억모음⑥] [2] 한여름 소년은 보았다 목마른 너의 가능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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