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년아!” 이런 존재감 처음이야:『열여덟 너의 존재감』

2023년 01월 21일
그 시절 학교 칠판은 딱딱하고 차갑기 그지없었다. 사회라는 재미없는 반복의 일상을 맛보여준 공간이다.

 열여덟 너의 존재감
박수현 지음 | 르네상스 | 214쪽 | 1만1000원

시커먼 교복은 어색하지 않았다. 갓 입학한 지 머지않아 야간자율학습 공지를 들었다. 중학교 시절과 분명히 다른 무거운 감정을 느꼈다. 자율적이지 않은 자율학습이 가져다 준 암묵적 권위에 순응하는 이 분위기가 낯설게만 느껴진 탓이다. 담임은 20대 후반에 키 160cm 조금 못 미치는 가냘픈 여자였지만 서른여섯 학생들을 단번에 제압하는 카리스마 때문인지 현장을 더욱 권위적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연애나 가벼운 오락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워낙 무거웠으므로.
 
저서는 2010년대 고등학교 분위기를 정확히 묘사한다. 나만 느낀 무거운 감정이 아니었구나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서야 무거운 분위기는 사람 통제하기 가장 쉬운 방식이란 걸 깨달았다. 미워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서라도 압박하지 않으면 통제할 수 없기에. 어른들의 손 쉬운 문법이란 것을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그 무거운 분위기를 깨고 교실 문을 벌컥 열고서 말한다.
 
“니들이 2학년 3반이구나. 얘들아, 안녕. 내가 누구게? 내가 니들 담임이랜다. 깜짝이지? 나도 깜짝이다. 니들 개학하기 전까지 일주일간 자습한다며? 근데 난 안 나올 거야. 왜냐? 나 아직 이 학교 선생 아니야. 정식으로 발령장을 안 받았거든. 그러니까 담임 기다리지 마. 아, 니들도 싫으면 도망가. 그 대신 책임은 알아서들 져야 한다. 그리고 이 학교 휴대폰도 걷는다며? 난 안 걷을 겨. 완전 귀찮아. 괜히 걸리지 말고 알아서 조심히 써. 그럼 나중에 보자.”(7,2)
 
◇담임 쿨샘: “이, 이년아?” 이런 존재감 처음이야
‘그림자’ 눈에는 ‘30초도 안 되는 사이에 그토록 강렬한 인상을 남긴 사람은 처음’(7,6)이었다. 쿨샘과 첫 대면.
 
아이들이 짜증낼 만 했다. 방학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학교로 불러서 공부나 시키니까 말이다. (나조차 고2 봄 방학을 학교 자습으로 보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존재감으로 사로잡은 건 쿨샘 자신만이 아니었다. 그가 건넨 공책 ‘마음 일기장’은 이순정을 비롯해 많은 학생들에게 관심과 의심을 동시에 불러 일으켰다. 솔직한 마음을 적어서 뭔가라도 캐려는 게 아닐까하는 의심. 그 시대도 그랬다. 학생이 교사를 믿지 않는 시대. 교사가 학생을 믿을 수 없는 시대. 서로 속고 속이는 불편한 관계.
 
모든 것은 권위로부터 출발한다. 제일고등학교라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세워 둔 권위를 지키기 위해 모든 교사가 한 몸이 된다. 담배 냄새에 주머니 뒤적이는 학주, 시끄러우면 엎드려뻗쳐 시켜서 엉덩이를 가격하는 몽둥이, 영어 단어 틀린 개수대로 아려오는 정강이, 배지하나 착용하지 않았다고 쌓이는 벌점, 야자를 동참시키기 위해 불편해지는 관계. 몽둥이와 벌점, 윽박은 고등학교를 유지하기 위한 효율적인 시스템이었다. 모든 선생님은 예외 없이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복무할 뿐이었다.
 

모두가 뻗어버린 조용한 교실. 합법적인 폭력을 이용해 시스템을 유지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주인공 이순정의 말에 따르면 나락고등학교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모인 학교라고 한다. 그러니 교사 입장에선 골치 덩어리였다.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는 아이들이 모여 저질, 아니 하질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니. “저질, 저질, 아니 저질도 아깝다. 하질 중의 하질들만 모아 놓은 것 같다니까. 끔찍해. 쯧쯧.”(15,1) 그러다 학교 모든 유리창이 깨진 사건이 발생한다.
 
이와 중에 쿨샘은 학기 초 인사와 함께 ‘마음 일기장’을 나눠줬으니. 순정이 입장에선 ‘새로운 수사 방식’으로 보였을 법하다. 근데 쿨샘은 뭔가 달랐다. 아침도 못 먹고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교실에서 먹어도 된다고 말한다. 공부 못해도 괜찮다고. 휴대폰도 걷지 않는단다. 또 다른 건, 아이들을 부르는 명칭이다.
 
“야 이년들아!”(8,6) “이년들아”(10,7) “아이고, 냄새! 이년들아,”(13,3) “이년아,”(29,5) “이년들아”(30,2) “이년들아”(30,5)
 
처음엔 하도 자연스러우니 “얘들아”하고 말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8,7) 그런 쿨샘이 흔한 선생들과 달리 학교 이름을 정확히 알고서 부른다.
 
“아름답고(娜) 즐거운(樂) 나락고등학교 2학년 3반 화이링”(12,3)
 
이순정: 보이지 않은 현실의 벽 앞에 따뜻한 기운을 발견한 여고생
 스포일러 주의   폭력성 주의  순정은 의심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담임 쿨샘이 콘셉트일지, 진짜일지 아리송할 따름이다. 사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마음 터놓고 진로 상담 할 것도 아니었기에. 다만 순정이 쿨샘에게 요구할 한 가지 사안은 야자를 빼는 일이었다.
 
“제가 스와힐리어를 전공할 거거든요. 그러려면 미리 공부를 빼야 하는데 학원이 없어서 개인 교습을 받아야 해요. 저녁 자습 시간 안이면 스와힐리어 교습을 따로 뺄 수가 없거든요.” 갑자기 담임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새 꽃이 활짝 폈네그려.” 그리고 나지막이 말한다. “아가씨, 시나리오 다시 짜 와라.”(41-42) 쿨샘은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순정에게 허마저 찌른다. 마음 일기장을 돌려주며 잘 썼다고 칭찬해준 것이다.
 
순정은 쿨샘 존재의 정체를 묻게 만드는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여고생에게 지운 짐이라 하기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아빠와 기다리다 못해 떠난 엄마, 따라서 할머니의 손에 길러진 순정을 부른 지옥으로의 귀환. 엄마와 둘이서 사는 게 더 지옥일 줄은 몰랐다. 다시 할머니에게로 돌아가고 싶었다. 엄마는 무기력했다. 짜증이 솟구쳤다.
 
“할머니? 할머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시끄러! 안 돼!”
 
“왜 안 돼! 왜 안 되는데! 엄마가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할머니한테도 못 가게 해! 이게 엄마야? 이 따위로 팽개쳐 둘 거면 뭐 땜에 데리고 오고, 뭐 땜에 낳은 거야? 내가 낳으라고 했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몸이 어떤지, 마음이 어떤지 엄마가 알기나 해!”(51,7-9)
 
엄마의 손찌검에 칼까지 들고서 욕설을 주고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답답한 마음에 맥이 풀렸고 상황은 급 종료되었다. 잊었던 일기장을 펼쳐 봤다. 쿨샘의 댓글이 보였다. ‘답답했구나. 우리 순정이가 답답했구나. 에구. 힘들었겠다.’(53,7) 그게 다였다고 한다. 순정은 쿨샘의 글에서 ‘뭔지 모를 따뜻한 기운’이 살짝 일어났다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그림자: 존재감 제로에 가슴 아파하는 예민한 생각들
쿨샘을 전교조로 의심한 녀석, 그림자는 같은 반 순정이보다 탐정 역할에 몰입했다. 그림자가 보기엔 ❶이딴 학교에 발령 받아 어긋났다거나 ❷초임 발령이라 의욕이 넘칠 뿐이라는 둘 중 하나의 시나리오만 보였다. 한창 몰입 중인 그림자의 허를 찌른 건 쿨샘이다.
 
“네 이년!”(105,1) 작은 목소리로 그림자의 존재를 파헤치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눔 지지배, 너…… 생각 겁나 많지? 고집도 완전 세지?” 그리고 칭찬으로 두 번째 허가 찔린다. “잘 썼어. 이렇게 쓰는 거야.” 사라진 쿨샘의 냄새가 흩어지기도 전 댓글을 읽는다. ‘멍때렸구나. 멍이라도 때려야 시간이 잘 가지. 아무렴.’(106,2)
 
혼날 줄 알았던 일기 한 편, 의외의 댓글에 이상한 기분을 느낀다. 쿨샘은 그림자의 실체를 제대로 보고 있었다. 그림자는 늘 자기에게 자격지심(自激之心)을 느꼈다. 자존감이 낮다고나 할까. 그림자 본인이 자신을 ‘존재감 제로’라 표현한 데에는 쿨샘의 존재감도 한몫했다. 어쩌면 쿨샘을 동경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쿨샘이 마구 허를 찌른다. 그만 찔렀음 좋겠다. 반해버릴 것 같으니까.
 

‘헐, 담임이다. 내 앞으로 똑바로 걸어온다. 내 어깨에 팔을 두른다. 난감하다. 이런 스킨십 낯설다. (……) 계속 어깨동무를 한 채로 걸어간다. 화장실 가기는 틀렸다.’

“너, 생각이 너무 많아. 머리 안 아프냐? 멍때린다는 건 생각이 많다는 소리야.”

“아닌데요……. 생각 안 하는데요…….”

“넌 지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냐? (……) 지구 돌아가는 소리는 아무도 못 들어. 왠지 알아?”

“모르는……데요.”

“너무 커서.”

‘처음 듣는 얘기다.’

“너무너무 커서 인간의 청력으로는 들을 수가 없어. 그거랑 똑같아. 생각이 너무너무 많으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몰라. 그래서 멍때린다고 착각하게 돼. 한마디로 골이 띵.”

무슨 얘긴지는 모르겠지만 놔주질 않는 쿨샘의 말에 심장만 콩닥콩닥 뛴다. 그런 쌤이 그림자를 껴 안아준다. ‘앗, 담임이 나를 껴안는다. 눈물이 날 정도로 당황스럽다. 가슴이 주책없이 콩닥거린다.’(110-111,11)

 
존재감 제로 그림자에겐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어쩌면 존재감 제로라는 고민을 하게 만든 원인일지 모른다. 남자애를 짝사랑하는 마음 때문이다. 쿨샘에게 보낼 일기장에 적는다. ‘오늘 하루 내 마음은 [우울]했습니다. [좋아하는 남자애를 만날 뒤에서 훔쳐봐서, 선생님, 저 스토커일까요?]’(121) 이 순간만큼은 이순정이 부러웠다. ‘여드름 하나 없이 눈가루처럼 흰 피부’ ‘비례 맞춰서 세운 것처럼 보기 좋은 콧날’ ‘도발적이면서도 은근히 거만해보이는 빨간 입술’ ‘같은 여자가 보아도 숨이 막힐 외모’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차가운 분위기’ 한 마디로 ‘외모만으로도 이미 묵직한 존재감을 지닌 아이’였기에 스스로를 그림자 취급하던 김예리는 존재감 제로의 못난 아이로만 보였다.
 
순정이가 진 무거운 짐의 무게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 애 사정을 안다면 마냥 부러워만 하지 않을 텐데.
 
강이지: 활달한 이면에 숨은 슬픈 그림자
강이지는 순정이의 또 다른 면모를 잘 알고 있었다.
 
“씨발! 꿈이고 지랄이고 입 좀 닥쳐!”(136,5)라고 소리친 순정이는, 사실 ‘다가오지 마!’라고 말하고 있었다. 사실 이지는 누구보다 마음 여리고 누구보다 올바로 관찰할 줄 안다. 생각만 많은 예리는 허탕 칠 때가 많지만, 말 많고 활발한 이지야 말로 생각이 깊었고 사람을 보는 시각이 예리했다. ‘내상 입은 동물이 들릴락 말락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그런 소리에 남보다 더 예민한 청각을 가진 덕분이었다. 그런 사람을 배려하는 방법을 나는 한 가지밖에 모른다. 섣불리 다가가지 않는 것. 그래서 이순정이 쳐 놓은 울타리를 절대로 넘어가지 않았다.’(같은 쪽)
 
순정이가 이지에게 욕을 한 건 순간적인 짜증 때문이었다. 순정이는 이지에게 악의를 가지고 한 말이 아니었다. 이지도 그걸 알고 있었다. 이성적으로는 알았지만 순간 이지의 몸은 얼어버렸다. 집에서도 이어지는 고성(高聲)이 이지의 마음을 굳게 만든 것이다. 이지네 집도 순정이네 집만큼 불행했다. 아버지·어머니가 있으면 뭐하나. 매일 같이 물건 던지며 싸우는데. 쉴 새 없이 고성이 오가면 이지는 방에서 동생들을 끌어안으며 울었다. 누구보다 활달하고 당찬 이미지를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학교에서는 경찰대 갈 거라고 자신감 뿜뿜하던 이지는 집에선 동생을 안아주며 엄마·아빠 이혼 안할 거라 다독이는 그런 소녀였다.
 
쿨샘은 이지에게 마음 아는 법을 알려준다.
 
“샘, 마음을 알면 뭐가 좋아요?” “좋은 점……. 힘이 생겨. 내 마음을 모르면 눈이 자꾸 밖으로 가거든. 다른 사람, 다른 조건, 다른 환경, 이런 것 때문에 흔들리고, 힘들고, 괴로워질 때가 많아. 그런데 내 마음을 알면 중심이 잡히면서 흔들리지 않게 돼. 힘들면 힘들구나, 하고 내가 알아주고 지치면 지치는구나, 하고 내가 알아주는데 굳이 다른 사람 위로가 필요하지 않잖아. 다른 사람 눈치 안 봐도 되잖아.”(157-158)
 
그러나 집이라는 현실로 돌아오면,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지 머릿속이 까매진다. 쿨샘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지금 당장, 교복부터 갈아입자. 옷 갈아입고 일단 자자.’(161)
 
 
권위라곤 1도 없는 담임
정체를 묻게 만드는 존재
“이년아”로 부르는 호칭에
어느새 익숙해진 담임교사
 
세 주인공에게 닥친 시련
여고생에게 가혹한 사건들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이겨낸 건 연결된 관계 덕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 속에
짓누른 분노 외면하는 학교
그 사이 벌어진 창문 테러
시스템 바꾸려는 세 여고생
 
 
물음: 나락고등학교는 바뀔 수 있을까
현실의 짐은 이순정·강이지 두 아이를 절벽으로 몰아갔다. 순정이가 엄마와의 격한 싸움 끝에 차가운 콘크리트에 선 것이다. 쿨샘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떠오른 이름, 강이지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때였다. 문자 수신음이 울렸다. 강이지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97,6)
 
한걸음에 달려온 이지가 묻는다.
 
“이순정, 요즘 넌 어떠니…….”
 
‘잦아들던 울음이 다시 복받쳐 올랐다. 강이지가 물었다. 넝마처럼 구겨진 나한테 어떠냐고 물었다. 어떤 얘기를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러나 아무 얘기라도 토해 내고 싶은 내게 어떠냐고 물어봐 주어서, 나는 울었다. 요즘 어떠냐고 물어봐 주어서, 눈물이 끝없이 솟구쳤다.’(98)
 
마음을 다잡은 둘이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마련한다. 교내에 설문 조사를 돌리는 일이었다. 이미 쿨샘이 강제 야간자율학습과 수업 선택권이 박탈된 보충수업을 지적한 바 있었다. “근데 돈까지 내고 받는 수업인데, 왜 니들은 니들이 원하는 수업도 못 받냐?”(141) 이지에게는 충격이었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묻기로 한다.
 
재독철학자 한병철은 2017년 작 ‘타자의 추방’에서 ‘같은 것의 폭력’을 다룬다. 테러리즘이 같은 것의 폭력에 반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것을 지적한 것이다. 소설 속 학교의 모든 유리창이 깨지는 테러도 같은 맥락이다. 범인을 찾았는지 말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옥이라는 나락(那落)의 이름으로 아이들을 가둬놓고 진짜 이름 나락(娜樂)을 지워버리는 어른들의 편의주의에 반항한 테러의 메시지가 중요했다. 더는 다른 방식으로 테러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설문조사로 여론을 물어야 했다.
 
순정과 이지는 용기를 가지고 아이들의 생각을 묻는다. 어른들의 방해 공작에도 담임 쿨샘은 아무 말도 않는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아이들에게 너무도 가혹한 세계에서 순정과 이지, 줄곧 그림자로 설명하던 예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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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심어놓은 ‘조선일보의 의도’ 편집자의 윤리를 묻는다:『이런 제목 어때요?』

이런 제목 어때요?최은경 지음 | 루아크 | 232쪽 | 1만7000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만천하에 알려지고 다음 날 조선일보 사설 제목은 단 네 글자였다. ‘부끄럽다’ 조선일보와 박근혜를 분리하고 국민과 조선일보를 이입시키는 유체이탈 화법도 놀라웠지만, 내가 정말 놀란 건 단문이었다. 조선일보는 단 네 글자로 부끄러움을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다. 2012년 3월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 현장 조사 차 방문한 일이 있었다. 공정위 조사관들이 신분을 밝히고 건물에 들어가려 했으나 출입을 50분 동안 가로막았다. 그새 삼성은 관련 자료를 통째로 폐기했고 책상과 서랍장을 바꿔 조사 대상 직원의 컴퓨터를 새것으로 바꿔치기한 게 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다음 날 조선일보 사설 제목은 이랬다. ‘삼성 눈에는 이 나라 법은 법같이 보이지 않는가’ 가끔 조선일보 기사와 사설 제목을 보면 ‘심판자 조선일보’의 우스운 태도가 느껴진다. 조선일보의 제목은 언제나 강렬하지만 그 의도를 들여다보면 권력에 대한 적나라한 태도를 가늠할 수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다음 날 신문은 제각각 1면 제목을 다채롭게 달았다. ‘”어찌 됐든 사과” 140분 맹탕 회견’ ‘고개만 숙였다’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맹탕, 고개만 숙였다고 비판했다. ‘’김건희 의혹’ 부인한 윤, 특검 거부’ 동아일보는 고집부리는 윤석열을 강조했다. ‘아내 처신 머리 숙이고 의혹 앞엔 고개 숙였다’ ‘윤 고개 숙였지만, 의혹엔 고개 저었다’ 국민일보와 한국일보는 대통령의 사과와 의혹에는 고개를 저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조선일보만 달랐다. ‘“저와 아내 처신 올바르지 못해 사과드린다”’ 마치 윤석열이 정중하게 국민 앞에 사과하는 내용으로 제목을 단 것이다. 도대체 의도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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