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맞서야 했던 초기교회”… 완벽한 정답 대신 방향 찾아 헤매야 했다

2025년 10월 31일
‘구약, 타나크, 신약-마침내 성경’이 8월 25일 문장공방에서 출간했다. 지은이 염진호 전도사는 “내게 은빛 날개가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고 고백했다. 성원을 보내준 모든 독자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 달 만에 완판… 성서의 형성 과정을 다룬 ‘마침내 성경’

염진호 전도사는 6년 전 이 신문 인터뷰에서 ‘신 죽음의 시대’를 논했다. 서울 압구정에 있는 대형교회에서 일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떠나는 교인들을 보며 좋은 길을 가도록 응원하고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교회에 남은 이들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에는 ‘파수꾼’ 이 한 단어가 남아 있었다. 그는 그들을 이렇게 회상했다. “교회 역사와 전통을 사랑하는 이들.”

염진호 전도사
침례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감리교신학대학교 목회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해 강릉중앙감리교회 간사를 시작으로 청수감리교회, 광림교회 교육전도사를 거쳐 현재는 강릉샘물교회에서 신앙과 삶을 나누고 있다.

그동안 개신교는 달라진 게 없었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2025년 발표한 ‘한국사회의 다층적 위기’ 인식조사에서 개신교의 신뢰도는 일반 시민의 27%로 나타났다. 이는 개신교 인구로도 나타난다. 2025년 총회 기준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과 합동의 인구는 2015년에 비해 각각 21%(59만8183명), 16%(45만8133명) 감소했다. 10년 만에 100만명이 줄어든 것이다.

염 전도사의 제언은 냉정했다. “우리가 성서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되돌아보는 전환점을 가져야 한다.” 손에는 두 달 전 출판한 책 ‘마침내 성경’이 들려 있었다.

― 무엇을 말하려고 이 책을 썼는가.
“간단하다. 성경이 무엇인지 말하고 싶었다. 한국인은 성경을 많이 읽는다. 많이 인용도 한다. 성경으로 권면도 하지만 검처럼 남을 공격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성경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 책을 읽는 데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 제목이 무척 직관적이다. ‘구약, 타나크, 신약-마침내 성경’ 성경의 형성사를 담은 의도인가.
“그렇다. 이미 시중에는 존 바턴이나 리 마틴 맥도날드 같이 훌륭한 신학자들의 책이 많았다. 제목을 특별하게 바꿔보자는 의미에서 이 제목으로 정했다.”

한여름 등장한 은빛 날개
전도사로선 ‘남다른 출판’

염진호의 문제의식
인용하고 무기로도 쓰고…
성경을 사랑하는 한국인
“그러나 어떤 책인진 몰라”

이렇게 읽어보시라
무턱대고 차례로 읽기보다
① 누가·요한복음부터 정독
② 성서의 중심 예수를 만나
③ 남은 구약성서까지 일독

물질에서 윤리로… ‘새판 짜기’
한 문장, 맥락, 구절 따서
왜곡하는 교육은 “노 답”
예수가 전하려던 메시지는
주어진 환경과 삶 속에서
‘실천적인 삶’ 살아가는 것
고달파도 묵묵히 걷는 삶

성경에 대한 오해, 만들어진 잣대

― “성서는 코란처럼 창조되기보다 천천히 진화됐다”고 표현했다. 이 관점이 성경을 읽는데 왜 중요한가.
“사람들은 성서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신탁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성경은 그리 인용하라 만들어진 문헌이 아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시작해 여러 공동체가 자신의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문헌이다. 공동체 생활이나 예수를 닮아가는 모습에서 어떤 게 있는지를 보여주는 문헌인데 사람들은 몇몇 구절을 가지고 누군가를 정죄하거나 자기 주장을 강화하는데 성경을 사용한다.”

― 성서를 내 삶의 가르침, 교훈 아니면 진리를 탐구하는 여정. 이렇게 바라보는 편이 맞지 않나.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공동체 안에서 바라보는 게 맞다고 보지만 이 또한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지금의 시대는 개인화가 잘 이뤄졌고 공동체성이 약화되고 있지 않나. 몇몇 신학자들은 공동체성이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하고 개인적 삶 안에서 신앙을 찾는 구도자의 모습을 가진 이들이 충분히 많은 시대이기 때문이다. 성서를 하나의 윤리적 가치, 개인의 신앙적 모습, 삶의 방향을 찾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라고 본다.”

정답이 아닌 방향이란 관점에서

― ‘윤리는 정답이 아니라 방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성경의 정경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윤리적 방향 찾기’였다고 볼 수 있을까. 이단에 맞서기 위한 대안으로 성경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 부분에서 초기 교회 공동체가 찾아가려던 방향은 무엇이었나.
“정경화 과정에서 교회의 폭력적인 부분은 분명히 있었다. 유대교 입장에서 봤을 때 초대 기독교인들이 가졌던 성경의 해석관(觀)이 자신들의 공동체를 위협한다고 봤기에 타나크를 만들었다. 초대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였다. 70인역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는데 이단들이 등장하면서 신약성서라는 문헌을 만든 것이다.

임박한 종말론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다른 가르침으로의 이동은 허용될 수 없었다. 그것을 막는 일이 곧 윤리적 책무였다. 정경화라는 방식으로 새로운 기준과 선을 그어주는 게 필요했다. ‘여기 이상 넘어가서는 안 돼’ ‘여기까지가 한계야’라고 그어주는 게 하나의 윤리적 작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에서 드러난 폭력적인 부분은 아쉬운 부분이다. 유대교가 나사렛당을 박해했고, 기독교 역시 로마의 권력을 등에 업은 이후 영지주의자들을 박해한 것을 보면 이 방향이 100% 윤리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은 정경화를 통한 윤리적 방향을 찾는 일이었다.”

― “성경을 도서관처럼 다양한 장르와 층위의 해석이 공존하는 문헌으로 봐야 한다”고 했는데 신자들이 이 관점으로 성경을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구약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현대 독자들이 읽기에 충돌이 일어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성경은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이다. 누가복음은 현실의 아픔과 위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이들에게 가난하고 위로를 주는 예수를 발견할 수 있는 문헌이다. 요한복음은 다르다. 약간 ‘테토’스럽다고 해야 하나. 예수의 모습이 강인하다. 겟세마네에서 울지도 않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당당히 맞이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나에게 강력한 정신적인 지지와 지지자가 필요하다면 요한복음을, 나의 연약함과 아픔을 보듬어주는 존재를 찾고 싶다면 누가복음의 예수를 찾아보시라.”

― 구체적으로 묻는다. 성경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지은이가 쓴 ‘마침내 성경’을 읽은 후 성경을 신약부터 읽고 구약을 읽는 식으로 한번 전체적으로 읽으면 도움이 되나.
“기본적으로 성서는 어려운 문헌이다. 여러 장르와 여러 해석이 가미된 문헌이다. 내 책은 성경이 복원된 과정을 말하지만, 성서가 가진 진정한 메시지를 찾으려면 우선 성경에 중심이 되는 예수를 먼저 만날 것을 권한다. 그 뒤에 구약의 이야기를 읽으면 편하지 않을까.

한 가지의 예수가 아니라
여러 측면의 존재가 있어
항상 겸손하게 점검해야

갈피를 못 잡는 이들에게

― 오늘날 신자들은 여러 방향 사이에서 어떻게 자신의 윤리적 방향을 찾을 수 있을까.
“최후의 궁극점은 결국 예수다. 마치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게 방사형 원형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성경이 구성되기 때문이다. 여러 층위나 윤리를 가져왔을 때 마지막 핵심의 정상에는 예수가 존재해야 한다. 성서에는 여러 가지 예수의 모습이 담겨 있지만 공동체건 개인이건 상관없이 예수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이 현대 신자들이 가져야 할 윤리적인 방향과 모습이다.”

― 복음서에도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가장 약한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 등의 메시지가 있지 않나. 결국 예수를 닮아가는 삶이 신자들의 궁극적 방향이 아닌가.
“예수가 말하고 싶었던 건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으로 살아가는 자세가 아닌가 싶다. 다만 이 예수도 한 가지의 예수가 아니라 여러 측면의 예수가 있다. 인간은 결코 모든 예수, 여러 측면의 예수를 담을 수 없다.

신학적인 용어로 ‘목격자적 증언’이라고 한다. 네 가지 복음서에서 나타나는 예수의 모습을 합치려는 시도를 보이는데, 나는 목격자적 증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네 개의 초상화를 하나로 섞으면 피카소의 그림보다 더 기괴한 그림이 나올 수 있지 않겠나. 성경은 네 가지의 예수를 다각도로 제시하고 있기에 네 가지의 예수 중 현재 당신의 윤리적인 상황 속에서 맞는, 닮을 수 있는, 다가갈 수 있는 예수에게 다가가보라고 제시하는 게 복음서가 아닌가 싶다.”

― 자신이 믿는 예수의 상(像)을 만들어 놓고 성경을 바라보는 시각이 위험할 수 있겠다.
“굉장히 위험하다. 신성 모독이며 십계명에서 금하는 야훼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자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 성서를 읽는 독자들은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예수의 모습과 성서가 비치는 예수의 모습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설령 성서가 말하는 예수의 모습과 내가 믿는 예수의 모습이 일치하더라도 다른 측면의 예수 상이 있다는 걸 인지한 상태에서 나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것
그게 기독교인만의 특권
힘들지만 위로가 되기도

다시 성경으로 돌아간다는 말의 의미

― 다시 돌아가서, 이단의 등장이 오히려 성경을 정경으로 만드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정통과 이단의 관계에 대한 역설적인 시각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정통이 있고 정통의 가르침을 비틀어서 이단이 생겼다’ 이건 굉장히 현대적인 발상이다. 신약만 보더라도 다양한 분파들이 있었다.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헤롯당도 있었다. 세례 요한과 그의 제자들도 있었고. 사도행전에는 예수를 따르던 나사렛당도 있었다. 유대종교는 각 분파들을 서로 견제하되, 누군가를 보고서 이단이나 악마라고는 하지 않았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설교를 하던 때를 생각해보라. 바리새파 어느 누가 로마 경비병 더러 ‘저 이단, 빨리 잡아가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구약의 완전한 폐기를 주장한 마르키온과 같은 극단주의자들이 생겼으므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정경화를 진행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성경에 대한 가르침이 점점 왜곡되거나 교리 중심으로 한 문장, 한 맥락, 한 구절을 따 다보니 몰몬교나 여호와의증인, 통일교, 신천지 같은 이단들이 등장한 게 아닌가.”

― 이 역사적인 사실들이 오늘날 교회가 이단을 대하는 태도에 어떤 시사를 준다고 보나.
“우리가 성경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되돌아보는 전환점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시중에 나온 성경공부 교재들을 보라. 다 교리 중심이고 말씀 한 구절 두 구절 받아 적는 정도다. 문맥을 생각하지 않도록 공부시킨다. 한국교회, 현대 교회가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성경의 전체적인 콘텍스트(문맥) 안에서 어떻게 적혔는지,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지를 알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 기복신앙이나 특별 치유 같은 신적 계시는 예수가 원한 가르침이 아니라는 걸 아는 게 필요하다. 예수와 성경이 원하는 건 자신의 삶을 닮아가는 모습이라던 존 바턴의 이야기처럼 예수의 모습을 닮아가는 방식으로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성경은 뭔가 비밀스러운 계시나 코드를 말하는 게 아니라 예수의 삶과 닮아가는 자세를 말하며 닮아가기 위해 이야기하는 믿음의 공동체의 과정을 알려주는 책이다.”

‘마침내 성경’을 들고서 포즈를 잡고 있는 염진호 전도사.

그럼에도 구주(救主) 예수를 따르는 이유

― 더 실천적인 삶, 그 얘기는 비틀어서 보자면 고달프지만 견디면서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 삶 자체를 말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 아, 기독교 신앙. 참 힘들다.
“굉장히 힘들다. 그럼에도 동시에 위로가 되는 종교이기도 하다. 어차피 우리 인생은 성경을 믿든 안 믿든 고통 가운데 있다. 다른 종교나 카르페디엠과는 달리 다른 답을 제시하고 있다. ‘네가 힘들지만 너를 위로하는 예수가 존재하고 그 존재를 통해 힘을 얻고, 이제 너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예수가 되어서 하나님이 원하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 보자’고 제시한다. 그저 종교생활이 아니라 내 삶을 통해 주변을 하나님의 나라로, 내가 예수로 살아가는 것, 누군가를 또 다른 예수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그게 기독교가 이 고통 중인 삶 속에 행복을 주는 방법이라고 본다. 그게 기독교만이 주는 특별한 위로라고 본다. 예수와 동행하는 삶의 여정. 기독교인만의 특권.”

염 전도사는 이 신문에조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마침내 성경’은 내게 은빛 날개가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날 수 없어’ ‘나는 더 이상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던 중, 책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나도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줬다.”

흔적/염진호 전도사가 8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마침내 성경’ 원고 사진. ⓒ염진호 전도사 페이스북

차마 아프신 어머니 저버릴 수 없어 참고 견딘 삶… “성경은 역전의 드라마”

염진호 전도사가 책을 세상에 공개하면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화제였다. “그렇지만 내 환경을 원망할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2025.08.28) 와신상담(臥薪嘗膽)이 떠올랐다.

“‘마침내 성경’이 준 의미는 내가 믿고 내가 바르다고 생각하면서 걸어온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준 증명서 같은 책이다.

아프신 어머니를 저버리고 서울로 떠나거나, 내 욕심을 챙기는 삶은 예수의 가르침과는 맞지 않았다. 그저 강릉에서 묵묵히 나의 때를 기다리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 최선이 어느 순간 좋은 인맥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성경’이라는 좋은 책을 만들 수 있었다.

현실적인 사람들의 눈으로 봤을 땐 ‘이건 답이 없어’ ‘기독교의 탈출은 지능 순이야’ ‘신학을 탈출해야 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성경은 언제나 그것을 역전하는 드라마가 아니었나. 역전의 드라마 길 끝에서 꿋꿋하게 걷다보면 와신상담이란 사자성어처럼 제2, 제3의 ‘마침내 성경’을 만들 수 있으리라 본다.”

― 떠나는 교인들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
“‘안타깝다.’ ‘아, 이분들이 조금만 더 좋은 교회를 만났다면’ 이런 생각들이 내 마음을 지배한다. 교회를 떠날 즈음, 교회 안의 사람들이 떠나려는 이에게 등 돌린 것을 보면서 굉장히 안타까웠다.

그러나 교회를 떠난 이들에게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이것이다. 공동체가 아니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분명히 성서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실 것이라는 믿음. 어떻게 보면 모세도 공동체를 떠났지만 수장이 되지 않았나. 그럼에도 교회를 떠난 이들을 보며 한국교회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좋은 교회라면 대신 사과할 수 있어야 한다.”

― 성경이 필요 없는 시대에 왜 우린 ‘마침내 성경’과 성경을 읽어야 하나.
“기독교와 대화하기 위한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신이 눈에 보이는가. 현재에도 예수가 존재 하는가.  기독교가 대화할 수 있는 매개체는 성경뿐이다. 그럼 성경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무슨 책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마침내 성경’은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가는 첫 번째 초대장일 뿐이다. 이 책을 통해 성경을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 성경공부나 교회 소그룹을 통해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떤 방식으로 공부하면 되나.
“이 책을 소그룹이나 성경공부용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그럼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 개인적으로 읽기를 권하고 싶다. 그게 어렵다면 신학 전공자와 독서 모임 방식으로 읽으면 좋다. 이 책은 그리 어렵지 않다. 신학 전공자아라면 두 번, 세 번만 독파하면 충분히 읽힐 수 있게 만들었다. 다만 소그룹적 제안이 있다면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복음서를 대하는 달라진 태도를 서로 나눠보면 좋겠다.”

― 교회 안에서 신앙의 회의를 겪는 이들에게는 이 책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나.
“성경은 단순하게 신적인 영감으로 한 번에 만들어진 일필휘지 문헌이 아니다. 그 안에는 모순도 존재하고 모순을 받아들이면서 그 모순을 해결하려던 해석학적 시도도 담겨 있다. 그 문헌 안에서 우리들의 교훈과 타산지석의 실패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의 최종 목표는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삶이 아닌가. 이 책을 통해 성경을 읽어보고 나서 교회를 떠날지 말지, 고민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마침내 성경’을 읽기 전과 읽은 후에 독자들이 어떻게 달라지기를 바라는가.
“듣고 싶은 말은 이거다. ‘성경을 읽는 게 재밌어졌어요.’ ‘우리 성경 읽어봐요.’ ‘성경공부 시작해 봐요.’ 이 책을 읽고 성경을 읽어보길 바란다. 분명 성경을 바라보는 당신의 눈이 달라질 것이다. 당신이 스스로 성서를 읽을 수 있을 때까지, 달려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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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때 잘 봤어. 그 새끼 싸가지 없더라. 그럴 거면 뭐 하러 면접관 타이틀 달고 앉아 있었대? 지 할 일이나 할 것이지. 잘 됐어. 그런 회사 가봐야 별 의미 없었을 거야. 마지막까지 예의를 갖추고 “회사의 번영을 기원합니다” 인사했던 거, 잘 했어. 너도 잠시 면접관 노릇 좀 해봐서 알 거야. 무얼 질문해야 할지를 모르는 인간은 면접에 참여할 자격조차 없다는 사실 말이야. 뭘 물어봐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면접을 보라는 거야. 그렇지? 처음 떨리는 마음, 직접 손으로 공고를 올리던 긴장된 너의 숨결, 너의 손길, 기억할 거야. 무엇부터 물어봐야 할지, 떠오르는 질문들을 쏟아내고 ‘이건 물어봐야 해’ ‘이건 묻지 말아야 해’ 고민하던 순간들. 밀려오는 면접자를 대하던 너의 숙고를 생각하면 그날 그 회사의 면접은 이미 꽝이야. 기억나니. ‘이 분은 이 회사에 적합하지 않아’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말이야. 능력은 출중한데 이런 험한 데 와서 고생하지 않았으면 했을 지원자들 말이야. 마음속으로 ‘지원자들 모셔두고 배워보자’고 생각나게 만든 능력자들 말이야. 네가 떨어진 이유도 똑같아. 능력이 출중하니까, 머리 잘 굴러가니까, 금방 뛰쳐나갈 거란 것도 알았을 거야. 그러니 공고에도 없는 ‘행사 보조’ ‘전화 응대’ 같은 단어로 에둘러 지껄였겠지. 그것도 면접장에서. 그래서 그 놈 회사는 꽝이라는 거야. 난 말야. 회사 선임에게 된통 당하며 혹독하게 살아왔던 그 분이 가장 기억에 남더라. 동변상련이라 해야 할까. 규모가 있는 회사일 수록 분업화가 잘 돼 있잖아. 전문적일수록 디테일함에 몸서리치기도 했고. 오자(誤字) 하나에 광분하는 선임을 보면 볼수록 때론 두려움을, 때론 자책이 들기도 했겠지. 그렇지만 그 혹독한 시간들을 보냈기에 지금의 섬세한 네가 다듬어졌잖아. 그렇게 하나 둘, 성장하는 거겠지. 그분의 눈망울에는 아직도 그 선임이 존경하는 자리에 서 있는 걸 느꼈어. 섬세하고 예리하다 못해 예민해서 갈구고 또 갈구는, 그러나 그 손길이 없었다면 결코 몸에 익힐 수 없었던 실무 경험 말이야. 그런 회사를 가야 하는 거 아니겠니. 일하면서 빼먹을 게 있는 곳, 혼은 나지만 존경심이 드는 곳, 지치지만 배울 수 있는 곳. 무력감이 아니라 성장통을 느낄 수 있는 곳. 하긴, 그런 회사가 아니라서 귀한 시간 내 가지고 온 면접자에게 그따위 질문이나 던지는 거겠지. ‘한 놈만 걸려라’ 심보로 말이야. 가운데 앉아 가지고 좌장처럼 보이고는 싶었는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공고에도 없는) 이 일들, 감당할 수 있겠냐”고 묻는 놈 밑에서 뭘 배우겠니. 갈 데 없는 건 똑같은 처지에다, 나이만 열 다섯살 더 많아 이직은 꿈도 꾸지 못할 텐데. 나이 좀 많다고 깝죽대는 게 전부인 놈이 말이야. 잘 됐어. 어차피 됐어도 안 갔을 거잖아. 주제도 모르고 콧대만 높은 것들, 넘치는 노동 인구의 수혜를 받는 한심한

[열여덟, 이런 고3이라 됴아④] 세상을 바꾸는 건, 뜨거운 정의심과 압도적인 문장들이 아냐

잡지를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네가 만들려던 그 잡지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포기하길 잘했어. 원래 잡지를 만든다는 건 혼자서 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야. 유명한 잡지들을 봐. 그 잡지 한 호를 만들기 위해 매달리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더라. 사진 보정과 편집조차 익숙하지 않은 네가 잡지를 만든다는 건 어쩌면 욕심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뭔가를 말하고는 싶은데, 말할 방법이 없어서 편집 디자인에 기대는 너의 부푼 마음 말이야. 나도 그게 뭔지는 알 거 같아.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 잡지를 만드는 일은 단순히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 정도는 아니야.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를 기획해야 하고, 어떤 제목으로 독자들을 후킹 할 수 있는지, 사진은 또 저렴한 스마트폰이 아닌 미러리스 같은 전문 카메라로 찍어야 하는 고급 기술이야. 글자를 조제(調劑) 하는 일도 그래. 하고 싶은 말을 나열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거지. 고등학교 1학년 때 기억해? 담임 선생님이 써오라던 독후감, 일부러 단락도 구분하지 않은 채 3000자, 5000자 한 무더기로 써 냈던 거. 마음이 고운 선생님이라서 그랬지, 나였으면 가차 없이 다시 쓰라며 까버렸을 거야. 선생님이 홀로 자리에 앉아 네가 쓴 그 거대한 문장들을 다섯, 여섯 줄로 요약하느라 진땀 뺀 모습도 기억할 거야. 그땐 챗지피티(chatGPT)도 없던 시절인데 말이야. 선생님이 고생 좀 하셨지. 이제 사람들은 손바닥만 한 글을 겨우 읽는 시대에 살고 있어. 손바닥이 뭐니, 손톱만 한 글도 읽지 않는 논 텍스트(non-text) 시대야. 그러나 글과 문장이 필요 없어졌다는 건 아니야. 왜냐하면 인간은 글과 문장으로 의사를 소통하기 때문이야. 글을 읽으려 하지 않는 시대에, 오히려 글을 정제된 손길로 다듬고 또 다듬는 강인함이 필요하다는 걸 나는 말하고 싶어. 네가 듣기에 참 미안한 말이지만, 앞으로도 네가 만들려던 지면신문 오래도록 실패할 거야. 그러나 포기하지는 말아 줘. 그 신문이 너의 멱살을 잡고 삶의 자리를 이끌어갈 테니까. 너의 그 신문에 사람들이 호응하지 않더라도 신문을 만들어 글을 다듬고 다듬는 일에는 지치지 말아 줘. 미래의 내가 과거의 네 글을 보면서 살아갈 힘을 얻을 테니 말이야. 지금의 난 두 학생의 서로 다른 갈림길을 관찰하고 있어. 두 녀석을 보니 네가 떠오르더라. 신념에 가득한 딱딱한 문체, 옳고

[상황설명] 기어코 무르익은 ‘소년의 문장’

연결 기사[열여덟, 이런 고3이라 됴아④] 세상을 바꾸는 건, 뜨거운 정의심과 압도적인 문장들이 아냐[문쏘, 할 말 있어④] 뭘 물어봐야 하는지도 모르는 회사, 영포티에게서 “도망쳐!” 15년 전 소년은 정직한 문장과 꾸밈없는 건조한 문체가 불의에 맞서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단비새’라는 이름의 잡지를 만들려고 애를 쓴 것도 정직함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몸부림이었다. 부도덕한 사회와 협잡한 대중문화라는 프레임은 잡지를 만들려는 열정에 기름을 부었다. 그러나 세상은 무심했다. 세상은 세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떻게 윤리를 잃어가는지에 대한 방향을 잃고 말았다. 열정을 다해 글을 썼어도 꼼꼼히 읽는 사람은 대학 입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첨삭하던 담임 교사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시대는 바뀌었다. 논술을 가르치던 시대는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를 먼저 가르쳐야 하는 새로운 국면에 닿은 것이다. 까이는 건 중학생 신문에서뿐만이 아니다. 이름 없는 회사의 면접에서도 까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한 쪽은 설익어서 까였고, 다른 한쪽은 물러터져 버려서 문제였다. 발신자는 안다. 두 곳 모두 혼은 나지만 존경심이 드는 곳, 지치지만 배울 수 있는 곳, 무력감이 아니라 성장통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정의와 신념에 가득 찬 무리들, 그리고 무력감에 절어 세상만사를 삐딱하게 보는 아저씨를 경험하며 발신자는 15년 전 소년의 실패를 떠올린다. 발신자는 그럼에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 문장들이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의 발신자를 살리게 될 거라는 분명한 사실을 가리키며 지치지 말라고도 당부한다. 글은 의사를 소통하는 최초의 방식이자 미래의 수신자에게 보내는 최후의 의사소통이다. 15년 전, 소년은 발신에 실패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끊임없이 지치지 않는 발송을

[부음] ‘젠틀하고 구수한 어머니’ 반세기 배우 김수미 별세

피로누적으로 건강악화를 우려해 활동을 잠정 중단한 배우 김수미(본명 김영옥)씨가 향년 75세로 세상을 떠났다.(2024.10.25) 서울 서초경찰서는 고인이 25일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오전 8시께 119구조대에 의해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고인은 1970년 MBC 공채 3기 탤런트로 합격해 ‘전원일기’에서 22년간 일용 엄니 역을 맡았다. 코믹하면서 거침없는 말투와 푸근한 연기로 호평 받았다. 1990년대 생에게는 욕쟁이 할머니로도 알려져 있다. 2015년 전국 욕쟁이들이 모여 욕 배틀을 펼치는 영화 ‘헬머니’ 단독 주연을 맡았다. 뛰어난 요리 솜씨도 주목을 받았다. ‘수미네 반찬’(tvN) ‘밥은 먹고 다니냐?’(SBS플러스) 등 음식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구수한 손맛을 펼쳤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정창규씨와 딸
Today소랑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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